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건니생각이고 Jan 31. 2021

죄송해요.

저도 죄송해요.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최애 메뉴인 곱창을 시켜 먹었습니다. 너무 허기졌던 터라 테이블을 간단히 세팅하면서 제일 맛스럽게 생긴 곱창 한 개를 집어 먹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삼키기도 힘든 쓴 맛에 당황했습니다.


'뭐지? 왜 이렇게 쓰지? 이 한 조각만 그렇겠지?'


 곱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곱창의 '비밀'을 알기에, 나머지 아이들은 의심할 필요 없는 맛을 보장해 줄 거란 확신으로 크게 개의치 않고 꿀꺽 삼켰습니다. 아오 써.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아내와 식탁에 앉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식탁등을 켜지 않은 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윽! 오빠 이거 맛이 왜 이래?"
"여보도 써? 나 아까 하나 먹어 봤는데 엄청 쓰더라고. 이번 곱창은 곱이 유난히 쓴가 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든 다음 조각은 삼키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불맛이 아닌 쓴맛을 곱창 전체에 씌운 듯했습니다. 너무 타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위로 겉면을 잘라서 먹어보니 '그나마' 나은 정도지 여전히 너무 써서 먹기 힘들었습니다. 곱이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안전하게 안 쪽에 있던 곱만 먹어 봤더니 거의 멀쩡했습니다.


'타서 그런가 보네?'


 식탁 등을 켰고, 너무도 완벽하게 타고 그을린 곱창들의 모습에 더욱 당혹스러웠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곱창마저 탄 맛이 배어 있는 상태였던 겁니다. 곱이 문제일 거라고 왜 지레 방어를 해 줬을까 하는 허탈함에 바로 식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xxx입니다."
"안녕하세요. 방금 곱창 2인분 시킨 집인데요. 웬만하면 그냥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타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전화드렸어요."
"네. 그럼 핸드폰 번호 찍어 드릴 테니 거기로 사진 보내 주시고, 주문 내역하고 주소 보내도 같이 보내 주세요. 확인하고 다시 보내 드릴게요."


 너무도 사무적인 대응이었지만, 뭐 괜찮았습니다. 곱창만 다시 빨리 오면 '아직은' 저녁 시간이었으니까요.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요청받은 대로 주문 내역과 주소를 보내 드렸습니다. 너무 심하게 써서 말씀드린다는 문구도 포함해서 말이죠.



'네'


 짧고 굵게 알겠다고 하시더군요. 20여 분 만에 곱창은 '약속한 대로' 다시 배달이 왔고요.


 근데요. 뭔가 굉장히 찝찝했습니다. 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부당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되려 영업에 방해될까 싶어 그냥 참고 먹으려 했고, 너무 심하게 탄 곱창들은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려 했었습니다.


'왜 사과를 안 하시지?'


 사과를 받고 싶어서 전화한 건 아니었지만, 사과 없는 너무도 사무적인 대응마음에 걸렸습니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코로나 때문에 배달 주문이 넘쳐나서 힘드시겠지..'
'내가 더 특별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씀드렸어야 했나?'
'오늘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으시겠지..'
'진상 고객들이 매일 넘쳐날 텐데 나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


 이해해 보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화상으로도 또 문자상으로도 음식이 먹지 못할 정도의 상태인 부분에 대한 사과가 부재한 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코 사과를 원했던 상황이 아니었지만, 사과가 없으니 기분이 언짢아진 건 사실입니다. 사과를 받는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겁니다. 사과에 사과가 이어졌을 테고, 양쪽 혹은 한쪽의 기분이 누그러지는 정도였을 겁니다.


'죄송해요. 얼른 다시 해서 보내 드릴게요.'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무엇을 원했던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감정이 낄 필요 없는 지극히 단순한 금전거래였으니, 사과 따위가 들어갈 틈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걸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