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과 Sep 18. 2020

시상식장에서 칼을 목에 꽂은 자, 그에 대한 연구

곡예, 연구자의 눈으로 보다

“지식은 종종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종종 발전하곤 합니다.”

-브라이언 윗컴의 수상소감


2007 이그노벨상 의학 부문

브라이언 윗컴과 댄 메이어



곡예, 연구자의 눈으로 보다

2007년 이그노벨상 시상식, 한 남자가 눈을 희번득하게 뜨며 칼을 옆으로 슥 핥았다. 그리고 기합을 넣은 그는, 칼을 입에 넣고 하늘을 본 뒤 거침없이 목 안으로 찔러넣었다. 별별 연구가 넘쳐나는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도 이 사람의 쇼는 충격적이었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남자는 칼을 뱃속에 넣은 채, 몸을 숙여 마이크에 입을 대고 여유롭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댄 메이어였다. 메이어는 칼 삼킬 줄 아는 프로 곡예사일 뿐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세계 칼삼키기 챔피언이었다. 그는 한 번에 29개의 칼을 삼키며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또한 상어가 있는 물 속에서 칼을 삼키는 등, 세상에 없던 도전을 계속해나갔다. 그는 TV쇼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연해 자동차가 줄로 연결된 칼을 삼키고, 그 칼을 입으로 삼킨 뒤 차를 끌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이어는 칼 삼키기를 터득하기 위해 4년이나 맹연습을 해야 했다. 그는 매일같이 칼을 입에 열번 이상 넣으며 연습했고, 칼을 조금씩 조금씩 더 안으로 넣어 나갔다. 동시에 메이어는 칼 삼키기를 위해 이론을 섭렵했다. 관련된 책, 잡지, 기사라면 모두 찾아보았을 뿐 아니라, 온갖 의학 보고서를 찾아보고 인체생리학과 해부학까지 섭렵했다.

그는 ‘국제 칼 삼키기 협회’를 만들어 칼 삼키는 사람들 끼리 친목을 다지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칼 삼키기 협회장인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메일을 보냈다. 칼을 삼키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 삼킴장애를 치료하는 의사나 삼키는데 문제가 있는 환자, 연구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메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메일을 받을 때마다 메이어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도왔다.


어느 날, 브라이언 윗컴이라는 사람이 메이어에게 메일을 보냈다. 윗컴은 은퇴한 방사선과 의사였는데, 칼 삼키기 묘기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메이어는 윗컴도 이전에 메일을 보냈던 사람들처럼 단순히 궁금한게 있겠거니 생각하고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러나 윗컴은 훨씬 큰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칼이 어떻게 식도를 통과하는가,’같은 궁금증 때문에 연락한 것이 아니었다. 윗컴은 메이어에게 칼 삼키기 곡예사들이 어떤 부상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어는 이 프로젝트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칼 삼키기 곡예사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야 많이 봤지만, 곡예사들을 ‘위해’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윗컴은 진지했다. 메이어는 윗컴에게 감동했고, 그래서 그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답변을 보냈다. 이후 2년간, 메이어는 윗컴과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열정적으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들의 프로젝트는 결국 결실을 맺었고 이그노벨상으로 이어졌다.


칼을 진짜로 삼키나요


칼 삼키기는 기원 전 2000년경 인도에서 시작된 묘기이다. 곡예사들은 입에서 배꼽까지는 족히 닿을 길이의 긴 칼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

1. 정면을 보고 칼 끝을 입에 넣는다,

2. 목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구토반사를 참아낸다.

3. 입부터 식도까지 일직선으로 정렬하기 위해 칼을 수직으로 위로 들어 칼 끝이 목 안쪽을 아래로 누른다.

4. 칼의 위치와 방향이 식도와 일렬이 되도록 조절한다.

5. 칼날을 식도 안쪽으로 밀어넣는다. 

6. 폐 사이로 칼날이 지나가도록 밀어넣는다.

7. 심장 옆을 지날 땐 심장을 옆으로 살짝 민다. 그대로 넣으면 칼날이 심장을 찌르게 된다. 

8. 위장 위쪽에 있는 괄약근을 이완시키고 위장 안으로 칼을 밀어 넣는다.

9. 칼로 위장을 통과시킨다.

