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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Aug 17. 2021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그래도 믿음이 필요한 시대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최고의 요리사 메리가 정성껏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제철 복숭아를 고명으로 올린 수제 아이스크림이다. 집 안의 사람들은 대단히 만족해하며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다. 메리가 자신들에게 무해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나 그 후 장티푸스균 보균자인 메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장티푸스에 걸린다.


누군가 '지인과의 모임'에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기사를 보면 이상하게도 이 장면이 떠오른다. 해맑은 웃음, 여름철의 싱그러움,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는 장면. 지인을 만난 그들도 서로 무해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와 만난다 하더라도 '혹시?' 하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될 것이다.


팬데믹 이전, 정겨운 누군가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속에 한 올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 것이 어려운 시대. 코로나는 우리의 지나간 시절 그리움으로 물들였다.





팬데믹 초기, 지역의 누군가 확진되었을 때 핸드폰이 재난문자로 달아오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이와 성별은 물론이고, 어디서 무얼 먹었고, 얼마나 머물렀는지. 제공되는 정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세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사람들은 곧, 내가 저 사람이 아닌 것에 안도했다. 정보 공개가 오히려 불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절대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겠다. 저렇게 사생활이 죄다 공개되다니. 정말 끔찍해.


추가적인 정보까지 '카더라'에 의해 빠르게 퍼졌다. 성 정체성이 어떻다더라. 어느 초등 몇 학년 몇 반 엄마라더라. 그건 어떤 유익함도 없는 광기 어린 형벌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꼼짝 않고 집에 있는 경우라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병원 종사자, 학교와 요양원의 돌봄 노동자, 대중교통 기사, 택배와 배달 기사. 아무리 피하려 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상 코로나는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전염은 사회의 어둡고 낡은 곳에서 가장 일어나기 쉽다.


불안한 사회에서 특정 이들은 너무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또 너무 쉽게 위험에 소비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아파트 입구, 두 개의 경고문이 함께 붙어 있다. 범죄 위험이 있으니 입장 시 마스크를 벗으라는 빛바랜 글자와 마스크를 반드시 쓰라는 선명한 글자. 그 사이에 배달 노동자들의 모순적인 위치가 있다.

- 박정훈, '코로나 시대의 배달노동'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중.







사람 온다, 사람!


아이는 아주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는 것만 보아도 길가로 몸을 숨긴다. 그 사람이 곁을 지나치고 나서야 다시 길을 간다. 영문도 모른 채 사람을 피하는 법부터 배운 것이다. 코로나 초기, 부들부들 떨면서 집 앞을 나가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꼭 바이러스인 것만 같았다. 아이의 행동은 나로부터 배운 것이리라.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코로나의 정체를 알아가는 지금, 막연한 공포는 조금 걷혔다. 그러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이쯤 되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회에 더 많이 퍼져있는 것 같아서다.


혐오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도, 4인 이상 집합을 금지시키는 행정명령도 모두 필요하다. 그래도 언제나 서로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당장은 못 느껴도 불신보다 믿음으로 조금 더 뒤덮인 사회는 분명 다를 것이다. 누군가 나를 믿고 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꼼꼼하게 고쳐 쓰게 . 전체적으로 어떤 믿음의 물결 같은 것이 흐르는 사회는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간다.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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