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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0. 2020

같은 밤, 다른 슬픔

오늘 아이의 유치원 졸업 및 수료식이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는 만 4세 과정을 마친 수료식에 해당한다. 내년엔 졸업식으로 같은 자리에 참석하겠지. 졸업생 축하 영상을 보다가 눈가가 잠시 얼큰해졌다가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갓 7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눈엔 귀엽기만 한 딸의 ‘쌈 마이웨이’ 율동과 ‘사랑하는 마음’ 노래를 흥겹고 흐뭇하게 감상했다. 딸은 무엇보다 수료 선물로 받은 ‘공주 옷장’ 선물에 마음이 뺏겨있는 듯했지만, 아이 아빠와 엄마는 1년간의 과정 잘 마친걸 거듭 축하해주었다.


 그날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수료기념’을 했다. 평소에 잘 안 해주는 ‘안아서 재우기(내가 침대 헤드에 베개를 받치고 기대앉은 뒤, 내 허벅지 위에 18kg의 아이 몸이 내 다리와 90도가 되도록 눕혀 내 두 팔로 아이의 목과 무릎 뒤를 받쳐 안는, 팔이 무지 아픈 자세)’를 해주기로 했다. 아이를 안고 오늘 멋졌다고 수고했단 이야기를 또 한 번 건넨다. 무심코 “내일부턴 방과 후 과정이라 이선이 선생님만 오셔.”라고 했다. 아이는 내 팔에 안긴 채로 “알아.” 했다. “염지은 선생님이, 선생님 없어도 자기 자리에 잘 앉아서 밥 먹으라고 하셨어.”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겨우 겨우 말을 마치더니, 그만 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도야 왜 그래?” 물어도 한참을 운다. “염지은 선생니임~””보고싶어어어” 하고 오열하듯 운다.


엄마는 당황하고 만다. 속이 쨍하고 비칠 정도로 투명한 울음. 그 울음이 표현하는 순도 높은 슬픔. 그 슬픔이 너무 순수해서 슬펐다. “이도, 선생님 많이 좋아했구나, 왜 아까 선생님께 말하지 그랬어.”라고 쓸데없는 말만 하고, 위로에 서툰 엄마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슬픈 감정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아이는 거듭 선생님 이름을 부르며, 연신 샘솟는 눈물을 닦아낸다. 엄마가 내 눈물, 네 눈물 같이 닦아주다, “나중에 또 만나면 되지”라는 나도, 너도 믿지 못하는 말을 한다. 아니다, 아이의 슬픔 또한 부정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슬퍼하게 해주자.


이별도 잘해야 후회로 남지 않는 다는걸 몸소 깨달은 엄마는, 선생님과 마지막 날에 드리려고 주말에 미리 딸이 손수 그리고 오리고, 붙인 그림편지와 색종이 팔지, 그리고 카페 사장님이 손수 만든 과일청 세트를 사서 준비했다. 졸업식 땐 정신없을 것 같아, 오전에 아이 등원 때 준비한 걸 미리 드렸다. 머뭇머뭇 건넨 선물을 쑥스럽게 받으셨다. 아이는 정작 선생님과 헤어지던 오후에는 선생님과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도 뚱해있었다. 사진 찍자고 꼬시는 중에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겨우겨우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니 선생님 안아 드리라고 해도 싫다고 해서, 그렇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헤어져 집으로 왔다(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이 마음속에,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떤 피하고 싶은 감정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자기 전에, 이제야 당장 내일부터는 유치원에 가도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1년 동안 해누리반에서 오전 내내 함께한 선생님을, 내일부턴 보고 싶어도 못 본다니. 물론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담임을 맡아주셨던 두 분이 더 계셨다. 그때는 우리가 떠나는 입장이라, 다시 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후에 다시 찾아뵈었다. 하지만 이번엔 선생님이 떠나신다는 것이 다른 점이며, 더 큰 차이는 아이가 이별을 알만큼 커버렸다는 거다.


나의 딸이 처음으로 ‘슬픔’이라는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현실적으로 절실하게 마주한 순간이다. 아이는 20분 가까이 울음을 그칠 줄 몰라한다. 엄마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럼 아까 유치원에서 못한 말 영상 메시지로 보낼까? 이도가 보고 싶다고 하면 선생님이 유치원 놀러 오실 수도 있잖아.” 했더니 웬일로 그러겠단다. 퉁퉁 부은 눈으로 막상 핸드폰을 들이밀자, 또 눈물만 흘리는 아이를 겨우 다독여 “선생님 보고 싶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세상 슬픈 영상을 찍었다. “엄마가 이 영상을 선생님께 보내면 이도 마음 알아주실 거야.” 하니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하품을 한다.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어 시간이 이미 깊은 밤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마음을 오늘 전해드리고 싶었다. 선생님께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아이의 영상, 그리고 낮에 찍은 사진을 함께 보냈다. 보내고 나니 11시가 가까워진다. ‘아이쿠, 실례했구나. 주무셔야 되는데 내가 괜히 감상에 젖어서 선생님까지 슬프게 만든 건 아닐까, 다 내 욕심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참 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온다.


“아이들과 1년 동안 생활하다 이렇게 헤어질 때면 저도 항상 마음이 허전해요.

이도도 유치원에서는 시끌벅적 들뜬 마음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헤어진다는 게 실감 났나 보네요^^

오늘은 졸업식 때문에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유치원에 한번 들러서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하려고 했는데 우리 이도 얼굴 한 번 더 보고 꼭 안아줘야겠어요. ^^

1년 동안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랄게요.”

나의 구구절절한 문자에 비하면 간략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문자가 왔다. 참 감사하다.


사실 아이가 모르는 하나가 더 있다. 염지은 선생님은 이전 선생님이 육아휴직을 가신 1년 6개월간 오신 기간제 선생님이다. 나도 이 사실을 불과 한 달 전에 알았다. 학부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늘 달누리반 선생님 뒤로 빠져있었던 선생님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우리 학교에도 6개월 혹은 1년간 오셨다가 떠나시는 기간제 선생님이 있다. 그때마다 속 깊은 몇몇 아이들은 용케도 알고, 그 선생님이 떠나기 전날 케이크를 들고 교무실을 찾아온다. 와서는 자기들도 울고, 선생님도 울린다. 나도 멀뚱히 뒤에서 바라보다 몰래 눈물을 훔친다. 학생들에겐 몇 번 없는 일일지 몰라도 해당 선생님은 6개월, 1년 학교를 옮길 때마다 있는 일이다. 친하게 지내는 (공교롭게도 염 선생님과 나이가 같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사회 선생님에게 들은 바로 자기도 일 년 중 이맘때가 제일 힘들단다. 그래서 떠나기 전까지 학생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단다. 그냥 기간이 끝나면 깔끔하게 사라진단다. 그렇게 마음먹기까지의 마음을 감히 상상해보다 슬퍼지고 만다. 7살 딸이 겪는 이별의 슬픔을, 그것과는 조금 종류가 다른 슬픔을 생각하는 36살의 엄마가 감히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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