10. 위장의 구토반사를 참아낸다.

11.  칼이 간과 신장을 지나 십이지장에 닿을 때까지 칼날을 넣는다.

12. 뱃 속에 칼을 넣은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

메이어는 이 과정을 X-레이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가장 짜릿한 장면은 칼이 심장 옆을 지나갈 때인데, 칼과 심장은 내장 피부 등을 사이에 두고 실제로 닿아있어 칼이 심박에 맞춰 살짝씩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칼 삼키기와 의학, 그 사이의 불편한 관계


칼 삼키기는 약 40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오랜 기간동안 의학의 발달을 도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위내시경이 있다. 1868년 아돌프 쿠스마일이 발견한 최초의 내시경은 단단하고 길쭉한 원기둥 모양이다. 의사는 환자의 목구멍으로 둥근 막대를 집어넣어 식도와 위장을 통과시켜야 했다. 이 아이디어는 칼 삼키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외에도 웨일스대학교의 심전도계 개발이나 삼킴기능장애와 소화기능 연구, 그리고 기관지경 개발 등이 칼 삼키기의 영향을 받았다.


의사들이 오늘날 사람들의 몸을 자유자재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건, 의학이 칼 삼키기를 참고한 덕분이다. 그러나 의학 종사자와 곡예사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메이어는 이 관계를 기니피그에 비유했다. 곡예사들은 의학 발달을 위한 연구대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윗컴과 메이어의 이 연구는 최초로 진행된 곡예사들을 위한 연구였다. 메이어는 이 연구를 통해 의사들이 곡예사들을 위한 치료 기준점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랐다. 메이어는 곡예사들의 안전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거란 기대로 연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윗컴에게 메이어는 천군만마 이상이었다. 윗컴은 메이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듣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곡예사 입장에서, 자신의 특별한 노하우나 부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은게 당연하다. 만약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칼 삼키는 법을 알게된다면 기존 곡예사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또 곡예사들 입장에서 부상은 곧 치부이기도 하다. 실력의 부족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예사들에게 칼 삼키는 방법이나 팁, 그리고 사고사례를 물어보기 위해서는 신뢰가 반드시 필요했다. 메이어조차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정보를 밝히지 않겠다고 곡예사들을 안심 시켜야 했으며, 덕분에 윗컴은 이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곡예사들이 조심스럽게 밝힌 사고들


메이어는 전 세계 곡예사들에게 총 110통의 편지를 보냈고,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 편지를 통해 메이어는 ‘칼 삼키는 것을 어떻게 배웠는지’, ‘얼마나 긴 칼을 삼킬 수 있는지’와 같은 정보 질문부터, ‘어떤 부상을 겪었고 부상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나 참다가 병원에 갔는지’와 같은 부상경험 질문등을 물었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 중 48명이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그 중 35명은 자기가 겪었던 사고까지도 세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답장을 보낸 곡예사들은 여섯살부터 예순 네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그리고 키도, 몸무게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칼 삼키기라는 위험한 기술을 혼자 터득했다고 답한 것이다. 


가장 어린 나이에 칼 삼키기를 배운 사람은 13살에 이 기술을 깨우쳤다.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기까지 곡예사들은 2~10년간의 훈련을 거쳐야 했다.


기네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장 긴 칼을 삼킨 사람은 58cm길이의 칼을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비공식 기록은 이보다 훨씬 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칼을 삼킬 수 있는 사람은 미국의 ‘거인 조지’로, 83.82cm짜리 칼을 삼킬 수 있다. 거인 조지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긴 칼을 삼키기에 유리한 긴 몸을 가지고 있다. 그의 키는 202cm이다. 보통 키를 가진 사람들은 어떨까? 


이들은 조사를 위해 열 여섯개 나라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총 110통 이었다. 답을 보낸 사람은 절반이 조금 안되는 48명이었다. 편지에는 ‘당신이 삼킬 수 있는 가장 긴 칼은 몇cm인가요?’라는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답변을 평균 내어 보니 60cm에 달했다. 그러나 거인 조지를 제외하면, 키가 크다고 더 긴 칼을 삼키는 등의 상관관계는 찾을 수 없었다. 


