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민족, 유대인
추상과 물성의 극단을 오간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으레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바로 떠올린다. 물론 공식적으로 거주지를 우리 국토로만 한정하지 않다. 초점은 언어와 문화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문화는 언어를 발전시킨다. 그래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사회 결속력을 매우 높인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면 금세 마음이 열리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어떨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대 민족이라고 해야 하나? 역사와 시대에 따라 유대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르다. 카프카가 살았던 19세기의 유대인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선, 유대인은 지역적으로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디아스포라(diaspora)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씨를 뿌리고 흩트리다’라는 1차 의미에서 고국·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또는 그런 상황을 뜻하는 단어로 심화되었다. 인류학적으로 유대인들이 겪은 유랑의 역사를 의미한다.
유대인은 헬레니즘 문화 시대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자신들이 살던 영토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그렇기에 이들을 지역적으로 한정해서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을 종교로 말할 수 있을까?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우선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유대교를 믿는다면 유대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유대인의 사회는 예전처럼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나의 어머니는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모계사회의 특징이 강하다. 엄마가 유대인이면 아이도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인간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유대교는 세계 5대 종교 중의 하나다. 종교의 믿음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오직 믿는 이들의 가치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종교가 역사적으로 보여준 모순은 종교 교리를 실천하는 인간들의 모순이기도 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상대적인 결핍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각자의 종교를 통해 각자의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다른 독자적인 생활 관습과 종교 계율을 강조한다. 이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유랑 생활은 늘 토착민과 구분되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이 유일하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까다로운 음식법과 안식일, 다른 민족과의 결혼 금지 등 배타적인 사상과 생활습관은 누군가의 눈에는 탐탁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이웃으로 살면서 서로 다른 종교와 생활 습관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관용적인 태도는 점점 사라지고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다가 험담이 소문이 되고 소문이 확신이 되면서 유대인을 향한 편견이 하나씩 사실처럼 자리 잡았다. 중세에는 유대인과 주거지를 나누어 쓰는 것이 금지였고 일꾼으로 고용하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유대인을 향한 집단 편견이 고정관념이 되어 버렸다. 한번 만들어진 고정관념은 쉽게 해체되지 않았다. 기독교 역사와 함께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영토 분쟁과 끊임없는 경제 정치 민족 문제를 일으킨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의 원인과 시발점은 역사 종교학자들마다 구체적인 관점은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서로 인정하는 부분은 바로 종교의 경전, 성경의 해석 때문이라고 한다. 유대인의 구약과 기독교의 신약은 매우 많은 논쟁을 만들어 냈다.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구약 특히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선민사상은 유대인을 강력하게 결속시킨 이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핍박과 고난의 역사를 만들어 낸 원인이기도 하다. 유대인 중에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언젠가 나타날 것이며 유대인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유대인이 가진 고대 선민사상이었다. 이러한 선민사상으로 유럽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자 믿음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전통을 강력하게 유지했다. 신약은 신앙을 갖는 모든 사람은 구원된다는 범인류적 평등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구약과 신약의 논쟁은 이후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소문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잃고 말았다.
이후 기독교는 유대교를 이단 취급했다. 종교적 차별과 박해를 떠나 사회 법적으로도 차별을 강화한다.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늘 남의 집살이를 하면서 언제든 쫓겨날 처지였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은 유동성이 높은 현금과 보석을 선호했다. 중세 기독교는 요즘 말하는 대출업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유대인은 늘 현금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현금 유동성과 자본력은 유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서바이벌 키트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은 고리대금업자,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자면 대부업자다. 작품에서 묘사된 샤일록은 거의 악마 수준이다. 작가와 당대 사람들이 유대인을 얼마나 모질게 바라봤는지 잘 나타나 있다.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유럽인들과 유대인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이러한 핍박의 역사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자신들의 종교에 몰입하게 된다.
유대인은 유랑의 민족이다. 이들이 어느 곳에 정착을 하든 살아남기 위해 집중한 것이 몇 가지 있다. 바로 종교와 언어 그리고 수학이다. 자신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함은 물론 어느 곳에서든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에 정착하려면 그곳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필수였다. 유대인들은 정착지의 언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거기에 더하여 계산에 매우 능했다. 숫자는 만국의 언어다. 어디를 가도 통하는 것이 숫자다. 유대인은 늘 정답이 있고 오차가 없는 수학에 매우 능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지적 능력을 현대에 와서는 매우 높이 평가받는다.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이다. 종교를 인간의 머리로 해석하고 믿으려면 매우 형이상학적이며 추상적인 고도의 논리와 추론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마음이 아니라 또한 이성적으로도 또한 이성을 넘어 마음도 설득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서든 정착하는 곳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끼리는 히브리어로 추상적인 교리를 교육하고 수학을 배웠다.
종교를 함부로 논하기는 위험하다, 여기서 종교를 논하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그래서 살아가는 힘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믿음은 인간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 종교적 신앙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기본으로 하며 인간이 자발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유대교는 자발적인 믿음의 행동 없이 하늘에서 내린 계시적인 계명만을 따른다며 유럽에서는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졌다.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반유대주의가 깊게 뿌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