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긁게 만드는 마성의 사이클
가려움 긁기의 편안함에 대해: 정신물리학 및 지형적 평가
“The Pleasurability of Scratching an Itch: A Psychophysical and Topographical Assessment”
2019년 이그노벨상 평화부문 수상작
모기ㅅㄲ
아
올해 늦모기가 말썽이다. 빡쳐서 잠에서 깨다 깨다 모기의 가치를 하나 찾아냈다. 내부 평화를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인류가 모기와 전쟁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남과 북 의견이 하나가 될 것이다. 인류 등장 240만년만에 인간들 사이에 기적같은 지구촌 역사가 탄생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모기는 짜증난다. 가려워서.
긁는 욕구는 정말 저항하기 어렵다. 게임에서 저 자식은 내가 꼭 죽여야 하는 타이밍에도 코가 간지러우면 마우스에서 손을 떼야 하지 않던가. 체면치레가 중요한 사람도 엉덩이가 간지러우면 당장 바지 속에 손을 넣을지 고민한다. 아이들, 그리고 나같은 참을성 없는 어른이들은 넋놓고 긁다 피도 본다. 아니 근데, 가려운 게 뭐라고 이정도로 희생을 감수하는 걸까? 왜냐, 좋으니까…?
가려워야만 즐길 수 있는 쾌락
엄밀히 말하면 긁어서 느껴지는 쾌락이긴 하다. 과학자들이 ‘긁음의 쾌락’을 분석했는데, 가려우면 가려울 수록 긁을 때 더 강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단다. 안 가려운데 아무데나 한번 긁어보니 내가 나랑 싸우자는 건가 싶게 아프기만 하다. 가려움-긁음-더가려움-더긁음 사이클은 중독성 있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피가 날때까지 긁고 또 긁는다.
모기에 어디 물렸을 때가 가장 극혐인가?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긴 한다. 어쨌거나 부위에 따라 가려운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한 것 같다. 일단 과학자들은 팔뚝, 등, 발목 세군데를 비교했다고 한다. 이중 어디가 제일 간지러울지 상상해봤다. 일단 팔은 아닌 것 같다. 과학자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실험에서 팔은 제일 최약체였다.
당신은 미칠듯이 가려우실 거고, 직접 긁으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명의 사람들에게 실험하면서 가려움의 양을 어떻게 맞췄을까? 모기를 넣고 딱 한방만 쏘게 한다음 잡는다? 그건 너무 모기 의존적이다, 걔가 이미 점심을 먹고왔으면 어떡해. 여기선 벨벳콩이라는 식물을 이용했다. 모잠비크에서는 미친 콩이라고 말한다. 미쳐버릴것 같이 가려워서 그렇다. 콩 꼬투리 털에 있는 무쿠나인이라는 물질 때문에 이 털에 닿은 사람은 격렬하고 통제 불가능하게 긁게 된단다.
공평한 가려움을 유발하기 위해, 측은한 대학원생 누군가가 벨벳콩 털을 40~45가닥씩 세서 나눠놓고 피험자들을 불렀다. 장갑 꼈겠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많이 가렵고 괴로웠을 것이다.
소정의 사례비와 본능적인 괴로움을 자발적으로 맞바꾼 18명의 건강한 피험자들이 모였다. 자발적이라는건 피험자들이 자원했을 뿐 아니라, 언제든 그만두고 집에 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려움을 측정하겠다고 피험자에게 벨벳콩 털 40여가닥을 문질렀을 때,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가렵더라도 피험자들은 스스로 긁을 수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실험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연구진은 30초마다 피험자에게 가려운 정도를 물었다. (하나도 안 가려운걸 0, 뒤질거 같은 걸 10이라고 하면 지금 몇 정도 가려우세요?)
충분한 데이터를 위해 피험자들은 5분 이상 가려움을 참아야 했다.
긁는 것도 공평해야 한다. 과학이니까.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기들 중 인간 긁개 한 명을 임명했다. 긁개의 임무는 거칠거칠한 플라스틱 솔을 들고, 최대한 일정한 힘으로 사람들을 긁어주는 것이었다. 시원하다던 피험자들이 아프다고 말을 바꾸면 긁개의 임무 완수. 연습하고 실험하면서 긁개는 긁기 장인으로 각성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번 긁혀보고싶다.
콩 털을 바르자마자 숙련된 조교가 해당 부위를 긁어줬다. 그리고 30초마다 가려운 정도와, 시원한 정도를 물었다. (하나도 안 좋은걸 0, 천국인가 싶은걸 10이라고 하면 지금 몇 정도 시원하세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그나마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어디를 긁을 때 제일 행복했나요
팔뚝은 제일 안 가려웠던만큼, 긁을 때 기분도 그냥저냥이었다고 한다. 잃는게 적으면 얻는것도 적은게 인생이다.
보통 모기가 사건현장에서 토낀 뒤에 모기에 물렸다는 걸 알아차린다. 모기는 진화 복받은 줄 알아야 한다. 물린 뒤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가려움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벨벳콩털도 마찬가지였다. 등짝의 경우 가려움의 최고치를 찍는데 30초가 걸렸고, 이때 평균 8.6만큼 가려웠다 한다. 절반 이상이 9나 10을 말했다는 것이다, 환장했을것이다.
발목은 더 오래걸렸다. 최대치를 찍는데 2분이나 걸렸고, 그동안 계속 가려워졌다. 최대치 자체는 8.3으로 등보다 좀 나았다. 이만 하면 발목이 더 고통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발목을 긁을 때 더 기분이 좋다. 긁기 시작했을 때부터 끝까지 좋다. 다른 특장점도 있다. 다른 부위는 가려움 수치가 쭉 내려가며 쾌감도 같이 내려가는데, 발목의 경우 가려움은 쭉 떨어지는데도 쾌감수치는 더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가장 좋은 시점은 발목을 1분간 긁었을 때이며, 시원함은 7.87에 달한다. 발목은 계속 긁게 돼서 짜증나는 건줄만 알았다. 사실 우리는 발목에서 최고의 쾌감을 얻어왔던 것이다.
이 연구에서 팔뚝, 등, 발목 세군데만 실험한게 아쉽지만 너그럽게 이해하자. 아무래도 발바닥과 엄지발가락이 안 들어간게 아쉽긴 하지만, 18명의 사람들을 한 번씩만 긁어준다 해도 54번의 실험이 필요하다. 300초씩만 긁었다고 해도 16,200초고, 270분이고, 네시간 반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네시간 반동안 남 긁어주는 사람 생각도 해주자. 여기에 지원자 공고내고 일정 맞추고 실험 설명하고, 서류쓰고, 중도 포기 원하시면 하시라 안내하고, 하나 끝나면 안 간지러울때까지 10분 이상 쉬었다가 다음 털 준비해서 문지르고 하다보면 생각보다 더더더더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나중에 이들의 후계자들이 다른 부분도 구석구석 긁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자. 집단지성은 그런 식으로 발달하니까.
2019 이그노벨상의 ‘평화상’
이 연구는 가려움을 긁을 때의 행복을 최초로 측정한 공로로 2019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받았다. 실험 참가자들의 괴로움을 이용해서 전 인류의 평화의 초석을 닦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혼돈과 해결방안에 대해 분석한 이 시도가 앞으로 인류의 지식에 어떤 공헌을 하게 될 지 기대된다.
참고자료
Bin Saif, G. A., et al. "The pleasurability of scratching an itch: a psychophysical and topographical assessment." British Journal of Dermatology 166.5 (2012): 981-985.
https://www.improbable.com/ig-about/win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