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lass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맘 Jun 20. 2024

앞선 사람의 향기는 내 몸을 휘감고

사람 냄새 (나는 無香)

열심히 뚜벅뚜벅 출근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땅만 바라보고 가다 고개를 들어 향의 근원지를 찾았다. 앞에 한 여성이 가고 있었고 딱 봐도 레깅스에 운동복 차림이다

이 더운 날씨에 운동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될 텐데 땀 냄새 가리려고 이렇게나 향수를 많이 뿌렸나 궁금해진다. 나는 향수를 뿌리지는 않아서 무슨 향인지 이름은 모르겠지만 바람에 실려 온 향수를 온몸에 바르면서 뒤따라가는 기분은 여하튼 좋았다.      


5학년 딸아이에게서 요즘 사춘기 호르몬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다. 처음에는 정수리 쪽을 손가락 지문으로 박박 감아라, 겨드랑이랑 구석구석 꼼꼼하게 오래 씻어보라고 샤워할 때마다 문밖에서 외쳤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건강하게 잘 자라 소녀 향기가 난다는 증거일 테니 그 자체로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 아빠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제일 싫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쿰쿰함, 그리고 우리 집 오븐에서 빵이 부풀어 오르며 잘 구워질 때 나는 빵향수 냄새, 요가원에서 피어오르는 제사 향, 그리고 갓 내린 원두커피의 향기까지. 좋다, 좋아.     

음식에서 나는 냄새도 좋지만 사람 냄새가 좋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는 정말 좋은 향기가 난다.

나는 우리 가족의 냄새를 다 알고 있다. 눈감고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랑 팔짱 끼고 걸을 때 우리 엄마만의 푸근한 살냄새가 좋다. 친정집에 가면 방마다 특유한 냄새가 있다. 아빠 방에서는 농부의 흙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벗겨놓은 콩 껍질 냄새도 나서 솔직히 잘 들어가지 않는다. 100살을 바라보시는 할머니 방에서는 아직도 화장을 좋아하셔서 분 냄새가 가득하다.


다른 사람들도 내 집에 오면 뭔가 향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도 하고, 그 안에 사는 우리 식구들의 생각도 가끔 리프레쉬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음악과 양서들로 채워야 하겠다.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과 꽃구경을(유구 수국 축제)하러 갔다. 한 번은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맡았고, 또 한 번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할 때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와 품격 있는 그분의 말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머리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생각 향기가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렵게 느껴졌는데 자주 뵙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른의 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앞으로 더 자주 인사드리고 이야기하면 그 내음이 내 몸에 배려나?     

따스한 향기가 좋은 선생님

표정과 말투, 몸가짐 그리고 사람 냄새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풍겨 나오는 이미지를 보면 아주 정확하진 않아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원숙한 향이 묻어나는 조향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향이 나는 사람들과 마주 보며 인사하고 웃고, 많이 이야기하며 배우고 싶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고품격, 하이퀄리티의 향수를 많이 다양하게 음미해 보고 싶다.


나에게서는 지금 무슨 향기가 날까,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무슨 냄새를 맡게 될까?

튀지도 않고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한 향도 싫다.

그냥 무던하게 묻혀가는 무향의 사람이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팅힐에서의 달리기!  비현실적이지만 좋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