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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을녀 Sep 15. 2023

니체와 그림들

니체에 대한 주관적 해석 

서양 철학사 중 가장 유명한 말 중에 하나는 바로 니체의 “신은 죽었다”일 것이다. 신은 영원히 사는 존재인데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까? 그리고 왜 이 말이 우리에게 유명한 말일까?


니체의 철학을 설명하는 책과 논문은 다양하다. 그렇기에 니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3장의 그림과 니체의 주요 사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니체는 말했다. “발전을 원한다면 자신의 오두막에 불을 질러라” 즉 자신의 것을 완전히 버리라는 뜻이다. 이렇게 전의 것을 버리고 나면 혼돈이 찾아온다. 기준점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나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전의 가치에 뜯어보고 의심하고 분리하고 재정비해야한다.  이 작업을 하게 되면 기존의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것이 그 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말에서 허무주의와 혼돈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니체 전 시대는 중세시대였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며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중세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기존의 가치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서양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그러한 것이었다. 신의 죽음으로 인간의 이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혼돈과 허무주의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림에 적응하기 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엇을 표현한 그림인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기존의 우리가 알던 그림은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형태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기존의 형태를 없앤 자리에 도형을 채웠다.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거장이다. 입체주의란 그림의 형태를 도형단위로 해체하고 분리하고 자르고 붙인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다. 기존 것의 종말과 현대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새로운 바람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입체주의란 말 그대로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는 그림이다. 이전의 화가들이 보이는 대로만 드렸다면 이 새로운 방식은 다중시점을 사용했다. 즉 여러 관점에서 장면을 묘사한 후에 그 장면들을 붙여 넣은 것이다. 가슴은 정면, 다리는 뒷면, 몸통은 옆면 이런 식으로 장면을 묘사한 후에 그 부분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기존의 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치를 의심하고 분해하고 재창조 했다는 점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은 니체의 혼돈과 닮아있다. 


니체의 혼돈은 무질서하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길 자체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질 수 있다. 허무주의를 물이 가득 찬 욕조로 비유하자면 더러운 물이 가득 찬 욕조는 기존의 제도들이고 물이 빠져서 욕조가 텅 비어있는 상태, 그 상태가 니힐리즘이다. 즉 기존의 것은 버렸으나 어떤 것을 채워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이다. 

니체는 이에 대한 답으로 초인을 이야기했다. 

초인은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마침내 자유로워진 의지의 사람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니체의 초인과 프리다칼로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프리다칼로는 매우 힘든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항상 담담하다. 특히 화가를 사슴에 비유한 이 그림은 누구보다 의지적으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자신의 중심이 안 쪽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고요한 호수같은 표정이 돋보인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프리다칼로의 의지력을 가진 초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바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이나 자기애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젠가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았을 때 기쁨뿐 아니라 모든 분노와 아픔 고통 좌절과 외로움까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날 것 그래도 사랑하는 것을 아모르파티라고 한다. 

아모르파티와 가장 어울리는 그림은 단연 르네 마그리드의 회귀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은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음미할수록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 

여기 밤과 낮이 있다. 그리고 새와 알이 있다. 밤은 낮으로 이어지고 새는 알로 이어진다. 또한 낮은 밤으로 이어지고 알은 새 로 이어진다. 즉 모든 것은 기존의 것과 어느 것도 바뀌지 않은 채 똑같이 반복된다. 

이 그림을 니체가 봤다면 아마도 이렇게 물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의 인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할 것이냐고. 

아마도 니체의 대답은 항상 "그렇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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