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VA Nov 04. 2024

얼마나 걸리냐면

거기까지 뭐 두 발로 후딱, 한걸음이지!

    안 하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어디를 갈 약속이 잡히면 무조건 지도앱을 켜서 집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를 알아본다. 지하철 라인이나 버스 번호를 찾는 게 아니다. 다 아는 곳인데도 굳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체크한다.

    가장 먼저 거리를 알아본건 도서관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대략 2km 다. 이 경로는 지하철 라인을 따라가는 다시 말해 대로변을 따라가는 경로다. 큰길을 따라가면 되니 길은 쉽다. 평소에도 자주 걸어서 아주 익숙한 경로다. 하지만 한강변 길을 따라 빙 돌아가면 거리는 배로 늘어난다. 대략 4.2-4.5km 정도 된다. 보통 성인 걸음으로 1시간 10분~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래서 도서관 갈 때 한강변을 따라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뛰지 않나? 일부러 경로를 선택해 뛰어갔다가 뛰어 온다. 빌리고 반납하면서 운동까지 일석 이조다. 물론 노트북이나 다른 작업 서류를 챙겨야 할 때는 뛰기보다는 걷기를 하지만, 언젠가부터 걷기와 달리기가 만만해졌는지, 웬만한 거리는 무작정 두 다리로 다니겠다는 허세가 생겼다.

    또 한 번은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중고 서점이 있는데, 굳이 지하철로 6개 역이나 떨어진 곳을 찾아 뛰어갔다. 경로는 단순했다. 대로변을 조금만 따라가면 바로 한강 지천이 나오고, 고가 도로 밑으로 조성된 그 길은 한여름에도 뛰기 정말 좋았다. 거기까지는 대략 9km여서 돌아올 때는 책을 많이 샀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실제 핑계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이런 걷기와 달리기 부심이 언제 생겨났는지 거리를 확인하고 시간이 여유 있으면 무조건 뛰어간다. 만날 사람이 공적인 미팅이라면 땀으로 옷이 젖어서 삼가지만, 개인 스케줄이면 어김없이 뛰어다닌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가 한 번은 착각 또는 맹점이랄까, 부픈 마음에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행동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무턱대고 두 다리만 믿고 벌어진 일이었다.

    거리를 계산해 보니 대략 8km였다. 주차장에서 산 중턱까지의 목적지 거리였다. 주차장에서 그곳까지 오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호기롭게 두 다리로 출발했다. 늦은 오후라 해는 깊었고 전날 온 비로 산공기는 습하면서도 상쾌했다.  걷기 시작하고 시간이 제법 지났는지 10분에 한대 씩 출발하는 버스가  내 옆으로 여러 대 지나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계곡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쳤을 때, 어리석은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보세요, 산이라고요 산!'


    거리에 경사까지 생각했어야 했다. 산길의 8km는 평지 8km와 완전히 다르다. 어쩌자고 경사를 계산하지 못했을까? 허파에 바람 들고 종아리에 허세 들었는지, 등산화도 아니고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산을 만만하게 봤으니! 그래도, 한발 한발 당기는 종아리와 삐걱거리는 고관절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산을 내려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 7시에 있다니, 천천히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종아리가 나의 뇌를 지배하고 말았다.


'내려가는 건 뭐, 올라가는 것보다는 덜 힘들겠지', '왔던 길이니까 익숙할 테고'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또 하는 걸까, 왜?!

    마치 이른 아침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 마냥 엇박자로 총총거리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내려갈 때는 그래도 사람이 가끔 보였다. 그들을 추월했다. 체력 회복이 빠르게 된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조금 속도를 내서 빠르게 내려왔다. 하지만 산속의 해는 정말 빨리 사라졌다. 어두운 그림자가 산 정상에서부터 내려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대의 만능키트,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있었지만, 사진을 찍어대느라 배터리 경고 알람이 뜬 지 꽤나 오래전이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배터리를 절약해야 했다. 물론 그곳은  등산길은 대부분 마대기 나 데크로 포장이 되었고 수 미터에 하나씩 손바닥 반쪽만 한 조명이 있었서 길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런 칠흑 같은 암흑은 산중 템플 스테이 새벽 4시 기상해 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반달곰이 튀어나오고 멧돼지가 나와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어두웠다. 순간 본능적인 공포가 느껴졌다.


'찬송가를 부를까, 염불을 외울까, 주기도문을 부르짖을까, 불경을 중얼 걸릴까 '


    내가 여러 사람을 앞질러 내려왔기에 분명 뒤에 오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왔던 길인데 낯설었고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다리가 풀리면서 정신도 풀리기 일보 직전에 앞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휴 다행이다'


    그 소리에 나는 두 번 연속으로 박수를 들릴 정도로 쳤다. 나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게  소리 낸 사람의 뒤를 따라 내려가는데, 가도 가도 사람의 느낌이 없었다. 혹시라도  산을 오르는 사람인가 싶어 잠시 멈춰서 그 사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나뿐.... 순간 땀으로 젖은 몸에 한기가 서리면서 소름이 비쭉 돋았다.


'다리야, 살려 다오!'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막판에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근본 없는 공포까지 밀려왔다. 숨소리 하나 내지도 못하고 얼마나 빠르게 내려왔는지, 산입구에 켜진 가로등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휘청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뛰었다. 더 밝은 곳으로 더 빨리 가기 위해서!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비를 정산하고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아 빠르게 그 지역을 빠져나왔다.


'대체 뭘 들은 거지?'



    며칠 지나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그 기억으로 돌아갔다. 기억이라는 게 간사해서 요사방정을 떠는지,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도 마음속에는 의심만 가득해졌다. 그나마 이성적인 가설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날 먹은 게 아침에 카푸치노 한잔과 점심에 옥수수 2개여서, 배가 고파서 헛소리를 들었다는 거.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음식량으로 헛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달리기를 해도 나는 여전히 소식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메아리로 들려오는 소리일 수도 있다는 거. 하지만 메아리라고 하기에는 울림도 없었고, 딸려오는 다른 소리도 없었다. 이 정도면 '귀신'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는데, 그러면 다들 조심해라, 나가지 마라 등등 온갖 옛날이야기와 전설의 고향을 읊어대면서 집에 붙어 있어라 하겠지만....!

    나는 오늘도 뛰러 나가다.  손자병법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이 줄행랑이 아니던가! 더 잘 뛰어야 더 잘 도망갈 수 있으니까. 귀신도 쫓아오지 못하게 열심히 달릴 수 있는 그날까지 파이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만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