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피포페인팅을 하고 있다. 일종의 십자수 그림버전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컬러링북 같은 것이 유행해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어떤 색을 써야 할지 12색 색연필로도 48색 색연필로도 색 배치하기가 어려워서 완성해 본 적이 없다. 이것도 막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 도전하지 않다가 남편의 동료가 몇 주에 하나씩 작품이 나오는 게 즐겁다며 꾸준히 한다는 소리를 듣고 유튜브로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다가 홀린 듯이 작품 하나를 구매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있는 숫자에 색을 칠하면 된다는 점이 마음속 진입장벽을 낮춰준 듯하다.
하루에 색칠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아기를 재우고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나면 9시 반에서 10시 정도라 다음날 피곤하지 않으려면 주어진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이니까. 그나마도 아기가 아파서 수시로 확인해야 하거나 몸이 피곤하거나 아기 반찬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건너뛰는 날이 일주일 중 반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내서 20가지 넘는 색을 거의 칠하고 이제 3가지 색만 칠하면 완성이다.
이렇게 느릿느릿한 진도인데도 색을 칠하고 나면 괜히 뿌듯하다. 그래서 오늘 색칠한 곳을 꼼꼼하게 마무리했나 한참이나 다시 살피기도 하고 오늘의 진도를 해냈다고 변화 사진도 찍어보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아기를 안고 "이게 어제 엄마가 칠한 거야. 잘했지?" 하면서 자랑도 한다. 새로운 취미가 요즘 내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 된 게 기쁘다.
운동도 하고 있다. 줄넘기와 요가를 한다. 조금씩 체력이 늘고 있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즐겁지는 않다. 사실 이번주에는 아기가 내내 아팠다는 핑계로 줄넘기는 한 번도 하지 않고 요가만 했다. 숨이 차는 운동을 해야 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숨차는 운동인걸. 이건 즐거움보다는 생존을 위해 한다. 그래서 조금 지지부진하다. 폭식을 찐 살도 빼려면 식습관과 운동을 잘해야 하는데 나는 몸을 통제하는 일에는 늘 흥미와 의욕 없이 억지로 해낸다. 돈 내고 배우는 운동을 해야 그나마 꾸준히 하고 체력도 쭉쭉 붙어서 목표설정도 하게 되고 늘어가는 기쁨이 있는데 독박육아는 그럴 기회가 없다. 아기가 일주일 아프면 그 주와 그다음 주까지 골골대는 게 내 일상이다.
아기를 키우는 일이 내 주된 업무이지만 글쎄. 육아에서 성취감이란 너무 어려운 단어다. 아기는 쑥쑥 자라고 매일매일 새로운 성장을 보여주는 게 기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아기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이건 '나의 성과'가 아니다. 아기의 성과지. 아기를 키우느라 노력을 잘했기 때문에 받는 보상 같은 게 아니라 아기는 나의 돌봄과 사랑을 받아 순조롭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아기의 성장을 내 것처럼 기뻐할 만큼 이타적이지도 않다. 오롯한 내 것을 가져야 나의 성취로 느껴진다. 아, 나는 오늘도 적성이 아닌 일로 잘 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구나. 애쓴다!
그래서 육아 말고 다른 일로 성취감을 찾는 게 요즘 나의 목표다. 오늘은 이전 동료이자 친한 지인으로부터 다시 모임에 나오자는 권유를 받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가면 우리 아기가 가장 어리고, 아직 돌봄이 필요한 나이라 아기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오게 될 수 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모임들 중 유일하게 아기 동반을 배려가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받아줄 수 있는 곳이다. 장소부터가 대관하는 키즈카페인 데다 돌봄 인력도 따로 구해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지. 아기를 나 혼자 어딘가에 데려간다는 자체가 부담이었지만 이제 나도 많이 성장했고 아기도 이제 놀이터를 사랑하게 돼서 바깥 활동도 조금씩 시작해볼까 싶다. 뭐라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제보단 뭔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