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날도 꿉꿉한데 제철 과일을 먹어볼까 하고 집 근처 과일가게에 들렀다. 수박, 참외, 복숭아는 박스째 쌓여있고, 알이 길쭉한 사파이어 포도, 뜬금없이 고구마도 있었다. 둘러보다가 막 냉장고에서 꺼낸 듯 시원한, 초딩 주먹만 한 자두가 한 봉지 일곱 개에 구천 원이었다. 강북 물가 치고는. 사장님한테 달아요? 물으니 후무사 자두라고 했다(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좀 웃겨서 후무사 자두가 맛있냐고 하니, 가게 오픈할 때 안 먹어봤냐고 하고는 처음 와봤다 하니 그다음부턴 별 말이 없었다. 무언의 자부심을 느끼며 한 봉지 골랐더니 쓱 가져갔다. 바나나 한송이 골랐더니 또 쓱 가져가고. 여전히 말없이 상처 난 자두를 골라 바꿔 담던 사장님. 여기에 썸머킹이란 품종의 청사과를 한 봉지 더 골랐다. 뭐 특별히 할 말이 있던 건 아니지만 재밌었다. 서둘러 집에 와서 찬물에 자두를 씻어 크게 한 입 물었는데
그 순간 사장님의 말줄임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형광등 켜지는 것 같은 달달함. 숙성이 잘 되어 과육이 무척 부드럽고 과즙도 턱으로 흐를 정도로 많았다. 엄청 단데 껍질의 신맛이 살짝 어우러져 상큼했다. 자두 한 알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 먹고 난 뒤 느껴지는 약간의 허무함..
역시 여름을 나는 데엔 시원한 과일이 제일인 것 같다. 아, 청사과도 과육이 단단하고 새콤해서 맛있었다. 올여름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