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망, 한량閑良 라이프
역마살과 한량끼를 두루 갖춘 노마드족
한량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에 책도 많이 읽어
언행에 먹물이 배어 있는 남자.
나를 볼 때마다 다정한 눈웃음으로
볼을 살짝 꼬집어 주던 남자.
엄마는 그를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고 나면 혀 차는 소리 함께 긴 한숨으로
'한량'이라 하며 그의 존재를 평가하곤 했다.
그의 홀어머니는 그에게 직업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논과 밭, 함께 살던 돼지, 소, 개, 닭까지 다 팔아넘겼고
가장 나중으로 집까지 팔아버렸다.
그는 그렇게 홀어머니가 마련해 준 자금으로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요즘 시대였다면
프랜차이즈의 본사의 호갱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알았지만
그는 그렇게 직업이 바뀔 때마다
나의 부모님께 '성공자금 또는 축하 자금'을
받아가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그의 세련되고 자유로운 모습이
어른이 되어 한심하게 전락되는 순간이었다.
한량은 남자에게 사용되는 단어다.
이 단어는 고려 시대 때부터 사용되다가
조선 초기 <용 비어 천가>에 관직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고 한다고
공식적인 정의를 내렸다.
관직이 원래 없는 사람, 있다가도 그만두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무예(武藝)를 잘해서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이들은 무엇을 하든 경제적으로 속박이 없는
어찌 보면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특별하게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집안의 배경과 능력으로
언제든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이들.
은근히 끌리는 매력이 있는 자들이다.
노동과 자본의 시대로 넘어와 한량은
아주 몹쓸 '그눔의 인간'으로 전락한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운동복 입고
만화방을 들락거리는 동네 형에서부터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먹고 마시고 노는 청년,
춤바람 난 담배 가게 중년 아저씨,
가게 차려 놓고 모든 걸 아내에게 맡기고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등산가고 카바레 가는 식당 사장까지
틀에 박힌 전형과 다양한 변형으로 한량이 묘사된다.
하지만 한량이 가진 그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삶을 고민하는 능력은 철저히 무시된다.
한량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성이 유지되고
그들의 자유로움 덕분에 창의성이 뛰어나고
사람 좋다는 그들은 언제나 표정이 밝다.
돈은 없지만 자유롭게 살 것인가,
돈은 벌지만 구속되어 살 것인가
삶이 이렇게 늘 양분되어
이거 아니면 저거로 결정되지 않지만
이 중간 즈음에서 늘 양쪽을 바라보는 나는
한량이 되기로 결심했다.
한량이 되려면
우선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 유지비와
최소의 품위유지비를 계산해 보니
생각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코로나 여파로 폐업 위기에 놓인 무역회사는
지방도 근육도 다 빠져 뼈대만 남아 있지만
아직은 버티고 있으니
나는 오늘 당장 맘만 먹으면
현대판 한량,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
아니 난 이미 프리랜서다.
생계가 막막한 프리랜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버티는 능력 만랩의 프리랜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무역업을 한다고 했을 때
여자가 '역마살'이 있는 거 아니냐며
나를 색안경으로 보기도 했다.
여자의 역마살은 한량의 자유분방함과 다르게 해석되었다.
나에게 역마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외국어 덕분에 무역업에 뛰어들었고
무역업 덕분에 또한 외국어 실력이 늘었고
이 두 개의 조합 덕분에
어느 순간 나는 현대판 한량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여자의 역마살과 남자의 한량끼,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나는
요즘 말로 디지털 노마드족이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계획대로
2020년 11월 작가교육원 창작반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발리로, 파리로, 모리셔스로 , 시칠리아로
노트북과 스마트 폰과 신용카드를 챙겨
훌쩍 떠나고도 남았을 텐데...
11월 한 달을 서울 동네 한량으로 보냈다.
코로나로 갈 곳도 마땅치 않아
동네 대형 서점과 중고 서점 그리고 작업실,
이렇게 세 꼭지를 버뮤다 삼각지대 삼아 빙빙 돌았다.
그 사이에 무역회사 폐업을 심히 걱정하는
15년 지기 세무사와 통화한 게 전부다.
나보다 나의 회사를 더 걱정하는 세무사 언니(?)도
회사 앞날에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나이에 누가 나를 받아 주겠어요?'
'언니 사무실에 가서 아르바이트할까요?'
세무사 언니는 이 소리에
얼른 말꼬리를 자르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난 한량이 되기로 결심한 게 아니라
어쩌다 한량이 되어 버렸다.
답답한 마음에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어
마치 신포도를 보는 여우 마냥
한량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주체적인 표현을 했지만
지금 나는 타의로 상황에 따른
한시적 한량이 되어 버린 거다.
통장의 잔고가
모래시계 알갱이 마냥 줄어드는 게 보이지만,
코로나 여파가 1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의 로망, 한량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데....
11월 자타공인 한량 라이프를 실천한 나,
로망인지 현실인지
한량을 꿈꾸던 내가 한량이 되고 나니
애매하게 몸통은 경계선에
양다리 한쪽 씩 걸치고 이쪽저쪽을 보며 고민한다..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친척은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람 좋은 게 아니라 뻔뻔했던 것 같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그는 넉살 좋게 눈웃음치며
엄마에게 '신장개업 축하금'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한 용기가 있었다.
나는 아직 그만한 뻔뻔한 용기가 없다.
아니 이건 배워야 덕목은 아닌 것 같다.
그 인물은 염치가 없는 거다.
용기 있다고 칭찬해 줄 만한 언행은 아니었다.
그럼 난 한량을 하기 위해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
어떤 덕목으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나의 한량 라이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현대판 한량의 새로운 정의를
스스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멋들어진 한량을 포기할 수는 없지.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