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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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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l 12. 2023

33. 훈육

식사교육의 어려움

아기의 자기주장이 날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데 아직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고 상대방은 그 요구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안 된다고 하니 얼마나 갑갑하고 화가 날까. 그런 심정적 괴로움은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란 게 나와 아기의 갈등 포인트이다.


그래서 아기는 요즘 떼와 짜증이 어마어마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잘 가지고 놀던 물건들도 집어던지며 화풀이를 하거나 바로 뒤로 드러누워서 데굴데굴 구른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여동생의 아기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선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나도 저렇게 물건 집어던지고 드러누워버리는 건 처음 봤다. 그런 건 그냥 만화적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성질머리는 어디서 온 걸까 한탄하니까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렇다. 나를 닮았다. 어릴 때 내가 저랬단다. 처음엔 머리 다치지 말라고 잡아줬는데 이제는 본인도 아픈 걸 알아야 안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위험한 물건만 치워둔다. 우리 아기, 통각이 없는 건지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성질나면 그냥 구른다. 아픈 걸 모르나 보다. 그래도 며칠 전부터 물건을 던지는 건 단호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알아듣는지는 알수 없으나 이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했으니 반복해서 알려주는 수밖에.


이제껏 위험한 것, 더러운 것 이외에 특별히 아기에게 무엇을 금지하거나 강제한 적은 특별히 없다. 싫어해도 하는 것은 양치질 정도? 수면교육도 꽤나 단호하게 진행하긴 했다. 사실 16개월 아기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따라오게 하는 것 이외의 교육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안 하려고 하면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을 뿐.




하지만 최근 들어서 훈육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는 지점이 있다. 바로 식사교육이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 정도는 늘 해왔다. 아기의자에 앉아서 먹기, 먹는 것에 집중하기, 식사 전에 간식을 먹지 않기 같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중간중간 흐트러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대체적으로 큰 흐름은 지켜왔고 아기도 잘 따라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던 과정이었다.


식사시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우리 아기는 입이 짧고 자주 먹는 타입이란 걸 설명하고 싶다. 신생아 시절부터 조리원에서도 산후조리사님에게서도 들었던 이야기가 "뱃골이 잘 늘지 않네요."였다. 내가 봐도 우리 아기는 다른 아기들보다 적게 먹었다. 다행히 키는 평균보다 큰 편이었지만 몸무게는 늘 하위 20프로 정도를 맴돌았다. 산후조리사님이 아기를 목욕시킬 때 내가 "원래 아기들은 이렇게 불쌍하게 말랐나요?"라고 물었을 정도였다. 접힌 살? 그런 건 우리 아기에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 아기에게 뱃골을 늘린다며 분유를 넉넉히 타서 주거나 수유텀을 늘려보려고 애썼던 건 지금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꿈수라고 해서 아기가 잘 때 분유를 먹이는 것도 있어서 시도를 해봤는데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


아기는 식사할 때 단 한 가지도 거슬리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 반찬의 식감이 이상하거나 너무 차거나 뜨겁거나 자기가 원하는 형태나 크기가 아니거나 또는 기타 등등의 이유로 아예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겠다고 입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하라고? 나라고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데 애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반년이 넘게 몸무게가 제자리걸음을 치면 사람이 "제발 먹어주기만 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갓 지은 밥과 세 번 정도 먹을 분량의 국 한 가지, 반찬 두세 가지를 적절한 온도로 아기에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아기에게 맞춰서 정성스럽게 해 줘도 그날 기분이 틀어지면 모든 게 틀어지곤 한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땐 그나마 할만하다. 요리를 힘들어하는 나 대신 장보고 요리를 해두고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이 맞으면 아기 식사도 남편이 먹인다. 하지만 오늘처럼 남편이 출장을 가서 며칠 또는 일주일 넘게 집을 비우면 식사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정도다. 오늘은 잘 먹어줄까? 밥을 던지면 어떡하지? 오늘은 이걸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어 하려나? 또 난장판이 되면 난 참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식사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오늘도 힘든 날이었다. 사실 훈육은 어제부터 시작했다. 먹다가 갑자기 떼를 쓰면 받아주느라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 이것부터가 나에게 큰 도약이었다. 오늘은 다섯 번이나 식사 거부를 하며 떼를 써서 아기를 아기의자에서 내려서 안방에 데려가 진정하게 했다. 결국 밥을 다 먹긴 했지만 다 먹이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30분이 되면 치우자고 다짐하고 시작했지만, 막상 다섯 수저밖에 안 먹었는데 30분이 지나버려서 쉽게 포기가 안 됐다. 사실 정말 포기가 안 되는 이유는 아기가 배고프지 않아서 식사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떼를 쓰고 나서 진정이 되면 아기는 배고프다는 표시를 한다. 다시 자리에 가겠다고 하는 거다. 또는 간식 칸에서 떡뻥을 가져오거나 냉장고를 두드려 과일을 찾는다. 그리고 아기와 내가 대치하는 때는 주로 저녁시간이다. 잠투정과 밥투정이 함께 오는 거다.


저녁 먹는 시간에 떼를 쓰면 난감한 점은 그 이후에 보충해 줄 식사가 없다는 점이다. 몇 번 배고픈 채로 잠에 든 적이 있다. 그러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심하게 울거나 다음날 아침조차 너무 배가 고파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운다. 그럴 거면서 왜 얌전하게 먹지 않고 떼를 쓰는 건지. 오늘도 밥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울고 싶은 기분을 꾹꾹 참아가며 한 시간 동안이나 밥을 먹인 거였다. 그래도 밥 먹을 때의 고집을 받아주지 않고 상황을 전환하는 게 도움이 될는지, 아니면 이것도 잘 맞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 고집을 다 받아줄 여유가 내게는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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