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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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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n 21. 2023

32. 일상기록-10

2023.6.21.

눈 깜짝할 새에 쑥쑥 크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그때 기록해두고 싶은데 컴퓨터 앞으로 가기가 참 어렵다. 트위터처럼 짧게 짧게 쓰고 넘어가면 접근성이 더 빨라질 텐데 어쩐지 트위터에 쓴 아기 이야기는 금세 휘발되어서 아쉽다.




그저께부터 어쩐지 목소리가 우렁차졌다. 원래도 쩌렁쩌렁하긴 했지만 지금은 뭔가 표현하고 싶은데 단어가 되지 못한 것들을 큰 소리로 내뱉는 듯한 느낌이다. 조만간 말문이 트이려나.


엄마, 아빠, 아기, 이거 같은 단어들은 옹알이일 때도 있고 명확한 단어로 들릴 때도 있다. "엄마 어딨어? 아빠 어딨어? ㅇㅇ이 어딨어?" 이렇게 물어보면 정확히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단어의 뜻을 명확히 알고 쓰기는 하는 것 같다. 그 이외의 단어들은 자주 내뱉지는 않는다.


몸의 명칭들을 거의 익혔다. 머리, 머리카락, 눈, 코, 입, 귀, 손, 배꼽, 다리, 발을 샥샥 찾아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린이집에서도 자꾸 상의를 올리고 배꼽을 만진다고 해서 배꼽은 좀 자제하게 하고 싶은데 요즘 지칭하기 제일 좋아하는 부위라서 한동안은 더 그럴 듯싶다.


내 입모양을 유심히 바라본다. 오늘은 아기에게 동요를 불러주었더니 평소에는 몸을 흔들흔들하며 노래를 즐기던 아기가 내 입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관찰하는 모습이 진지해 보여서 대견하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으아아아" 하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다. 내 입을 바라보다가 내가 하는 단어를 불분명하지만 따라 하기도 하고 의성어를 곧잘 흉내내기도 한다. 요즘엔 청소기에 푹 빠져 있어서 청소기의 "위이잉" 소리를 내가 흉내 내었더니 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모사하는 능력도 뛰어나서 깜짝 놀란다. 요즘 청소기를 보고 가지고 놀고 싶어 해서 아기용 장난감 청소기를 하나 사주었더니 어른들이 청소하는 모습 그대로 따라 한다. 어쩜 물건을 치우고 구석구석 청소기를 움직이는 모습까지 날 따라 하는지 아기의 관찰력도 대단하구나.


자기도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컵 사용을 조금 늦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도자기 머그컵으로 먹겠다고 시도하다가 온몸이 다 젖는 경우가 많아져서 아기용 물컵을 사줬다. 뽀로로 캐릭터를 좋아해서인지 뽀로로가 그려져 있는 컵을 사줬더니 행복해한다. 물을 조금 담아서 밥 먹을 때 줘보니 생각보다 안 흘리고 잘 먹어서 소근육 사용이 정교해졌구나 싶었다. 하지만 물로 장난치는 일이 반이라 역시 작은 컵을 써도 물이 온몸을 적시고야 물 마시기 놀이가 끝난다. 여름이어서 다행이다.


포크로 과일을 먹는 행동도 곧잘 한다. 아직 찍는 것까진 서툴러도 디저트포크로 흘리지 않고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에는 포크로 줘도 입만 벌리고 싶어 하거나 포크에 있는 걸 다시 손으로 뽑아 먹었는데 이제는 내 도움을 받아 과일을 찍어서 스스로 입에 먹는 것도 가능해졌다. 수저를 쓰는 것도 서툴지만 그래도 성공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아기용 크레용을 사주었는데 하도 입으로 먹으려고 해서 치워두었더니 어디에 있는지 못 찾고 있다. 그래서 내가 쓰던 파버카스텔 얇은 색연필을 주었더니 색깔이 많아서인지 열었다 닫았다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좋다고 난리다. 이제 제법 조심성이 늘어서 자기 몸을 찌르려고도 하지 않고 종이를 주면 콕콕 찍어보면서 색을 칠하려는 행동을 한다. 아직은 끼적이기가 서툴지만 얼른 크레용 찾아서 편하게 놀게 해 줘야지.




힘이 확실히 좋아졌다. 오늘은 내가 수박을 주려는데 기다리기 힘들다고 옆에서 싱크대를 잡고 클라이밍을 하고 있어서 기겁했다. 아기가 이렇게까지 힘이 좋아도 되나? 하긴 자기 몸뚱이만 한 것들도 들고 다니다 보니 단련되었나 싶다. 그런데 워낙 힘으로 버티고 기어오르고 내리고 하려다 보니 뒤로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머리통이 남아나지 않겠다 아기야..


걷는 스킬이 확실히 좋아졌다. 놀이터 기구 중에 언덕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걸 기어올라가서 기어 내려왔다. 온몸이 시커메져서 씻긴다고 한바탕 난리였는데 이제는 오르막 내리막을 스스로 걸어 올라가고 걸어 내려온다. 한 달 만에 이렇게 커버리다니! 놀랍다.




떼가 늘었다. 이 문제로 남편이랑 몇 번 싸우고 마음 상하고 육아법 찾아보고 난리 부르스였다. 함께 소아과 의사들의 유튜브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훈육을 제대로 하기로 했다. 안 되는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기, 떼를 쓰면 무언(무시)하기, 구구절절 잔소리처럼 말하지 않기, 다른 것으로 시선을 돌려주기. 첫날은 반응이 어마어마하고 우리도 우왕좌왕했지만 두 번째 날부터는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인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위기가 온다. 일관성이 제일 어렵다.


포인팅이 조금 더 정교화됐다. 정확히 가리키고 사물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말해주면 알아듣는다. 실제 사물과 그림/사진과의 연결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새를 알려주고 파닥파닥 동작을 해주었더니 밖에 나가서도 새를 가리키고 파닥파닥 동작을 할 줄 안다. 걸어가면서 주변 지형지물이나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건 나무야, 이건 꽃이야, 나뭇잎이야, 인사해."라고 말하면 반가워한다.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인사하는 것도 귀엽다. 물론 강아지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지만.


노래 가사가 나오면 율동을 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아기 손을 잡고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을 움직여주기도 하니까 노래에 따라 율동을 다르게 해낸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는 손을 반짝반짝 흔들고 머리어깨무릎발은 머리까지 밖에 못하지만 어쨌든 열심히 해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래로 불러주지 않는 곡들도 나름 구분을 한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머리를 기울이며 헤엄치듯 하고 도레미송은 엉덩이를 들고 위아래로 흔든다. 어쩜 이렇게 똑똑하고 귀여울 수가! 곡의 선호도가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곡은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그것만 여러 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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