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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24. 2024

단 하나의 단서   

편의점 카드 사용 내역

"뭐라고? 정확하게 말해, 뭐라는 거야?"

생전 전화 먼저 하지 않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큰일이 터졌다는 게 느껴졌다.

살면서 내 앞에 터져 나오는 지뢰와 폭탄과 로켓을 피해 다니느라,

그것도 아이 둘을 등에 업고, 때로는 쏟아지는 총알도 막아내느라,

상대의 목소리로도 사건의 견적이 대략 나온다.


언니의 목소리로 전달된 파동과 내용은

저격도, 무차별 사격도 , 우발적 폭발도 아닌

가족의 근원을 파괴할 만한 매머드 급 폭탄이 터진 사건같았다.  

파급력이 어디서 어디까지 일까....

하던 청소를 멈췄다. 당장 집을 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그날은 정말 의외로 재투성이 모습 그 자체였다.




출근하던 습관이 있어서 늘 아침에 단장(?)을 하고 재택근무를 한다.

마치 사무실 출근하듯이 옷을 차려입고 오전 오후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니다. 나름의 관리 방식이다.

누군가는 나보고 피곤하게 산다고도 하지만

난 의외로 환경과 내 모습에 나약하게도 영향을 잘 받아서

이런 습관을 고되게 유지하고 있는데

그날 만큼은  씻지도 머리를 감지도 않고

청소를 다 끝낸 기념으로 샤워하겠노라 하고

인스타 스토리에 봄맞이 대 청소라고 선언까지 하면서 청소를 했다.


TV에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나오고 있었다.

주인공과 엄마의 갈등이 폭팔하는 장면이었다.

청소하다 말고 소파에 앉아 그 장면을 봤다.

여러 번 봐도 찡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들추어낸다.

다 큰 자식이 늙은 노모에게 서럽게 대든다.


누구에게나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오해는

소통의 정도에서 일어난다. 소통이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만들어 지는 오해는

추측과 예상을 넘어 때로는 사실처럼 여겨져 기억을 왜곡 하고

심해지면 망상으로 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늘 나는 소통을 모든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날은 그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습관을 예외로 지키지 않았던 그날, 나만 예외가 아니었다.

모두가 처음으로 겪는 그 사건 속에서 모두가 허둥거리기만 했다.




무엇보다 사건을 최초로 알게 된 언니는 횡설 수설에 누군가의 탓을 하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확신을 하면서 추측을 사실로 몰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불안과 두려움이 분노와 극단적인 감정 표현으로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사건을 파악해야 해결 과정의 우선순위를 세워가며 빠르게 대처할 텐데

뭐부터 해야 할지 나 역시도 힘들었다.

엄마 아빠가 밤새 집에 들어 오지 않았고,  다음 날 아빠만 집으로 돌아와

누워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아빠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가뜩이나 예민한 언니를 더욱 극단으로 몰아세웠다는 거 외에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의 감정으로부터 도망갔다. 내 감정 차단!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강인한, 냉혈한, 냉정한 이런 온갖 표현을 내 앞에 수식어로 두고

언니가 봤다는 0000 병원의 편의점  카드 사용 문자를 시작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나의 신분을 밝히고 환자가 입원해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하니

병동 간호사 실로 연결이 되었다. 당장은  한숨이 놓였다.

중환자 실이 아닌 병동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엄마가 있는 병동이 일반 병동이 아닌

중증 환자 병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다시 숨이 가빠졌다.

'정신 꽉 붙들어 매려고' 주먹을 너무 꽉 쥐는 바람에

손톱이 주먹 등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6병 동의 간호사가

'여보세요'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 연결된 간호사분은 정직하고도 정확하게 개인정보법을 지키시는 분이었다.

나는 환자의 딸임을 밝히고 나와 엄마의 주민 번호까지 대면서 호소했지만

입원실도 환자의 상태도 절대 알려 주지 않았다.

