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IT의 발달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많이 들여다봐야 돈을 벌어들이는 거대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주변에 널린 게 IT기기들이라 단순히 휴대폰만 멀리 한다 한들 큰 소용없음에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말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그 중독을 전가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 주말 대형몰에 갔었고, 보기 불편한 장면들을 여럿 보았다. 육아야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니, 충분히 걷고도 남을 다 큰 애를 유모차에 태우든 말든 그건 개인 선택이겠거니 했다. (유모차가 좁아 삐져나온 다리 때문에 쳐다보게 됐다.) 하지만, 아이가 잡고 보기 편한 휴대폰 케이스까지 씌워가며 아이에게 휴대폰을 주고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옆에도 그 옆에도.. 아이가 주변에 신기한 것들은 절대 아무것도 못 보게 그저 휴대폰을 쥐어주라는 거부 못할 명령이라도 받은 듯, 휴대폰을 집어삼킬 듯 쳐다보는 아이들 투성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바보가 되어가는 만큼 쇼핑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궁금한 것 투성일 게다. 이거 모야? 저건 모야? 를 무한 반복하고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그 질문의 깊이가 깊어져 부모들은 애를 먹고 그래야 하는 거다. 하지만 휴대폰 속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과연 그렇게 커가고 있을까? 휴대폰을 뺏으려 할 때 과잉 반응하는 아이를 보며 되려 ADHD라며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진 않을까? 폭력적이라면 그 이유는? 다른 아이들보다 창의성이 떨어진다며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학원을 뒤늦게 부랴부랴 알아보고 있진 않을까? 과잉 행동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진 않을까? 진짜 모르는 걸까?
어쩔 수 없는 선택?
육아란 해본 사람들만 아는 정말 극한의 일이다.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시험대에 올려지는 기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손쉽게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난 역시 육아를 하면서도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었고, 쉬이 화도 안 내고 육아 따위 척척 해내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휴대폰과 함께라면 말이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육아를 하면서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는 선택은 지극히 본인들의 선택이다. 말도 못 하는 갓난아기가 휴대폰을 달라고 할리는 없지 않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란 말이다. 휴대폰을 쥐어주면 조용해지고 떼도 쓰지 않으니 당연히 편할 수밖에 없다.
육아는 편한 게 맞는 걸까? 그럼 더없이 좋겠지만 편하기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한 생명을 잘 키워내기 위해 기꺼이 인내해야 하는 과정이라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육아를 편하게 하기 위해 맞벌이니 어쩔 수 없다, 밥 먹을 때만 보여주는 거니 괜찮다 등 휴대폰을 보여주는 차고 넘치는 명분을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휴대폰이 아이들에게 미친 악영향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괜찮을 수 있을지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세계를 탐험하고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에 빠져 시각적으로만 자극받는다면, 그들의 궁금증과 창의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아이가 과잉 반응하거나 주의력이 흐트러질 때, 이에 대한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는 게 맞을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육아는 정말로 극한의 과제일 수 있지만, 그저 편하기 위한 선택을 이어 간다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가될 것이다. 사랑하지 않아서 일부러 휴대폰을 쥐어주진 않았을 거다. 모든 원인을 휴대폰으로 삼을 순 없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분명하다. 직장인이 한 가지 일에 하루 평균 3분 이상의 집중력을 갖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만 봐도 그렇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그에 따른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