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을 가야 돼 말아야 돼?
아기가 생기고 부부 사이에 의견이 가장 많이 갈리는 주제 중 하나가 '응급실 출동 여부'입니다. 아기가 열이 나는 경우 엄마 아빠가 흔히 겪게 되는 일입니다. 다행히 제 경우는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 이견이 없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모성애로 완전 무장한 엄마들이 아빠들보다 '더' 걱정을 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합니다. 어린 아기에게 열은 치명적일 수 있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급한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습니다.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으나, 대처의 '긴급도'가 다른 거죠. 아래와 같은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늦은 밤 아기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괜찮길 바라며 '토닥토닥' 잠을 재워보지만, 열은 점점 오르고 아기 얼굴에 아픈 기색이 역력해집니다. 얼른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정상 수치를 꽤나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응급실'을 떠올리고 아빠에게 출동을 '제안'합니다. 이때, 아빠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습니다. "그래! 얼른 가보자!"라고 반응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합니다. 한시가 급한 위기상황에 말이죠. 그렇다고 아빠가 걱정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단지, 남자와 여자의 태생적 다름으로 자기도 모르게 '해결사'로 둔갑하고, 본능적으로 응급실에 도착해서의 조치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봅니다.
'응급실에 간다고 뭐 다를 게 있을까?'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이마에 물수건 혹은 패드를 대겠지?'
'해열제를 먹이고 상태 변화를 지켜보겠지?'
'그래도 열이 안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근데 보통 저 정도 하면 열이 내리지 않을까?'
그러다 스스로 결론을 냅니다. 응급실 가도 별 거 없으니 집에서 조치해 보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애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어라? 뭔가 잘못됐습니다. 가봐야 별 거 없을 게 '확실'해서 얘기한 것뿐인데, 책임 소재까지 운운하니 당황스럽습니다. 이 순간을 모면 혹은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래 여보, 응급실 가보자"
괜한 의견 개진으로 불편해진 분위기를 한껏 머금고 응급실로 향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동의할 걸 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AS기사를 부르면 주인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어 버리는 전자제품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아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아기의 열이 내리기 시작하는 거죠. 의사가 오더니 체온을 잽니다. 집에서 잰 체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상황은 아빠의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아기의 몸을 물로 닦아주고 이마에 패드를 붙여 줍니다. 완벽한 해열을 위해 집 식탁에 버젓이 올려져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해열제까지 먹여 줍니다.
"해열제 먹었으니 열 내리는지 좀만 지켜볼게요"
몇 분 뒤 다시 체온을 재보니 이제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가하셔도 됩니다."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내 예상대로 진행됐음에 조금은 뿌듯하고 동시에 괜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허무하지만 그저 침묵합니다. 아기가 괜찮아진 지금 순간에 감사하고 늦은 밤 잠을 청합니다.
아빠의 육아 1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성애와 부성애의 차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 계산을 하다 보면 엄마들보다 대처가 늦을 테고, 이는 자칫 자식 걱정을 하지 않는 무심한 아빠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귀찮아서 혹은 병원비가 아까워서 아빠들이 주저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마찬가지로 엄마들이 그저 '호들갑'을 떠는 건 더욱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바로 병원을 떠올리는 겁니다. 태생적 차이로 인한 대처의 차이입니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그 존재만으로 감사한 아기에게 늘 강조하듯, 아기의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건 엄마나 아빠나 다르지 않습니다. 대처에 있어서의 차이점만 서로 알아주면 되겠습니다. 또한, 아빠들은 엄마들의 ‘긴급함’ 뒤에 숨어있는 '자식 걱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엄마들은 아빠들의 ‘느긋함’을 ‘무심함’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