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부쩍 가까워지는 요즘입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품이 쏟아집니다. 기업과 정부에서는 혁신적인 인재를 구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함께 혁신적인 무엇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 잠시 서서 생각해보면 혁신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관습,조직,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주 먼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혁신은 쭉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과거의 어느 때에는 획기적이었습니다. 혁신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우리는 너무나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의 생활에도 깊이 파고들어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그런 혁신을 만났습니다.
요즘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면 혁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더불어 인상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생각납니다. 오래 전 유럽에 살던 이 화가는 기존 미술계의 판을 뒤집습니다. 너무나 획기적인 나머지 많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혁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존의 있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야합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풀밭위의 점심> 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당시에느 아카데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세였습니다. 이들은 여러가지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원근법의 적용입니다. 원근법은 평평한 화면에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기법인데요. 입체적이지 않은 캔버스에 입체적인 공간감을 줍니다. 위의 그림처럼 가까운 여인은 크게, 멀리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작게 그려 공간의 깊이를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당시의 화가들은 사람을 사람처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인간은 신격화되었습니다. 신의 모습을 매우 부드러운 톤으로 그렸습니다. 여성을 보면 결점없는 여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신은 신성하고 아름다우며 완벽한 인체의 비율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마네의 그림 < 풀밭 위에 점심>에 여신은 없습니다. 나체로 앉은 평면적인 여자만 있습니다. 더욱이 규칙처럼 여겨진 원근법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화가들은 인간을 신처럼 그렸지만 마네는 인간을 현실적으로 그립니다. 심지어 평면적입니다. 미화되지 않은 인간과 평면적인 모습은 기존 화가들이 보기에 손톱 에 낀 가시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풀밭위의 점심>을 보겠습니다. 밝은 대낮 노골적인 나체로 앉은 여인.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당한 포즈로 앞을 응시하는 그녀는 남자들이 아닌 관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왜인지 약간 불편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집요한 시선에 대한 답은 당시의 사회상에서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럽의 지배 계급인 백인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두가지 모습을 요구했습니다. 성욕을 채워주는 매춘부의 역할과 현모양처인 기존여성, 상반된 모습을 모두 원했습니다. 덕분에 매춘은 유행처럼 번져나갔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현모양처여야 했습니다. 매춘을 하지만 집에 가면 다정한 남편이고 예쁜 딸의 아빠인 것 입니다. 나체 여성의 모습은 지배계급의 이중성을 꼬집기 위한 요소인 듯 합니다. 당당한 여인은 묻습니다. 왜 여성에게 백인남성이 선호하는 역할을 강요하는지 말입니다. 여성의 모습을 마음대로 매춘부에서 현모양처로 가위질하는 이 시선. 폭력적입니다. 마네는 여성의 당돌한 시선을 통해서 당시 이중적인 시선을 가진 남성의 태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백인 남성인 마네가 기존 여성이 아닌 매춘부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품뿐 아니라 그의 정신도 기존 세상의 관습과 틀을 훌쩍 넘어섰기에 혁신적입니다.
이번 그림은 마네의 <올랭피아>입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당시 매춘부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제목부터 도전적이고 불편합니다. 작품을 보면 <풀밭위의 점심>에 있던 시선이 다시 등장합니다. 시선과 함께 당당한 나체의 여성은 당시의 지배 계급에게 껄끄러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그림을 위에서 본 우르노스의 비너스와 비교하면 마네의 혁신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위쪽 : 올랭피아/ 아래쪽 : 우르비노의 비너스 )
두 그림은 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 다른 느낌을 줍니다. 먼저 < 우르비노의 비너스>에는 여신이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여신이 약간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신 아래에는 충직한 강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공간감이 살아있는 그림입니다. 원근법을 사용해 공간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반면 <올랭피아>에는 평면적이고 불편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 여성은 나체이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미스테리한 눈길로 상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 대신 마르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여자가 정면을 보는 그림. 자세히 보면 이 여성의 직업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매춘부입니다.
목에 두른 목걸이, 하녀가 보내온 꽃 그리고 구겨져있는 침대보 등에서 그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올랭피아>와 <풀밭위의 점심>은 왜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불릴까요? 잘못된 지배계급의 행동에 직접 반대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쓰는 대신 그림을 통한 비판이 대중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 입니다. 특히 그림 속 인물이 그림 밖의 사람에게 던지는 시선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남성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 것 입니다.
다음 그림은 <피리부는 소년>입니다.
이 그림도 다를 것 없는 그림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명작과 비교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다시 한 번 <우르노스의 비너스>와 비교하면 아카데믹한 기존 그림에는 원근법, 신격화,입체감과 공간감을 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마네는 원근법도 사용하지 않았고 신격화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면적인 공간에 아주 심플한 배경과 강렬한 색체를 사용했습니다. 신격화 대신 윤곽선 진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이런 특징들은 인상주의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상주의자들에게 아버지라 불리며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 기존의 묵은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화가 마네는 분명 혁신적인 화가가 맞습니다. 그의 의도가 어찌되었던 미술은 마네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사람에게 혁신은 기회입니다. 마네처럼 수 많은 낙선과 냉소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만이 혁신이란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시대도 어차피 올 혁신이라면 부정적으로 피하는 것 보다는 내일을 준비하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상 마네의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