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그간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요. 올해 초, 남편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 규모를 대폭 줄였어요. 그리고 곧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어요. 희망퇴직을 받았고, 12년 근속한 남편에겐 이직을 생각할 중요한 기회였지요. 이직할 만한 곳을 알아보았지만, 결국 코로나 사태로 경력직 채용이 전혀 없었고 그렇게 막상 이직할 회사가 마땅치 않아서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구조조정으로 회사가 재편되고 나자, 남편은 이제 분위기가 위축되어 일이 재미가 없대요. 시무룩해요. 이대로 회사에 남아 있다가는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이래요. 그 뒤 일주일 지났을까, 괜찮은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동안 헤드헌터들로부터 온 연락에 모두 시큰둥하던 남편이 급관심을 가져요. 그 분야 전혀 모르는 제가 봐도 작아진 회사에 남는 것보다 그쪽 회사로 가는 게 훨씬 유망해 보여요.
처음엔 온라인으로 적성검사를 하더니 통과해서, 그다음은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가요. 네, 회사가 서울 종로에 있거든요. 면접 1차 통과했대요. 우리 남편 능력자지요. 그런데 이때부터는 2차도 붙으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요. 저도 처음엔 잘해보라고 응원해줬지만, 점점 현실적인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마음이 두 갈래로 갈려요. 그러는 사이 남편은 최종 합격을 했어요. 이 과정이 한 2주 좀 더 걸렸으려나. 이럴 거였으면 희망퇴직을 했어야지요. 거금의 희망퇴직금 놓친 거 너무 아쉬웠어요. 뭐 인생은 타이밍인데, 안 맞았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 쳐요. 그런데 지금 서울로 이직을 해버리면 저는 어떡하냐고요. 남편은 서울 집을 따로 구할 것 없고, 부모님 댁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면 괜찮아요. 문제는 저예요. 지금 지역에서나 중등교사지, 서울에서는 직업이 없어요. 타 시도 간 교사를 1:1로 교환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제 지역으로 오려는 교사, 그것도 과목도 맞아야하는데, 10년 걸려도 장담 못한대요. 그 세월 동안 학교 근무하며 아이를 혼자 키워요? 엄두가 안 나요. 남편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그만두고 서울에서 기간제로 일해야 할까요? 전혀 다른 진로를 새롭게 고민해야 할까요? 답이 안 나와요.
이곳에서 당분간 쭉 살게 되리라 믿고, 아이 초등학교도 쭉 보내려고 면지역으로 이사 와서 워라밸 잘 맞춰가며 큰 욕심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남편의 이직으로 제 삶이 완전 급변하는 거잖아요. 남편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이젠 자기가 포기하겠대요. 회사에 남아서 다시 잘해보면, 변화 없이 우리 가족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맞는 말인데, 아내 편하자고, 남편의 창창할 것만 같은 미래를 포기시키기가 참 그래요.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출구 없는 고민 끝에 결국, ‘나는 서울로 갈 수 없으면, 경기도로라도 가볼 테니 일단 이직하라’고 했지요. 정 안되면 임용시험을 다시 보겠다는 말까지 해가면 서요.
남편은 전 직장과 새직장 사이 쉬는 기간이 일주일 있었어요. 남들은 이직할 때 멀리 여행도 떠나고 그러던데 여행은 무슨, 남편은 떠나는 전날까지 집안 안팎을 손보고, 정리하고 갔어요. ktx역까지 남편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도 나도 참 기분이 이상해요.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매주 반복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울적하고 찹찹하고, 그래도 한번 해보자 싶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어요.
배우자의 신상 변화가 저에게 끼친 바는 대략 이랬어요. 세 식구가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냐며 서울로 재임용을 노리고 중등교사 임용 시험공부를 다시 시작해보겠노라 다짐했다가, 너무 힘들다고 그만둔다 했다가, 딸이 왜 공부 안 하냐고, 그럼 우린 같이 못살지 않냐는 소리에 자책하고 내가 이 상황에서 통제 가능한 것은 공부밖에 없다며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가, 일, 육아, 때아닌 공부로 내 몸이 통제가 안되어 그만뒀다가, 그래도 임용 시험 칠 자격은 만들어 놓으려고 짬짬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공부해서 응시하고, 무더운 여름 온방의 창문까지 꽁꽁 잠그고 다니는 딸을 보고 'ADT 캡스'를 알아보고, 장거리 출퇴근은 어떤가 싶어 KTX 정기권 열차 해당 구간을 알아봤다가, 대전으로 주말부부를 한다는 지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했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주말부부를 한다는 지인을 부러워했다가. 매일 생각이 달라지는 와중에 직장에서도 집중을 못해 실수를 여기저기서 하고, 이럴 바엔 아껴두었던 휴직을 아예 지금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주에 한 번씩 하며 지낸답니다.
주말부부를 한 달 하다 보니 주중과 주말의 경계,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 흐름이 어느 때보다 명확해요. 월요일, 새벽에 남편이 떠나요. 월요일은 제게 기운이 제일 많을 때에요. 정서도 안정적이지요. 주말 동안 긴장을 놓을 수 있고 남편의 수고로 푹 쉬었으니까요. 화요일까지 괜찮아요. 수요일, 방과 후 수업 때문에 오후에 외출을 내고 직장에서 왕복 한시간 걸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학교를 두 번 출근하는 날이에요. 저녁까지 방과 후 수업하고, 교감선생님께 맡겨둔 아이 신경 쓰느라 하루를 두 번 산 느낌이에요. 목요일, 집도 난리고, 수업도 많아서 정신도 몸도 제일 피곤한 날이에요. 금요일 저녁에 남편이 온다는 희망으로 다시 조금 기운을 끌어올려보아요. 그렇게 매주 한주, 한주 버티다가 주말이 되어 남편이 돌아오면 탁 풀어져 어느 정도 충전이 되지요. 하지만 이번 주는 남편이 금요일에 안 왔어요. 금요일 밤 굉장히 피곤한 채 잠이 들어요. 토요일, 주말이 시작되었음에도 아직 피곤해요. 이제 나의 주말은 남편이 집에 옴과 함께, 비로소 시작되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음 달에 오래 다닌 요가원에 그토록 바라던 새벽 수업이 개설된대요.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수업을 더 많이 하는 아쉬탕가 공인 티처를 제가 다니는 요가원에서 모셔왔대요. 6시부터 한대요. 새벽 요가라니. 그것도 마이솔 아쉬탕가라니, 지방에서는 최초래요. 이런 기회가 또 없을 거예요. 일어나서 요가원 가는 건 문제없어요. 그 시간에 집에서도 혼자 하니까요. 그런데 하필 지금인지. 아이랑 그 시간에 옆에서 같이 자줄 사람이 없어요. 아이는 잘 시간이지만, 봐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를 혼자 두고 요가를 하러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물론 남편도 안타깝지요. 주말에 집에 와서 주중에 딸과 저로 무너 저 내린 일상을 다시 정리하느라 바빠요. 요즘은 주말에 어디 놀러 갈 엄두를 못 내요. 주말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남편도 힘들 테니 나도 힘내자, 하며 마음을 다잡지만 다시 한주가 시작되면 반복이에요. 안 되겠어요,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