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다니고 두 달 지날 무렵,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 직장은 쉬면 얼마나 쉴 수 있어요? 진단서 드릴 수 있으니 쉬는 건 어때요?” 그 말은 내 상태가 심각하단 얘기였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못 알아먹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조금 더 힘들 때 요청해도 되나요? 쉴 수는 있는데 아직 버텨보고 싶어서요.” 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대답했냐고.
결국 3주 뒤 병원을 찾아가서는 두 달짜리 진단서를 받아왔다. 몸에 딱 외상이 발견되면 바로 쉬었을 텐데 3주를 더 생고생을 하고 나서야 이건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거다. 진단서에 쓰여있는 것은 우울, 불안, 식이장애, 수면장애 등등 여러 구질구질한 정신적 문제가 붙어있었고 난 아마도 상사가 이런 걸 읽어본다는 게 싫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이 대개 그렇듯이 또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며 밤잠을 설쳤고 상사에게 이걸 제출하는 날 나는 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올게 왔다는 듯이 나의 요양 기간을 물었고 연장 계획과 쉬게 되면 벌어지는 몇 가지 인사상의 불이익을 안내하며 내 의사를 확인받은 뒤 휴가를 승인해 주었다. 동료들도 나 때문에 늘어난 업무량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잘 쉬고 오라고, 꼭 나아져서 보자고 응원해 주고 위로해 주고 조금은 울어주었다. 병을 얻은 직장이지만 여태 버텼던 건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쉬는 게 결정 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인수인계할 자료들을 작성하고 내 업무를 받아갈 사람들이 최대한 덜 힘들도록 할 수 있는 업무를 모두 해두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나처럼 쉬게 된 동종업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마치 나는 일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파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듯이.
그러다가 나의 신체화 증상이 꽤나 다방면으로 심각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혹시 내 글을 우연하게 읽게 된 아픈 사람이 있다면 신체화 증상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원인이 된 사건 당시에는 어떻게든 그 일을 수습하고 사건 해결에 온 힘을 다하느라 내가 당한 모욕이나 상처, 높은 긴장도와 불인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생각보다 장기적이었고 끝난 이후에도 그 정신적 타격이 지속되어 온 게 큰 문제였다.
1. 신경이 늘 곤두서고 방어적인 태도가 된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남편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왜 화가 나 있어?”라는 말이다. 늘 작은 일에도 꼬투리 잡히고 그걸로 여기저기 들쑤시도 다니는 사람 때문에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고 대응할 힘이 떨어져 있었다.
2. 상황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느려진다.
교통사고도 생기고 몸에 이런저런 자잘한 상처가 늘었다. 교통사고는 상대 과실 100인 사고였지만 아마 내가 평소의 컨디션이었으면 더 작은 사고거나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거나 상황이 벌어지면 반응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3. 폭식과 단식을 반복한다.
복직 후 6개월간 7kg이 빠졌다. 음식물을 아예 먹지 못하거나 폭식을 하고 나서 소화불량이 와 다시 먹지 못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4. 글 읽기가 어렵고 집중을 할 수 없다.
나는 왕복 100km를 출퇴근해야 하는데 집중을 하지 못해 길을 잘못 가거나 쉬었다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서를 많이 읽고 작성해야 하는 사무직인데 점점 문서 읽는 시간이 느려지고 잔실수가 많아졌다.
5. 탈모가 왔다.
나는 원래 머리숱이 풍성했고 산후탈모조차 없었다. 그냥 손으로 머리를 쓸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6. 알 수 없는 미열과 무기력감 떨림이 있었다.
이 문제로 병원 순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코로나인줄 알고 검사도 수차례 했다. 집에서 쉬었더니 몸이 다시 돌아왔다. 나와 비슷한 증상에 대한 글을 읽고서야 이것도 스트레스성 반응이란 걸 인지했다.
7. 수면이 너무 과하거나 적거나 깊게 잠들지 못했다.
잘 때는 하루종일 기절한 듯 자거나 못 자는 날엔 꼬박 잠을 설치기도 했다. 수면제를 처방받아 자더라도 깊게 자지 못하고 악몽을 꾸는 일이 많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몫은 쉬는 동안 잘 회복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휴직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일을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