곡예사들의 부상


메이어는 매 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전화를 몇 건씩 받았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윗컴과 메이어는 최근 150년간 사고사례를 찾아보았다. 사망사고는 29건, 스물 아홉명의 곡예사들은 칼에 심장이 찔려 사망했다. 


그렇다면 사망이 아닌 자잘한 부상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걸까? 우선 목구멍의 통증이 있다. 부상경험을 알려준 35명중 19명이 목구멍에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칼 삼키는 법을 배울 때나, 칼을 너무 자주 삼킬 때, 칼을 여러 개 삼킬때, 이상한 모양의 칼을 삼킬 때 목구멍이 아팠었다고 답했다. 목 뿐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통증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통증이 있었을 때 이들은 보통 한동안 칼 삼키기를 쉬었고, 다행히 통증은 시간이 약인 것처럼 점차 가라앉았다.

그러나 모두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6명은 목구멍의 인두와 식도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있었고, 그 중 3명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칼이 심장을 ‘훑은’ 사람이 하나, 흉막염과 심낭염을 앓았던 사람도 각각 한명씩 있었다.


내장에서 피가 났다는 사람은 16명이었다. 이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내장 출혈을 알 수 있었다. 입과 항문이었다. 입쪽은 상상이 가는 대로, 입에서 멋지게 칼을 빼낸 뒤 살펴보니 칼에 피가 묻은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심하게 다친 사람은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다량의 피를 토했다.


내장의 출혈은 소화기관을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가 항문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항문 쪽은 대변으로 알 수 있었다. 위장에서 출혈이 발생했을 때 나오는 대변을 멜라에나(melaena)라고 부르는데, 검정색 묽은 젤리같이 생겨 독특한 냄새가 난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이 소화 효소와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변형되어 변에 섞여 나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곡예사가 주로 무리할 때 발생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공연을 쉬어야 하는데, 가끔 욕심을 부려 잘 들어가지 않는 칼을 억지로 넣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때 부상확률이 증가했다.

또 컨디션은 괜찮았어도, 곡예사가 긴장하면 칼이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통증이 있어 내장 근육에 경련이 발생할 경우에도 칼은 더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럴 때 묘기를 중단하지 않고 무리해서 칼을 움직이는 경우, 식도에 구멍이 나 버린다.


앵무새 때문에 사고가 난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구부러진 칼을 삼키고 있었다. 이 곡예사는 어깨에 앵무새를 올려놓고 공연을 하던 중이었는데, 앵무새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집중력을 잃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인두, 식도가 차례로 찍히고 흉막염이 생겼다.


답변을 한 사람들 중, 의외로 가슴부위를 열어 수술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빵칼을 삼켰다가 개복수술을 통해 칼을 꺼낸 적은 있었다.


곡예사들이 병원에 잘 안가는 이유


안타깝게도 목이나 내장이 불편해도, 곡예사들은 보통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 의사의 치료법은 언제나 단 하나, “칼 삼키기를 하지 마세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예사들은 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 할 때까지 지연이 발생하며, 약한 상처가 심각한 부상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윗컴과 메이어는 논문의 말미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칼 하나를 삼키는 동안 긴장을 잘 풀고 집중하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입을 위험이 낮다. 그러나 커리어 전반적으로 부상의 위험은 높다.” 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칼 삼키기의 의학적 접근, 정식으로 인정 받다


이 연구 내용은 ‘칼 삼키기와 부작용’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리되어, 영향력 있는 학술지 영국 의학 저널(the BMJ)에 실렸다. 메이어는 칼 삼키기를 믿지 않는 많은 의료 전문가들을 만난 바 있다. 그러니 의사인 윗컴의 존재는 진행에 큰 도움이 되었고, 결국 의료계에서 이 연구 또한 인정받지 않았나 생각했다.


