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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Feb 24. 2021

60일의 두유

이제 곧 100일을 앞두고 있어요♥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나’로 시작되는 이 문장이 정작 내 입에도 잘 붙지 않는 건, 우리 사이가 겨우 60일밖에 되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실제로는 강아지가 날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버라이어티하고 다이내믹하게.


2020년 6월생, 이제 막 7개월이 된 강아지 ‘두유’는 지난 11월 21일 입양을 기점으로 나와 동갑내기 친구로 이뤄진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초보 집사였던 탓에 우리는 한 달여의 기다림 끝에 입양을 승인받을 수 있었고, 두유와 만나기 10일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비싼 장난감은 노쓸모 ^.ㅠ 슬리퍼를 더 좋아한다

강아지 세계로의 입장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챙겨야 할 것이 어찌나 많은지. 사료, 배변패드, 켄넬(이동장)은 물론이고 샴푸, 귀 세정제, 발바닥 젤리 보호용 로션, 발톱 깎기, 장난감들의 종류만도 물고 뜯는 용, 냄새 맡는 용, 이빨 갉는 용... 간식도 물고 뜯는 용, 보상용, 영양 보급용... 아 옷도 있어야지. 추우니까 패딩, 안에 입히는 티, 그 위에 매는 하네스(가슴줄), 목줄, 리드줄...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나열해봐도 수두룩. 우리의 공간이 두유로 빼곡해진 순간, 내 생활에 한 생명을 들인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했던 건 지식이었다. 어릴 적 강아지를 키워봤던 친구와는 달리, 오히려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나로서는 지식은커녕 기본 상식조차 없었다. 당연히 외워야 할 것도 산더미. ‘자리에 앉아 강아지와 시선을 마주친다. 천천히 손등을 보여주며 냄새를 맡게 해준다’... 강아지와 처음 인사하는 순서부터 머릿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40가지’ 같은 류의 책이라든지 ‘세나개’(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훈련사들의 유튜브를 구독하며 이미지 트레이닝 거듭했다. 어디선가 자꾸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산책하는 강아지와 만나면 손등을 보여주고 꼬리부터 살폈다. 오우, 나 이제 며느리발톱 정도는 알게 된 것 같은데? 실없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60일이 지난 지금, 역시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세나개와 유튜브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이상은 차분한 훈육자인데 현실에서는 그냥 두유 바보가 되기 일쑤. 아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반가워 혀 내밀고 프로펠러 꼬리가 되는 강아지를 보고도 ‘아무 말하지 않고 차분히 손등을 보여준 후 강아지가 진정되면 담백한 어조로 “잘 다녀왔어”라고 인사’를 할 수 있나? 음... 메모와 반성으로 매일의 일기를 채운다.


그런가 하면 요 며칠간 우리의 대화 주제는 ‘배변 훈련’이다. 임시 보호 가정에서 훈련을 잘 해주셔서(두유가 워낙 똑똑하기도 하고!) 지금껏 한 번도 배변 실수한 적은 없었는데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떡하니 흔적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잊지 못할 1월 12일. 그날은 하필 또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눈에는 역시 막걸리라며 신나게 김치전까지 해 먹고 설거지를 막 마치고 돌아섰는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이 된 친구가 내게 놀라지 말라며 다가왔다. 두유가 내 침대에 응가를 쌌다며. 말도 안 돼 거짓말.. 방에 들어서니 쾌청한 미소를 짓고 있는 두유와 따끈한 내음, 똬리를 튼 응가 아래 삼중으로 침투된 이불보가 보였다. 종일 응가를 못 쌌다길래 퇴근하자마자 너무 열심히 배 마사지를 해줬나? 내가 너무 진심으로 기원했던가? 강아지가 베개에 응가를 싸놓는 것이 가장 큰 애정 표현이라기에 그저 웃어넘겼는데 이건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 뭐 어차피 빨려고 했으니까! 영차영차 빨래를 돌리고 양치하고 심기일전. 이제 자야지~ 하고 남은 이불을 정리하는데 응? 얼핏 노란색이 보였다. 까꿍 언니야 놀랐지? 이번에는 쉬야다! 와~ 두유! 언니 오늘 새벽 2시에나 자겠네~ 급한 대로 손빨래를 해두고 놀고 있는데 또다시 새 이불 위에 노란 원을 그리는 두유.. 아가 그게 마지막 이불이었어.. 이쯤 되니 실수가 아니라 문제 행동이라는 생각에 잠이 싹 달아났다. 왜 그랬을까? 뭐가 문제일까? 밤새 유튜브를 찾아보다 여름 이불을 덮은 채 쪽잠을 잤다.

언니야~ 맛있어? 김치전? 후후
잊지 못해.. 그날의 새벽.. 아가~ 시원ㅎr니..?

그날 밤의 사고는 아마도 분리 불안으로 짐작됐다. 다시 출근을 시작하면서 불안이 생긴 듯했다. 프리랜서인 친구가 재택을 하고 있긴 하지만, 두유 입장으로서는 집에 두 명이 있다가 갑자기 한 명이 사라져버리는 건 아무래도 미스터리한 사건이겠구나 싶다. 강아지에게 하루는 인간의 삼일이라던데, 두유는 매일 아침마다 삼일간의 이별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맴이 찢어졌다. 팔자 눈썹 아래 까만 두 눈을 뒤로하고 걷는 출근길이 무거워 호흡을 골랐다.


그 후로 우리는 가뿐히 미션 클리어한 줄 알았던 배변 훈련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배변 훈련은 단 한 번의 완성이 아닌, 유지해줘야 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위로가 됐다. 그래, 이건 두유의 문제 행동이 아니라 성장 과정일 뿐인 거다.

자연을 사랑하는 강아지 두유

처음 복도 계단이 무서워 산책도 가지 못했던 두유는 이제 북악산의 흙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집 앞에서 들어가기 싫다며 땡깡을 부리기도 한다. 우리가 지레 겁먹고 그어둔 선을 씩씩하게 뛰어넘어 스스로 성장하고 놀라움을 안겨준다. 작은 몸을 내 몸 한구석에 꼭 붙이고 곤히 잠든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 야밤에 홀로 울컥하기도 한다. 고작 60일 만에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두유?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7개월, 나도 두유의 세상이 궁금하다.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아는지... 너에 대해서라면 기꺼이 배우고, 외우고, 알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쫑긋한 두 귀에 “사랑해 두유~”라고 속삭여 넣어준다. 무슨 말인지 몰라 갸우뚱해도 느껴주길 바라면서. 이렇게 두유는 오늘도 나를 키운다.

산책 중 가족사진 찰칵~!

... 그리고 이제 곧 우리가 만난 지 100일이다.

*두유 인스타그램 @i_love_doyou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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