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아기의 기록
아기는 부쩍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는 분명하고 구체적인데 반해 아직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른다. 양육자인 나는 그걸 두루뭉술하게 이해하고 소통의 어긋남은 보통 아기의 울음과 함께 파국으로 치닫는다.
오늘도 역시 그러했다. 아기는 수시로 나에게 요구사항을 표현하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몸짓언어와 맥락을 통해 메타인지를 발휘하여 아기의 요구를 실현해 준다. 어긋날 때면 “끼야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뒤집어지거나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부정을 표현하거나 울며 나에게 매달린다.
맛있는 간식을 먹거나 모처럼 놀이가 재미있거나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잠깐의 평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10분에 한번 꼴로 아기에게 이심전심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세 번에 한번 정도는 어긋나서 눈물바다가 되곤 한다. 그런 걸 하루종일 겪고 나면 정말 너덜너덜해진다.
머리로는 잘 안다. 이것 또한 성장의 과정이고 지나가는 거라고. 하지만 안다고 고통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유 있는 고통이 될 뿐. 약간의 희망은 그래도 평일에 6시간 정도는 어린이집을 간다는 것이고 그보다 큰 절망은 아기가 자주 아프니 못 가는 날도 생기고 주말은 하루종일 그 짜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명하는 것 같지만 아기는 예쁘다. 울고 짜증 내는 걸 받아주는 순간 모두가 고통인 건 아니다. 다만 도망칠 곳 없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몸에 힘이 쭉쭉 빠지고 예민해진다. 아기와 둘만 있는 시간이 두려울 때도 있다. 아니 자주 그렇다. 특히 아기를 먹이고 씻길 때가 더 그렇다. 그때 기분 맞추는 건 더 어렵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먹으려고 하고 발버둥을 치니까. 하지만 해야 할 것들은 해야 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것과는 관계없이.
사실은 남편이 있는 것도 체력적으론 나아도 정신적으로는 글쎄. 그가 노력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어차피 내가 아기와 같은 공간에 있는 한 내가 감당할 몫은 늘 남아있다. 그리고 아기는 그 순간 나만 찾는 게 제일 돌아버릴 것만 같다. 나도 백업 인력 말고 보충 인력 같은 게 되고 싶다.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물러설 곳 없이 책임을 진다는 건 무겁고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