가족에게 차마 보이지 못했던 눈물이 쏟아지면서 서러워졌다.

엄마가 의식이 있는지, 팔다리는 움직일 수 있는지 이 두 가지만 알고 싶었다.

어떻게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울음과 설움과 두려움과 희망이 혼재된 대화,

아니 어미 잃을까 두려움에 떠는 어린 짐승의 숨넘어가는 울음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그럼, 어머님한테 둘째 따님에게 전화하라고 전달해 드릴게요'

그리고 전화를 뚝 끊었다. 내 울음도 뚝 끊겼다.

소통이  일방적으로 끊겨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건 의식도 있고 손가락도 움직인다는 추측이 들었다.

당장 안심이 되었지만 언니에게 다시 전화 걸지 않았다.

확실한 사실과 근거를 찾아내지 않는 한 언니는 또 다른 추측으로

자신의 감정에 휘말려 나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았다.


전화기를 손에 쥐고 가만히 창밖을 봤다.

지금까지 수거한 조각난 사실의 파편을 모아 보면

부모님은 교통사고가 났고, 엄마는 입원했고 아빠는 집에 누워 계시다는 거다.

엄마의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아빠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전화였다.


엄마는 목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엄마 특유의 담담한 농담까지 할 정도로 멀쩡했다.

응급 수술 결정이 아직 나지 않았지만 1-2주일 정도 기다려 보겠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 주었다.

나는 왜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분명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왜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는지.

사고가 난 날은 둘째가 다시 비행하는 날이었고

손 많이 가는 둘째를 풀케어 할 수 있게 나를 방해하지 않은 거다.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나는 감정 섞인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 다행이다, 고칠 수 있다, 우리나라 의술은 세계 최고다

등등의 응원과 격려의 말을 마치 주술사가 중얼거리듯

엄마에게 계속 말했다. 그건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태, 아니 사고가 났고 그걸 수습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본능적으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빠는 종일 직장에 있고, 동생은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세명이나 된다.

언니는 애초부터 열외다. 가정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누구도 그녀에게 부탁하지 않기에

남아 있는 인간은 최근에 자녀 둘을 독립시킨 재택 프리랜서 백수인 나다.

사실 누구도 부탁하지 않았다. 나는 말 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게 진심이고 본심 아닌가? 몸의 반응이 진심이라고 본다.

입은 거짓말 해도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입을 꾹 닫고 일 처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몸을 움직여 해결해야 한다.




-아빠, 고집 피우지 말고 제발....


퇴근 시간이 맞물려서 도저히 차를 타고 갈 수 없었다.

엄마가 당분간은 절대 자동차 운전하지 말라는 부탁도 있었고

나도 사실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평소대로 투덜거리고 짜증 내는 화법을 당장 바꿨다.

어르고 달래고 겨우 겨우.... 아빠를 한의원으로 보냈다.

우리 4남매와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를 다 아는 한의원 원장님

서울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겠지만, 만약 한의원 원장님이 건강하시다면

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자녀 보약도 지여 먹일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아빠를 그곳에 보내기만 하면 된다. 다행이다, 아빠가 가신단다.

얼마나 아팠으면 병원 문턱 가기도 싫어하는 아빠가 스스로 가시다니...


아빠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를 재처두고 간호사님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핸드폰으로 온 온갖 보험 관련 문자를 확인해 달라고 했고

아빠가 괜찮다고 무시한 당신의 상태를 상세하게 물어봤다.

한의원 원장님은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받은 타박상, 안전벨트로 눌린 부위의 근육 손상

정신적인 충격, 무엇 보다 고령이다.

지구 중력을 오랫동안 받은 만큼 신체 회복력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아빠는 절대 입원만은 안 하겠다고, 감옥이나 다름없다고 마구잡이로 고집을 피웠다.


하는 수 없다..... 남자 조카가 옆에서 하루 밤을 자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오빠와 시누이와 나는 공모를 했다.

해가 밝자마자  무조건 아빠를 병원으로 납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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