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이 의미를 결정한다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알겠지

by VIVA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일까?

외국어를 배우는 목표와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읽는 소리와 함께 단어의 뜻을 배운다.

뜻 모르는 단어는 소음이자 낙서이다.

단어의 소리와 기호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이유는 없다.

이것이 국어 시간에 배웠던 '언어의 자의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자동차라고 부르고 쓰지만

독일에서는 Auto 아우토라고

프랑스에서는 Voiture 부아뛰르 라고 쓰고 말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의미도 동일하지만

사용하는 문자 기호와 소리는각각의 언어마다 다르다.

'왜' 다르냐고 묻지는 말자.

단어의 의미와 소리와 기호는 '지들 멋대로' 결합했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가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우리도 그렇게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단어가 딱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단어는 1차적 2차적 많게는 수많은 차원의 의미가 있다.

사물 단어는 의미의 확장성이 크지 않지만

생명을 말하는 단어와 추상 단어는 의미 확장이

사회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의미의 확장은 언어 공동체의 사고방식을 따른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면

그들의 사고방식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를 배울 때

모든 확장된 의미를 배울 필요는 없다.

확장된 의미는 1차적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1차적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기억하면 된다.

1차적 의미에서 비슷한 연관성을 띄고 의미가 자라난다.

직유, 비유, 은유, 대유를 통해서 문화의 상징도 포함한다.

모든 단어의 1차적 의미는

객관적인 설명으로 어디에든 동일 적용되지만

확장 의미는 사용하는 개인과 사회마다 다르다.


사전을 펼치면 한 단어에

한 페이지에 달하는 의미가 있는 단어도 있고

단 한 줄의 설명만 나와 있는 단어도 있다.

이러한 의미들은 그럼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단어는 홀로 있을 때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

단어는 문장에서 사용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문장과 문장이 만나 하나의 글의 흐름을 만들 때

단어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먹물'은 벼루에 먹을 갈아 만든 물이지만

문장과 문장이 이어진 글을 다 읽고 나면

먹물은 잉크의 개념이 아닌

배움이 많은 한 인간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모든 단어는 맥락 속에서 의미가 결정된다.


'졸업'

하나의 교과 과정을 끝내는 일이다.

공교육에서는 졸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사교육에서는 수료라는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졸업이란 졸업은 다 해 본 것 같다.

다르게 말하자면 공교육의 졸업장과

사교육의 수료증이 많다는 말이다.

졸업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사진을 같이 찍어 주지 않아 섭섭했고,

중학교 졸업식은

엄마가 억지로 입힌

롱 코트가 맘에 들지 않아 뽀로퉁했고

고등학교 졸업식은

아방가르드한 물방울무늬 투피스가

창피해서 싫었고

대학교 졸업식은

이틀 뒤 출국할 준비로 참석하지도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감성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뿐

졸업에 대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나에게 졸업은 사전적 의미로 충분했다.

내 삶에서 졸업은

직유도 비유도 은유도 상징도 없는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어른이 되는

성장 단계의 마감과 시작일 뿐이었다.


'수료했다'

3일 전에 작가교육원의 전 과정을 수료했다.

졸업이라는 단어를 쓰기 어색했다.

졸업은 학창 시절의 감상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기에

나는 굳이 수료라는 비슷한 단어를 선택했다.

가급적이면 개인적인 감성과 의미를 배제하기 위해

형식적인 수료증 행사라고 맘먹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강의실에 들어 선 순간

어떤 마지막보다 가슴이 떨려왔다.

2년을 꼬박 1주일에 한 번씩 꼭 왔던 곳이다.

공교육을 받았던 시절의 코뚜레 걸려 끌려가는 소가 아닌

아프리카물소처럼 서강대교를 과속하며 달려온 곳이었다.

작가 교육원 원장님이신 유현미 작가님이

직접 오셔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다.

울컥하는 마음을 꼬집어 정신 차리라고 했다.

'이게 뭐라고 울컥하니?'

마지막 수업이 진행되고 회식이 있었다.

1차와 2차까지 술 안 마시고 버텼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집도 아닌 작업실로 돌아와 잠잤다


수료증을 받고 3일이 지났다

이별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은 남자처럼 후폭풍이 밀려왔다.

멘토 선생님의 사인이 된 수료증과

개근상으로 받은 대본집이 가지런히 책상에 놓여있다.

그것들을 들어 가만히 손으로 만져보고 읽어보다가

가슴에 품고 멍하니 허공을 봤다.

마치 떠나간 연인의 액자를 품에 안고 그리워하듯.....

처음으로 졸업을 생각해봤다.


의무 교육이 아닌 선택으로 시작한 배움.

단순하게 교육과정의 시작과 끝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허탈함을 채우기 위한

졸업에 대한 나만의 확장 의미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이렇다 저렇다 규정할 수가 없었다.

출석하고 강의 듣는 과정은 끝이 났지만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 과정을 시작하기 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나만의 사전을 머리와 마음속에서 뒤적거린다.

하지만 어떤 의미도 맞아떨어지지도 비슷하지도 않다.


번역하다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 속 단어는

원어의 단어를 그대로 두고

번역이 되는 단어로만 문장을 번역한다.

그렇게 구멍 난 의미는 최소한 문단이나 장을 해석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메워진다.

애써 의미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고

대략적으로 의미를 유추하거나 예상하면서

멈추지 말고 계속 번역하다보면 책이 끝나기 전에

어느 순간 의미가 문장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나는 왜 수료의 의미를 굳이 지금 찾으려 바둥거릴까?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삶의 책에서

이 과정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까?

드라마 작가로 입봉을 하든, 출간 작가로 계속 활동을 하든

분명 이 과정은 나에게 단어와 문장과 맥락을 넘어

삶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과정이었다.

이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번역될지

나는 더 이상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드라마 작가로 향한 길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구멍 난 의미는 어느 순간 내 삶의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다시 다짐한다.

애쓰지 말고 기 쓰지 말고 힘쓰지 말자.

그저 내 삶의 맥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

작가 교육원의 2년의 배움과 졸업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알게 될 거다.

지금은 수고했다는 그 말, 한마디만 나에게 하고 싶다.


"잘했다, 애썼다 그리고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