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VA Mar 31. 2024

바스락 거리는 푸른 물결

그녀를 만나기 5분 전 

엄마의 병원까지는 집에서 지하철로 평균 1시간 10분가량 걸린다. 

병원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우리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갔겠지만 

엄마는 사고가 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상급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어야만 했기에 애초에 병원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저녁 7시. 

일하는 가족들을 배려하는 시간 같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지키려면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퇴근길 지옥철을 타야 한다. 

너무 오래간만에 지하철을 타서 그런지 

지옥철이 일상이었던 때를 까먹었는지 

엄마 병원으로 오다가 숨 막힐 뻔한 경험을 하고는 

지금은 아예 한 시간 일찍 집에서 나선다. 

나까지 응급실에 실려갈 필요는 전혀 없다. 

읽을 자료나 책을 들고 가서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5시 50분 전후로 중환자실 대기실에 도착한다. 

자리는 텅 비어 있고 조명도 반만 켜 있다. 

6시 30분이면 보안 요원이 카트를 밀고 자판기 옆에 선다. 

그럼 나는 목 운동을 하고 기지개를 켠다. 자료를 가방에 넣고 

보안 요원이 하는 행동을 지켜본다. 

그는 조명을 환하게 전부 밝히고 카트를 벽 옆으로 옮기 후 

방문자 명단을 펼치고 그 위에 볼펜을 올려놓는다. 

방문자들이 보안 요원 앞에 선다. 

그는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방문자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환자와의 관계를 적는다. 

그는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자들의 체온을 적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방문자 목걸이와 1회용 비닐장갑과 

파란색 방호 비닐 가운을 준다. 

내 생에 두 번 다시 입고 싶지 않은 의복을 말하라 하면 

아마 이 파란색 방호 비닐 가운일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던 이 옷을 직접 입어 보다니.... 

중환자실에 들어가 본 것은 어릴 적 할머니가 입원해 계셨을 때와 

오빠가 입원해 있을 때였다. 

너무 오래전일이고 그곳에 중환자실이었는지 

개념조차 없던 어리고 어리숙한 때였는데 

기억력과 감성과 이성이 생에 최고점을 찍고 있는 지금, 

이 얇은 인위적인 푸른색의 플라스틱 재질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제법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도 비닐장갑과 파란색 방호 비닐가운과 보호자 출입증 목걸이를 받았다. 

초반에는 방문자 명단을 적고 파란 비닐 방호 가운을 받자마자 입고는 

벽에 켜진 TV를 멍하게 보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공간과 상황에 익숙해 지자 

나는 방문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책과 자료를 읽고

입장 5분 전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제야 

파란색 비닐 방호 복을 주섬 주섬 입었다. 


그렇게 3주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가보니 

나름의 패턴과 방문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부터 파란 방호복과 비닐장갑과 목걸이를 

걸고 굳게 닫혀 있는 중환자실 문 앞에 서 있는 보호자는 초보 보호자였다. 

새로운 얼굴의 낯선 보호자들은 늘 그랬다. 

초조하고 불안한 그들은 시공간이 주는 중압감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보호자들끼리도 서로 낯이 익고  환자가 누구며 

그 환자가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스몰토크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7시가 되기 5분 전이면 보안 요원이 큰 소리로 말한다. 


'면회 5분 전입니다.' 


그러면 보호자들은 각자 지급받은 파란색 방호 비닐 가운을 펼쳐 들고 입기 시작한다. 


'바스락바스락바스락...'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가운을 입는데만 몰두하고 비닐장갑까지 끼고 목걸이를 걸고 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중환자실 앞에 일렬로 줄을 선다. 

익숙함에 서로 스몰 토크를 했던 사람들 역시도 표정은 굳어진다. 

누군가는 뒷짐을 지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차렷 자세로 경직되어 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먼 곳을 본다. 

두 눈에 담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무겁고 음침한 기분에 환한 조명도 어둡게 느껴진다. 

침묵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잠잠해질 때 즈음이면 

보안요원이 엄숙하게 말한다. 


'면회 시작입니다. 입장하겠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중환자실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린다. 

순간, 일렬로 서있던 대열이 흩어지면서 

모두가  걸음이라도 빨리 들어가려 서두른다. 

파란 물결이 요동치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울린다. 

중환자실 입구는 파란 파다로 요동친다. 

엄마를 향한 내 발걸음도 요란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