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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0. 2020

무엇이 당신을 운동하게 하는가

이미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요가 선생님께 그 말씀을 직접 듣고 나서 부쩍 불치병을 선고받은 듯 침울해졌다. 어느 날 요가원에서 선 자세에서 후굴(뒤로 꺾음) 자세를 하다가, 요가 선생님이 내가 유연하긴 한데, 허리 혹은 척추에 힘이 없어 나중에 허리 때문에 고생할 거라고, 힘을 키우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허리에 드리운 미래의 고통을 떠올리며 우울해하다가,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졌다. 나라고 평생 약한 허리로 살랴. 유연하면서도 강한 허리로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요가원 등록기간이 끝났다. 방학이라는 변수도 있고 요가 수련이 조금 루즈해진 틈을 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인 버티는 힘을 더 키우고 싶다는 핑계로 다른 운동에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


  먼저 체험해본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누군가 필라테스는 ‘요가’와 ‘PT’를 합친 것 같다고 한말이 기억난다.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스튜디오에 체험을 해보았다. 1시간 체험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순 없겠지만, 리포머 위에서 거울을 보며 몸을 늘리고 당기는 과정과 요가 아사나를 따라 하는 듯한 자세들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퍼스널 트레이닝이었다. 근력을 키우기엔 PT만 한 게 없다 생각했다. 역시 1일 체험으로 강사와 나 1:1로 피티를 30분간 받았다. ‘런지, 스쾃, 플랭크’ 등 들어는 봤지만, 직접 해본 적은 없는 자세를 비교적 온순하게 생긴 젊은 남성 강사의 친절한 가르침 아래 취해보았다. 처음이라 가볍게, 천천히 진행해서 크게 숨이 차거나 땀이 나진 않았다.


강사는 운동을 마치고 옆방 상담실로 예비 회원인 나를 안내했다. 그는 PT 전에 잰 나의 인바디 출력물을 테이블에 놓고, 내 그래프가 여성으로 드문 ‘대문자 D’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내 몸이 체중은 적은데 골격근량은 표준 이상이며, 체지방량은 표준 이하라고 설명하는데, 생애 첫 인바디 앞에서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강사는 운동을 하려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한다.                           

“사실은… 요가를 하고 있는데 더 잘하고 싶어서요.”

내 대답을 듣고 강사는 풉, 하고 웃고 만다. 입을 가리고 진정하는데 수초 간 시간을 쓰더니,

“죄송합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가 보통 다이어트, 체력 강화인 게 대부분인데, 생각지 못한 대답이라 당황했습니다.”

웃어버린 트레이너 앞에서 나는 뭔가 부가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제가 유연성으로 후굴은 하겠는데 근력으로 버티는 자세가 부족해서요. 특히 기립근이나 등 쪽 근육을 기르고 싶어요.”

“요가, 좋은 운동이죠. 하지만 요가는 늘리는 자세가 많기 때문에 근력운동에는 부족해요” 강사는 다시 평정을 되찾고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동의했겠지만, 방금 내 몸속에 골격근량이 22.4kg이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의아했다. 이번엔 식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게 되었다.   

“아. 이제 체지방이 낮은 이유를 알겠네요. 반드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시작되는 긴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 외 운동 스케줄과 강습료를 설명하고는,

“잘 찾아오셨고요. 궁금한 건 언제든지 문의하십시오”라는 말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에 나는 제주 하타요가 마스터의 새벽 수련에 참가했고, 그 후 이제 다른 운동 체험은 그만두기로 했다. 신비롭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그곳에서 요가를 경험하고는, 더 깊어진 열정을 갖고 수련에 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항심과 하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수련한다면 요가를 통해서도 언젠가는 근육이 단단하게 자리 잡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요가로 시작된 나의 운동체험이 다시 요가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동안 ‘나의 운동의 이유가 트레이너를 웃게 할 만큼 특이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 질문의 꼬리는 언젠가 본 광고 현수막을 기어코, 떠올리게 했다.                                                              ‘넌 먹고 싶은 것만 있고, 입고 싶은 건 없니?’                                            

이 (폭력적인) 문장은 볼드체의 매우 커다란 글씨가 프린트되어 크로스핏 짐이 있는 건물 4층 전체에 걸려있었다. 그 동네의 큰 사거리를 지나는 보행자든, 신호대기 중인 운전자든 , 누구든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날 수 없었다. 최근 인근 동네에서 목격한 ‘뼈만 빼고 다 빼드립니다.’ 같은 문구는 보고 피식 웃을 수나 있지. 저 굵고 큰 글씨는 인간의 본능, 순수 욕구를 한순간 깔아뭉개고 소비를 부르는 외모를 우위에 세우고 있다. 저 카피의 의도는 분명했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것. 그래서 체육관 등록이라는 소비를 부르는 것. 그러나 그것을 본 수많은 지역 주민들은 ‘식탐이 많아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은 한심해’ 혹은 '예쁜 옷 입으려면 일단 날씬해야 돼.'라고 내면화(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을 강화) 하지 않았을까. 운동을 통해 자기 관리를 하지 않고 있거나,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상황에 처한 모두를 소외시키는 날 선 한마디였다. (아니면 진정, 나만 불편한가?) 그 광고로 그 체육관은 얼마큼 홍보효과를 보았을지 궁금하지만 이미 그곳은 미술학원인지 한의원으로 바뀌어 알 도리가 없다. 단지 그 문구를 본 후 소화되지 못한 내 거북함은 그대로다.   


내가 피트니스 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며 운동의 동기를 말할 때, ‘몸에 군살을 빼고 근력을 키워 탄탄한 몸매로 예쁜 수영복을 입기 위해서’라고 말했다면 그 강사는 또 다른 의미로 웃음을 지었겠지.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다가, 상담 중 젊은 강사가 웃느라 말문이 막힌 순간이 약간은 통쾌하기도 하다. 나의 틀에 박히지 않은 참신한 운동의 동기로 군산 헬스 트레이너 한 명의 생각에 실 같은 틈, 혹은 솜털 같은 충격을 준 순간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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