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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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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09. 2023

42. 새로운 시작

낯선 곳에 정착하기

올해 들어 두 번째 이사다. 어릴 때부터 잦은 이사와 함께 살았지만 내가 스스로를 책임지고 배우자와 함께 합을 맞추며 아기를 데리고 하는 이사는 그 고됨이 남달랐다. 그래도 드디어 어떻게든 해내고 이제 이사 2주 차를 마무리 짓는 시점이 되었다. 아직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매일 새로운 문제와 씨름하고 있지만 적응을 잘 해내고 있다.




나, 남편, 아기 이렇게 세 식구는 세명 모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나마 나는 양가 조부모님 댁 사이의 지역이라 그나마 이 지역에 대해 약간 익숙하기는 하다. 하지만 나 역시 차로 지나다니기만 했지 살아본 적은 없는 지역이다. 심지어 원래 살던 중소도시 규모도 아니고 시골이다. 읍면리 중에서도 ㅇㅇ면 ㅇㅇ리로 끝나는 그런 곳으로 새롭게 자리 잡은 것이다. 


이사를 온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 남편이 처음 자리 잡은 신혼집은 우리 둘이 근무하는 직장에 있는 지역으로 구했다. 둘 다 직장 때문에 이 지역에 살게 된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동네 자체에 잘 적응하고 산 편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맑은 날씨가 별로 없는 동네여서였을까. 아니면 도시 생활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을까. 처음에는 전원주택을 알아보고 다녔으나 관리하고 살 것이 많고 남편이 없는 날이 많은 나에게 조금 어려운 선택이었고 그러면 시골에 있는 아파트를 들어가자 하다가 다소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 사실 통근시간이라던지 시골살이의 불편함이라던지 그럼에도 집값은 비쌌던 그런 것들이 후회가 되긴 했지만 계약금도 걸고 대출도 착착 진행되니 "이제 와서 어쩌겠어?" 하며 행복회로를 돌리던 것이 여기까지 왔다.


주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응원하지 않았던 우리의 결정에 책임지게 되면서 약간 아득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부렁이지만 그래도 아주 싫지는 않았던 것은 그래도 한 번쯤은 도시를 떠나 살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아기와 살고 보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남편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고 그때의 조금 심심하지만 조용한 분위기는 살아가면서 가끔 꺼내볼 응원 같은 것이 되었으니까.




막상 시골로 이사오기를 정하고나니 의외로 가장 어려운 점은 아기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두 돌도 안된 아기는 전염병이나 접종, 검진 등의 이유로 자주 소아과를 가야 하는데 동네에 소아과가 한 곳도 없었던 것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여러 병원들 중 아기에 맞는 병원을 찾겠다며 5,6곳의 소아과를 돌았던 과거가 아주 달콤한 거였다. 어린이집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보낼지는 고민할 부분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면단위의 어린이집은 단 한 곳 밖에 없어서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차로 10분 거리 공단 근처에 아파트 단지들이 있어서 그곳에 소아과가 존재한다는 거였다. 눈이 아주 많이 와서 차를 타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은 크게 문제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어린이집 문제도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국공립어린이집이 개원한다고 해서 선택지가 늘어났다. 다만 그 어린이집은 12월에 개원하는데 나는 11월 초에 이사를 와서 한 달간 어수선한 집안에 아기와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한단 점이 조금 어렵긴 하다. 


잘 다니던 소아과를 옮기고 잘 적응하던 어린이집을 옮기는 문제는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막상 일이 닥치니 차근차근 해결되고 있다. 아기도 새 집에 와서 낯선 환경 때문에 예민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여기 오는 2주간 나와 남편이 24시간 붙어있고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격 덕분인지 부드럽게 지나가고 있다. 나와 남편도 더 추워지기 전에 아기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간다. 우리가 사는 곳은 관광지와 가까워서 모처럼 평일에 쭉 휴가를 낸 남편도 있겠다 이곳저곳 순회를 돌고 있다. 이제 곧 남편이 8박 9일의 출장을 떠나고 나면 나와 아기 둘이서 다시 이곳들을 돌아볼 것이다.




요즘 아기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생활 패턴이 바뀐 점이다. 평소의 아기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찍 잠드는 편이었다. 새벽 6시-6시 30분에 일어나 12시에 낮잠을 자고 14시-14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 잠자리에 들어 8시 전에는 잠에 드는 아기였다. 마치 우리 할머니처럼 새벽형이라 나에게 강제 미라클모닝을 선사해서 조금 괴로웠는데 이 집에 오고 나서 갑자기 아침 7시 반-8시에 일어나 13시 30분에 낮잠을 자고 15시 30분-16시에 일어나 8시 반에 잠자리에 들면 9시쯤 잠에 든다.


이렇게 되어 좋은 점은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조금 충분한 수면시간을 주고 아기의 아침루틴을 끝내고 바로 외출을 하면 10시 정도여서 대부분의 업장을 오픈런할 시간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새벽같이 일어나니까 아침루틴을 다 끝내도 8시고 어딜 좀 나가려면 다들 문을 안 열어서 문열 시간을 기다려 나가면 다시 아기 낮잠 잘 시간이 다가와서 오전시간이 허둥지둥 지나가곤 했다. 그리고 밤잠 시간도 늦어지니 아기 저녁을 먹이고 나도 저녁을 먹은 다음에 아기를 재워도 아기가 잠투정으로 힘들어하지 않아서 저녁밥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낮잠 시간이 너무 늦다 보니 이렇게 추워지는 날씨에 그나마 따뜻할 시간은 잠으로 다 보내버리고 오후에 나가려고 하면 오후는 해가 일찍 지니까 오후 외출은 시간을 어떻게 잡아도 이상해져 버린다. 그리고 확실히 늦게 자니 육퇴도 늦어져서 원래는 아기 재우고 이런저런 일을 해도 11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요즘에는 저녁 시간이 줄어든 느낌이라 일을 허둥지둥 끝내도 금세 10시가 되고 12시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곧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면 어린이집에 맞게 또 패턴이 변할 테니 지금 이 시기도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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