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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Jan 15. 2019

02 왜 차고에서 시작하는지 알겠다

창고로 쓸 차고 가지고 계신 분?

02 왜 차고에서 시작하는지 알겠다

창고로 쓸 차고 가지고 계신 분?




거래 공장도 부품 별로 얼추 정했다. 얼마 없는 인맥에서 제품 도면을 그려 줄 캐드 능력자와 디자인을 도와줄 일러스트 능력자도 모셨다. 돈을 주겠다고, 선불로 주겠다고, 합당한 금액을 주겠다고, 지인이라고 무료로 '재능 기부' 해달라는 양심 없는 말은 안 하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자꾸 '나중에'라고 미루거나 거절했다. 아마도 내가 사업자금이 넉넉하지 않고, 뭔가 없어 보여 차마 받는다고 하지 못한 것이겠지. 다들 바쁜 직장인인데 짬을 내 도와주는 그들이 고마워서 밥이라도 계속 사고, 드럭스토어 상품권 등 기프티콘들이라도 여러 번 보냈다. 주먹구구식이고 판 벌린 유나킴은 정작 본인이 할 줄 아는 '기술'은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샘플이 나오고, 제품 생산을 위해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래 공장 사장님께 전화가 온다. 아직 병원일을 병행하고 있던 터라 낮에 '첫번째서랍' 일 관련 전화를 받는 것이 눈치 보여 난 문자로 달라고 답했지만 그에 대한 답으로 역시 또 전화가 울린다. 아무래도 사장님들은 문자보다 전화가 편하신가 보다. 주변에 선생님들이 계시므로 화장실 가는 척 전화를 받았다.

- 사장님 : "요 며칠 장마 때문에 공장 안전 문제로 제작이 좀 늦어졌어~ 아가씨가 의뢰 넣은 건 XX일까지 도색작업까지 끝날 건데,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주소 좀 알려줘요."

- 나: "장마 덕에 좀 여유 있네요. 제가 사무실 정해지는 대로 늦지 않게 꼭 주소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렇다. 물건(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려고 하니, 나는 사무실이 필요했다. 그러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급한 딱 2가지, 첫째로 사업자등록을 위한 주소지 서비스가 가능하고, 둘째로 재고를 쌓아둘 공간만 있으면 됐다. 법에 대해 빠삭히 알지 못하는 나는 모를수록 기본은 지키자는 마음으로 간이사업자를 등록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소액의 금액일지라도 근로소득 이외의 소득에 대해 세금 의무를 지켜 떳떳해보자는 FM 마인드에서 비롯된 결심이었다. 그렇다면 자취하고 있는 집주소를 주소지로 하면 되지 않냐는 주변의 의견들도 있었다. 주소지 때문에 사무실을 먼저 구하는 건, 아직 매출이 없는 나에게 너무 허영 가득한 시작이 아니냐는 걱정의 말이었다. 사업장의 주소지는 서류에도 찍히고, 물건을 판매할 온라인에도 게시하고, 심지어 택배를 보내고 반품을 받을 때도 사용되는데 약자로 여겨지는 여성인 내 개인 정보가 그렇게 사용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세상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내 집주소를, 그것도 남(건물주)의 건물 주소를 공개한다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다 양보해서 자본주의 현실의 냉혹함이 아직 파악 안 된 초짜의 허영이라 집을 사무실 겸용으로 써야 한다고 해도, 코딱지만 한 내 방에는 그 최소수량인 100개의 철판을 둘 곳이 없었다. 여차하면 철판을 침대 위에 깔아 두고 그 위에서 자다가 입 돌아가야 할 판국이었다.


이로써 작업실 겸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나름 합리적으로(?) 명확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코워킹 스페이스(=위워크 등)의 개념이 대중화되고 널리 알려졌으나, 내가 사무실을 구할 때까지만 해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찾아서 알고 있는 정도였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찾는다고 말하면 '그게 뭐야?'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거 없는 저 2가지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찾기가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사무실인데 사업자등록 주소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재고를 충분히 보관할 공간이 없었다. 사업자 주소지 서비스를 거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건물주가 싫어해서'였다. 명함을 받아 들고 돌아서서 나올 때마다 씁쓸했다. 세금은 내가 내는 건데 건물주가 왜 싫어할까, 법에 대해 무지한 내 생각일까, 그렇다면 역시 엄청나게 까다로우신 내 자취방 건물주도 듣자마자 거절할 판이었겠구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날 한껏 돈 없는 서러운 쭈글이로 만들곤 했다. 차라리 액세서리나 옷을 팔 생각이었다면 좀 수월했을까? 뭘 판매하실 거냐는 질문에도 구구절절 설명하고, 왜 재고를 보관할 공간이 단순 캐비닛 한 칸으로는 안되는지 납득시키기도 힘들었다.


내게 적절한 공간을 찾다가 찾다가 실패할 때마다, 아쉬워서 다시 위워크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입주사 목록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최근에 위워크와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 사업은 입주자들의 자기만족을 기반으로 한 기분을 판매하는 일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힙한 공간에서 현시점에서의 최첨단 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인공이 된 듯한 그런 혁명적인 고양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라는 것. 이제 와서 그 글을 읽었을 땐, 시작부터 위워크에 입주하지 않았던 게 내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혁신적인 업무를 하는 멋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나도 같은 성격의 일을 하고 있는 것 마냥 도취되었다가 정작 그런 이미지만 만들어서 팔려고 하진 않았을까 싶었다. 위워크가 제외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재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였고, 예산보다 월 사용료가 비쌌기 때문이었지만, 반대로 그런 멋진 공간에서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일이 막힌다면 더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입주하고 있는 작업실이 마음에 들기에 그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워크에 입주하지 않았던 사실에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 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간단한 2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공간이 보증금이 없는 내 예산으로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좌절에 빠져 사무실을 구하는 것을 반 포기하려는 상태까지 갔었다. 왜 애플이고 뭐고 하는 엄청난 기업들의 CEO들이 하나 같이 짠 것처럼 차고지에서 사업을 시작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미국 감성이어서도 아니고, IT 감성이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였다! 역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들은 하나 같이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돈이 없었기에 집에 달린 차고 구석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아아, 누가 제게 창고처럼 쓸 수 있는 차고를 내어주실 천사분이 안 계신가요? 대한민국에서 차고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외부인의 내부입장을 전혀 반기지 않으시겠죠?


공장 사장님께 제품들 배송받을 주소지 알려드려야 하는데, 기한은 다가오고 집주소를 불러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끝에 겨우 며칠 남은 날, 조물주께서는 고생하는 유나킴이 재미있으신지 조건에 맞는 데다가 위치까지도 을지로라 적당하고 그 와중에 신축이라 깔끔한 공동 작업실을 찾을 수 있게 해주셨다. 공간을 둘러보겠다고 약속한 날 바로 입주하기로 결정하고 계약서 쓸 준비를 했다. 드디어 집도 아니고, 학교도 아닌 '첫번째서랍'을 위한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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