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17번째 생일이 지나면 주민등록증이라는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증에는 사진과 사진 속 인물의 생년월일 그리고 주소가 기재된다. 주민등록증은 ‘나’를 ‘나’라고 확인시켜 주는 국가의 공식적인 증명서다. 이런 증명서가 필요한 건, 부모가 나를 증명해 주는 시기가 지나 독립적으로 사회 활동이 가능하다는 묵시적인 존재의 인정이다. 어느 나라나 이러한 신분증은 존재하고 신분증이 없으면 공식적인 사회 활동하기가 어렵다.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은 다른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면 주민등록증 대신 여권이 내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준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이다. 평소에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고 애써 국적을 드러낼 이유도 없다. 하지만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과 같이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나의 국적을 드러낸다. 지나가다 외국인을 보면 그때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느끼듯이 정체성은 혼자 있을 때는 알기 어렵다. 혼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면 그건 희망사항이나 심하면 망상이 될 수도 있다. 정체성은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형성된다. 사회 속에서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상태가 있을 때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카프카는 1883년 오늘날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수성가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학교를 다녔다. 당시 체코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의 프라하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카프카를 사회 국가적으로 표현하는 세 가지 단어가 있다. 프라하, 유대인 그리고 독일이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죽기 전에 체코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목격했다. 한 나라가 사라졌다 다른 나라가 생기면서 옆집 친구는 헝가리 사람이 되고 앞 집 사람은 체코 사람이 되는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당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였고 인구도 세 번째로 많았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11개의 민족이 모여 세워진 다민족 국가였다. 오늘날의 독일, 헝가리, 폴라드,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이태리, 우크라이나의 전부 또는 일부 지역이 하나의 나라로 묶인 것이다. 지역마다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달랐다. 다민족 지역을 하나의 국가라는 틀로 묶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세기에 들어 각 민족은 민족 사상을 높이기 시작했고 민족 국가를 세워 독립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언어는 공용어를 지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해도, 보이지 않는 신념이자 믿음인 종교는 다민족 국가의 결속력을 분산시키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다. 가톨릭이 우세했지만, 개신교, 동방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교가 한 지붕 안에 살면서 종교분쟁이 눈에 띄게 빈번해졌다. 계속된 산업화로 사회가 변화하며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사회 계층 상승이 가능해졌고 부를 이룩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수에 비해 빈민은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경제·문화·언어·종교의 차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통합보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는 반사경 역할을 했다. 제국 통치는 결코 쉽지 않았다. 산업혁명과 새로운 시민계급의 등장으로 오스트리아의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가 번성했지만, 다민족·다문화·다인종·다종교의 나라를 하나의 국경선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기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사회 불만과 민족들의 혁명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지역은 성냥불 하나만 던져도 연쇄 폭발이 일어날 ‘유럽의 화약고’였다.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는 오랫동안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에 지배받았다. 19세기 민족주의가 끓어오르며 발칸반도의 슬라브 민족은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한 슬라브 민족 국가를 염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변혁의 조짐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즈음 해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당시 독일이었던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상당 부분 영토를 잃었다. 그래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발칸반도를 병합하려 했다. 서쪽에서 빼앗긴 땅을 동쪽에서 보상하려 했던 셈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동진 정책은 영국·프랑스·독일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성공적으로 진행된 듯했다. 하지만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 특히 세르비아계의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사라예보 사건은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전쟁은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타오르던 민족주의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모두가 막대한 피해를 보며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이 났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겨졌고 이 지역은 1918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로 각각 독립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90년대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져 오늘날의 체코가 된다.
카프카가 살았던 당시 동유럽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