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에서

카프카의 변신은 독일어로 쓰였다.

by VIVA

카프카가 살아 있을 때의 국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나라의 국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 듯하다. 그는 체코어, 유대어,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를 구사했다. 집에서는 체코어를 사용했지만 학교는 독일계를 갔다.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를 목표로 했던 그의 아버지는 독일어가 카프카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산업혁명에 일찌감치 성공해 유럽의 경제 산업을 주도했다. 기계화와 노동 밀착형의 생산 구조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른 소비가 따라와야 한다. 국내 소비로 생산이 해결되지 않자, 그들은 새로운 해외 시장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노력을 하겠지만, 당시는 말 그대로 폭력과 강압이 지배하던 야만의 시대였다. 한 나라에 무력으로 들어가서 자원을 발굴하고 본국으로 가져오고 그 자원으로 생산한 소비재를 또다시 강매하는 방식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와 세계 곳곳을 이런 식민지화 삼으며 권력과 시장을 확대할 때, 독일은 그제야 뒤늦게 중앙 국가를 이룩하면서 산업화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철강 산업과 도로 건설에 집중했다. 이를 기반으로 도시의 인프라 구축에 노력했다. 그 결과 19세기말 독일은 중공업 위주 위 산업을 기반으로 최고위 군대를 거느린 강건한 국가로 거듭난다. 이러한 독일의 발전에 유럽 주변국은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튼튼하고 안정적인 경제 구조로 많은 이들이 독일로 이주하고 싶어 했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출세욕으로 모든 교육을 독일어로 받았다. 그의 모국어를 그렇다면 독일어라고 할 수 있을까? 카프카의 독일어는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일어다운 독일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소리와 의미로 말은 통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표현과 어법이 있다, 지금이야 수많은 방법과 매체를 통해 외국어를 모국어만큼 구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외국어를 잘한다 해도 원어민만큼 잘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독일어로 교육받았지만 어쩔 수 없는 언어적 한계에 자주 부딪혔다. 어떤 평론가는 카프카의 작품이 난해한 이유는 그가 구사한 독일어 때문이라고도 분석한다.

카프카는 집에서 사용하는 체코어와 학교에서 사용하는 독일어 말고도 프랑스어와 유대 어를 사용했다. 카프카가 성년이 되었을 때 관심을 가진 언어는 이디 쉬어 (Yiddish language) 다. 이디쉬 어는 18·19세기에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태인이 사용한 언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어로 인정하지 않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희귀어다. 히브리어와 아랍어와 함께 유대 역사상 매우 중요한 3대 언어로 언어학자들은 이디시어가 중부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12세기 문헌에 의하면 이디시어는 히브리어와 독일어의 혼성이라고 한다. 여러 다른 언어가 유입되면서 중동부유럽에 사는 유대인에게 퍼졌다, 특히 18세기부터 시작된 유대교 종교 운동인 하시디즘(Chassidismus)으로 이디시어는 널리 퍼졌다. 카프카가 이디시어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히브리어와 독일어의 혼합 형태인 이디시어를 자신의 영혼의 언어로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카프카는 여러 언어와 문화가 섞인 사회 환경에서 자라나 시대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에 성년기를 맞이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다국어를 구사하면 어디든 자유롭게 노마드(nomad) 생활을 할 수 있다. 카프카가 현대인의 시대상을 미리 보여준 사람이라는 해석은 이러한 다국어 구사도 그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러한 다국어 사용에 커다란 가치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어딘가에 강하게 소속되고 싶어 했다.

소속감은 행복한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인간은 어디든 소속해 있다. 태어나자마자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가정이라는 집단에 속한다. 일차 집단인 가정은 구성원 간의 관계가 깊고 친밀해 인격과 성격의 형성과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이후 교육기의 학교 집단을 지나 사회집단에 속하게 된다. 사회집단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또는 목표 지향적으로 선택 가능하다. 가정에서 생각과 행동의 가치 기준이 근본적으로 형성되기에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가치를 갖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가치관이 비슷하기에 공감대가 쉽게 잘 만들어진다. 편하게 이해하고 이해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얻는 소속감은 역할이 아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인정받는 ‘자기 인정’의 근간이 된다. 부모와 가족 간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자기 인정은 사회생활에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해도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을 만들어준다.

안타깝게도 카프카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이러한 자존감의 근간을 얻지 못했다. 계속해서 바뀌는 사용 언어와 허약한 신체, 섬세하고 감수성이 많은 성격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그 뿌리를 찾고자 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기에 유대인의 여러 관습과 정신이 전달되었다고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는 ‘1년에 3일만 유대인’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자신의 뿌리에 관심이 없는 서구화된 유대인, 서구 기독교 유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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