‘칼 삼키기와 부작용’이 발표된 지 몇 달후, 윗컴과 메이어는 이그노벨상의 편집자 마크 에이브러햄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영광을 기꺼이 수락했으며 이후 많은 신문, 잡지, TV, 다큐멘터리, 그리고 의학 협회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윗컴과 메이어는 하버드, MIT, 옥스포드 등의 대학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월드투어하듯 강연을 했다. 메이어가 TED에서 한 “두려움을 잘라내는 법”이라는 강연은 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많은 일들 가운데, 메이어는 2007년 10월 4일 하버드 대학교 엘리베이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날 메이어는 한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메이어는 영국식 억양이 묻어나는 남자에게 “어디에서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영국 글로스터셔에서 온 브라이언 윗컴입니다”라고 답했다. 처음 메일을 주고 받은 지 3년만에, 그들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2020년 2월 22일, 댄 메이어에게 직접 받은 이메일 인터뷰>


From. 댄 메이어


Q. 브라이언 윗컴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나요?


A. 칼 삼키기 협회장으로써, 저는 지속적으로 검 삼키기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에게 연락을 받습니다. 그만큼 의사, 연구자, 삼킴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서도 연락을 받아요. 그래서 은퇴한 방사선과 의사 브라이언 윗컴에게서 이메일을 받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그는 특이한 X레이 영상을 찍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윗컴이 제게 연락했을 때, 저는 또 하나의 질문을 받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칼 삼키기에 진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말한 의학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승낙했습니다.


이후 2년간 저는 알고 있는 모든 곡예사들과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칼을 삼켜온 기간, 배우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배우는 방법, 그리고 상세한 의료 설문 조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2005~2006년에 걸쳐 몇 개월 간 이 정보들을 정리하고 논문을 썼죠. 그리고 윗컴은 이 논문을 영국 의학 저널에 제출했습니다.


Q. 이 연구가 검 삼키기 곡예사들에게 영향을 미쳤나요?


우리가 이 연구를 수행 할 때까지, 칼 삼키는 것에 대해 진지한 의학적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는 의사가 칼을 삼키는 부상의 심각한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상당한 곡예사가 병원에 입원 할 때마다 의사는 부상에 대한 정보와 기준을 갖게됩니다. 우리 곡예사 입장에서, 우리가 부상당했을 때 의사가 그 부상에 대해 알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한 장점입니다.


Q. 연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첫째, 칼 삼키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칼을 삼키는 방법이나 부끄러운 부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밀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이 정보가 공개된 후 갑자기 많은 칼 삼키기 곡예사들이 등장하지 않도록, 우리는 곡예사들에게 칼 삼키기는 법에 대한 많은 팁을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둘째, 많은 의료 전분가들은 칼 삼키기가 진짜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윗컴이 존경받는 의사라는 점은 논문이 BMJ에 실리고 세계의 의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데 그 자체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이 연구가 당신의 삶에 특한 의미가 있었나요?


A. 논문을 제출하고 몇 달 후, 우리는 마크 에이브러햄스에게서 우리가 2007년 이그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상을 받기로 했어요.


하버드에서 이 상을 받게 된 건 예상치 못한 영광이었습니다. 그 이후 3년간, 저는 꾸준히 뉴스, 잡지, TV, 영화 다큐멘터리, 의학 협회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간 윗컴과 저는 세계 최고의 대학들에서 ‘검 삼키기와 부작용’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하버드, MIT, 옥스포드, 캠브리지부터, 미국,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이탈리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 이벤트들까지 다녔습니다.


이 덕분에 저는 TED에서 “두려움 자르기(Cutting through Fear)”라는 이름의 강연을 하게 됐습니다. 이는 2013년 TEDx메사추세스 네덜란드 강연으로 이어지고, 이 강연은 70개 언어 이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TED강연 중 하나죠.


칼 삼키기에 관한 이 연구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제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칼 삼키기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할 수 있을거라고 믿지 않는 것들을 이뤄내는 것에 대해서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7년 10월 4일 목요일, 하버드 대학교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발을 내딛은 순간입니다. 한 남자분 또한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죠. 우리는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영국식 발음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그에게 어디에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영국 글로스터셔에서 온 의사 브라이언 윗컴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3년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순간이었어요. 그 후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누고, 함께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마크 아브라함과 윗컴과 함께 세계로 ‘이그노벨상 강연 여행’을 다닌 것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의 대부분의 칼 삼키기 곡예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것 또한 소중한 기억입니다.



참고자료 

Witcombe, Brian, and Dan Meyer. "Sword swallowing and its side effects." Bmj 333.7582 (2006): 1285-1287.

https://youtu.be/u3I7snbwxy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