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성장한다

나를 모르는데 어찌 객관화가 되리오

by VIVA

작가 교육원의 과정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끝나면 공책 정리하고, 작법 책을 다시 읽고

써 놓은 대본을 수정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기획해야지'라며

신나게 손가락 꼽으며 순진하게 다짐한 일들은

수첩의 메모로만 남겨져 있다.


한 달가량을 손 놓고 쉬면서

여의도 서강대교를 넘나들던 기억은 벌써 희미해졌고

2년 반 동안 수업시간에 적어 낸 공책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마감과 진학의 압박에서 벗어난 후련함과

내 재능과 능력에 대한 의심이 널 띄면서

다른 일로 신경을 돌려 버렸다.


마치 이별을 통보받은 남겨진 연인처럼...

남겨진 자, 홀로 된 자의 고통을

다른 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것 같았다


이별 후에 오는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그때 즈음이면 함께 찍은 사진과

주고받은 선물을 정리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딱 어제였다.


졸업 작품집에 낼 작품을 제출한 지

정확하게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원망과 미련과 사무치는 그리움이

현실 자각으로 돌아서는 시점이었나 보다.

USB에 담겨 있는 대본을 다시 읽고 수정하면서

공책 정리를 시작했다.

나에 대한 생각, 내 능력 대한 의심,

쓰는 글에 대한 두려움, 나르시시즘에 빠진 기대감,

어떤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내가 드라마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구체적인 기법의 문제에서부터

심리적인 의심과 장벽까지

이 이유들을 글로 나열해 보기로 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문장이 턱턱 막혔다.

못한다고 어렵다 생각하니

심리적 장벽은 바벨탑만큼 높아지는 것 같았다.

생각을 멈췄다. 높아진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는데

다시 한번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나는 마치 암 환자의 심리 5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를 거친 듯했다.

나의 노력과 결과를 부정했고

나의 무능력에 분노했고

생계와 현시점에 타협했고

현실에 우울했고

마침내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로 수용했다.


이 과정이 몹시도 낯설었다.

오랫동안 무역 에이전시와 통번역을 하면서

나는 중재와 현실 타협과 수용에 익숙했다.

나의 의견과 뜻을 주장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전달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익숙했기에

내 안에 솟구치는 부정과 분노의 감정이 익숙지 않았다.

언제나 부정과 분노가 나오기도 전에 이해가 먼저였다.

이해가 상황 수습을 빠르고 편하게 이끄는 지름길이었다.


그럼 지금 나는 뭘 이해해야 할까?

공책 정리를 하다 말고 문뜩 이 질문이 떠올랐다.

무엇을 이해해야 나는 다시

맘 편히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이해의 대상을 찾지 못했다.

나는 현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나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다시 대본을 쓰려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시 공책 정리를 해 나갔다.

어차피 하려 했던 일이고

작법 책에서도 나오지 않는

멘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고 적어내면

나름의 해답을 찾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리고 나는 나의 너무나 큰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다.


나는 나 자신을 안다고 생각했다.

나의 시선에서 한 발짝 물러 나야

나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기에

나는 자기 객관화의 훈련이 꽤나 잘 된 사람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자기 객관화가 지나쳐 자기부정을 하고

때로는 내면의 죄책감이 심해져

마음의 우울을 달고 산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나 보자고 만드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조금 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선과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특별하고 독특한 생각과 감성보다는

대중적인 마인드가 필수다.

나의 감정과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보이지 않는 대중의 감정을 읽어내야 한다.

'나만 재밌으면 안 되고 다른 사람도 재밌어야 한다.'

'유체 이탈하고 자신을 봐라'

이것이 작가 교육원에서 끝없이 들은 자기 객관화였다.


자기 객관화가 되려면 나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몰랐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 감정을 부인하고 분노하는데 한 달이 걸렸고

타협과 우울과 수용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어찌 처리할지 몰랐다.

한국인 평균 수명의 1/2를 훌쩍 넘긴 내가

내 감정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

괜한 분노와 자책으로 변형되었고

분노의 감정 또한 익숙지 않았기에

바로 타협으로 현실 수용으로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까지의 자기 객관화는

나에서 벗어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타인이 되어 버린 마치 빙의 같은 일이었다.

내가 없는 자기 객관화가 가능할까?

생각의 오류와 착각을 인정을 했다.


자기 자신을 안다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의식이 생겨날 무렵 학교 공부와 입시 준비로 내몰렸고

자유롭게 사회생활로 독립할 수 있을 때 즈음

나는 타인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타인의 생명과 생계를 이끌어 오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상황에 이끌린 나의 최적의 선택이었을 뿐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내 신념과 삶의 태도는 아니었다.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적응하고 수용하는데 익숙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모든 갈등을 최소화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기 시작했고

나의 감정을 부인하다 보니

타인의 감정을 쉽게 나의 감정으로 이해했다.

이런 태도는 직업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 태도는 정말 최악이었다.

드라마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외부 충돌로 이야기가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만든 등장인물들에게는 갈등이 너무나 적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대부분의 대본은

결코 '센'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은 오밀조밀 아삼 거리지만

갈등이 생길 듯하면 피해 가고

최소한의 감정만을 어필하는 인물들이

마치 나와 다르지 않았다.

멘토 선생님 중의 한 분은

나에게 '막장드라마 시청'이라는 처방을 해주시기도 했다.

갈등의 진폭과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나도 커서 감당하기 어려울 지라도

그렇게라도 봐야 내 대본의 갈등이 커질 거라 하셨다.

내가 대본을 다시 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알았다.

나는 압축팩에 눌려 있던 내 감정을

페트병으로 두둘 기든 건조기에 돌리든

감정을 몽글몽글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확대하고 과장해야 한다.

내 감정의 습관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또한 자기 객관화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공책 정리하다 한 뼘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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