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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Apr 19. 2021

인사해도 될까요?

우리가 함께한 지 이제 5개월, 가을에 만나 겨울과 봄을 지나는 중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지난밤의 피로를 등에 업은 채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 세워본다. 퉁 부은 눈으로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주전자 포트에 보리차를 데우는 동안 흐르는 물에 사과를 씻어 껍질째 숭덩숭덩 잘라 놓고 요거트를 덜어 견과류와 건 블루베리를 한 움큼, 벌꿀 한 스푼을 넣어 휘휘 젓는다.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으로 온몸을 깨우고 제멋대로 조각난 사과는 요거트에 푹 담가 제대로 먹어준다.

이렇게 아침을 챙기며 그날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들을 챙겨본다. 그렇게 금쪽같은 30분을 쓰는 동안 등 뒤에 시선 하나가 꽂힌다. 아침을 다 먹은 내가 뭘 할지 알고 있는 똑순이, 강아지 두유의 눈빛이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는 나는 허겁지겁 내 아침을 밀어 넣고 서둘러 채비를 한다.

까이꺼 얼렁얼렁 먹어줄래~ 언니야~?

“아가~ 산책 갈까~?”하고 물으면 드릉드릉 자그마한 엉덩이를 들썩인다.

아직 잠든 친구를 뒤로하고 늦어도 8시 반, 아침 산책에 나선다. 우리의 아침 코스는 늘 정해져 있어 나는 그저 두유가 이끄는 대로 걷는다. 4월에도 여전히 낙엽이 깔린 북악산 오솔길에 도착하면 킁킁 냄새를 맡던 두유가 드디어 응~가! 를 한다.

그렇다, 우리 강아지 두유는 집 밖에서만 용변을 보는 실외 배변견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불과 5개월 전, 처음 집에 왔을 때만 해도 계단이 무서워 산책 한 번 나가기가 미션이었던 아가였는데.. 5959.. 무수한 시도 끝에 산책의 즐거움과 더불어 실외 배변의 맛까지 알아버린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가 실외 배변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하루 루틴에도 산책이 주요한 일과로 자리 잡았다. 아침을 꼭 챙겨 먹는 내가 아침 산책을 맡고, 프리랜서인 친구가 오후 산책을, 저녁 산책은 가능한 사람이 유동적으로~ 이렇게 1일 2~3산책을 실천하고 있다. 요 몇 달간의 나는 빠듯한 출근 데드라인 속에서 두유의 똥꼬만을 기도하듯 바라보고, 치열한 하루 끝에 만난 두유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을 안녕히 보낸다.

모든 시간의 널 사랑해 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 바로 그 길로 또 산책하러 나가는 내가 대단하다고 하는 주변도 있다. 평소 산책을 좋아하고, 아침에 잘 일어나는 편인 나도 물론 매일의 산책은 수고롭다. 늦잠이라도 잤거나,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 같은, 현대인의 아침에는 산책을 못 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도 최소한 저녁이나 밤 산책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통통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다 종종 뒤돌아 나를 확인하는 눈코입과, 매일 걷는 길인데 이렇게 매번 행복할까~ 싶을 만큼 행복으로 반짝이는 얼굴을 보면, 비단 나뿐만 아니라 견주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종일 날 믿고 기다려준 아이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몸을 일으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약속 덕분에, 오늘도 출퇴근길 버석한 풍경에 메말랐던 내 시야는 생기를 되찾는다.


두유가 바꿔놓은 내 아침과 저녁의 풍경처럼 또 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그 배경의 인물들이다.

매일 초록색 후드와 벙거지 모자를 대충 걸쳐 입고 나서는 바람에 서로의 그림이 익숙해진 동네 이웃들과 어느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 거다. 어디 눈인사뿐이랴, 길 가다 만나는 강아지는 물론이고 사람, 나무, 꽃, 풀잎 하나에도 정성을 들여 냄새 맡는(인사하는) 두유 덕에 그 시간의 틈을 메꾸는 나의 스몰토크력도 나날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개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관리 소장님이 알고 보니 백구 세 마리의 아빠라는 것과 집 앞 주유소 아저씨는 개를 좋아하지만 무서워해 멀리서만 흐뭇해하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 슈퍼 앞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언젠가 키울 강아지의 이름 후보에 ‘두유’가 있다는 정보를 업데이트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게 직업인지라 가급적 일상에서는 낯선 사람과 만나길 주저하는 나도 견주라면 아니,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대환영이다. 내 동네 친구는 없더라도 두유 동네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에 강아지가 보이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무려! 서로의 강아지 인스타그램 주소를 맞교환하고 DM으로 시간과 장소를 맞춰 같이 동네를 걷기도 한다.

나이(10개월 추정)에 비해 덩치가 큰(11kg) 우리 두유는 그 과정에서 무례하게 거부당하는 일도 잦고, 요즘 같은 세상에 마상에 ‘튀기’라고 불린 적도 있어서... 그럴 때마다 부들부들하며 ‘인사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불끈하기도 하지만. 우리네 인생처럼 딱 한 마리의 친구만 찾아도 행복한 견생이라는 강형욱 쌤의 말을 바이블 삼아, 두유의 행복한 견생을 함께할 친구를 대신 찾아주고 싶다. “무슨 종이에요?”라고 묻는 대신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봐 주는 매너 있는 사람과 함께 걷는, 좋은 친구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두유와 걷는 나는 이렇게 물으며 하루를 열고 닫는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아지랑 인사해도 될까요?”


*두유 인스타그램 @i_love_doyou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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