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한 줄을 찾아서 어흥어흥~
2021년 2월, 그러니까 이제는 벌써 작년이 된 연초에 야심차게 시작했던 브런치에서 알람이 왔다.
'작가님 새 글을 못 본 지 무려.. 220일이 지났어요 ㅠ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라고. 그간 60일, 70일, 120일, 150일, 180일 단위로 내심 고마웠던 리마인드가 비로소 꽂힌 건 어언 200일을 넘기고만 게으름과 이제 2022년도 14일이나 지났기 때문이리라... 새해 호랑이 기운을 받아 작년 6월에 받아둬 빠삭하게 말라버린 글감을 불씨 삼아 다시 서걱거려 본다. 오늘의 불씨는 '헤드라인'.
불과 몇 년 전, 배우 홍보팀으로 일하던 때만 하더라도 흔들리는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담당하던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그날의 헤드라인을 훑는 일은 당연한 일과였다. 아, 일과라기보다는 리추얼ritual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간밤 사이 부디 그 이름들이 '단독'이나 '속보', '충격'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았기를 두 손 모아 검색해봤으니 말이다. 행여 불미스러운 한 줄을 놓쳤다간 불시에 들이닥치는 전화통에 당황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매일의 탄창을 채운다는 생각으로 체득하던 습관이었다.
지금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법석~호들갑~떠들썩하다가도 내일이면 쉬이 사그라져버릴 그 가냘픈 한 줄에 기대어 울고 웃던 날들을 보내며 나는 무엇보다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하루 8시간을 꼬박 보내는 일터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대화에서 내게 좀 더 의미 있는 한 줄을 찾고 싶어 퇴사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놈의 '의미' 타령을 하며 칼을 빼든 이상 지금의 내가 어떤 줄타기를 더 하고 싶은지, 더 어울리는지, 더 잘할 수 있는지 정해야만 했고 도돌이표 질문들 속 나의 한 줄은 (아직은) '영화'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제작사에서 일하며 의미를 찾아가다가도 요즘엔 간혹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더러 로딩이 걸릴 때가 있다. 그간 그저 일부일 뿐인 카테고리 안에서만 종종대며 매몰되어 있던 건 아닐까. 그럴 때면 문득 허해지고 곧 예기치 못한 불안이 떠밀려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한 줄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인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헤드라인 속에서, 이제는 내 머릿속에 어떤 한 줄의 라인을 품고 살아야 할지. 막연히 재미만을 좇아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그 너머 일말의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어제의 출근길, 홍보사 다닐 적 후임에게서 때마침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다.
"언니~ 잘 지내시죠! 갑자기 언니 생각이 났어요. 우리 호비에서 아마 처음 같이 밥 먹을 땐가? 아님 얼마 안 됐을 땐가 아무튼 그때 너무 정신없는 홍보사 업무에 머리가 팽팽 도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다 쳐내는지 놀라워서 ‘대리님’한테 ㅎㅎ 물어봤었어요. 그랬더니 대리님이 본인도 원래 성격은 느긋하다고, 일이니까 어떻게든 하는 거라고 말했었어요. 그 말이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종종 생각나요. 오늘도 갑자기 그렇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다 누리면서, 하기 싫은 건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생각 ㅎㅎ 요즘에도 자주 하는 생각이라 그랬나 봐요(일 얘기는 아니에요!) 평소 같으면 그냥 대리님 생각 또 했네 하고 말 텐데 오늘은 괜히 카톡을 보내고 싶었어요♥" (*남기고 싶어서 전문 발췌)
여전히 몸서리를 칠만큼 힘들었던 그곳에서의 기억이지만,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벅찼던 대리 시절의 후배들이 고맙게도 이렇게 종종 떠올려주곤 해 다행이다. '일이니까 어떻게든 하는 것'. 당시의 나는 정말이지 채 소화되지 못할 일들을 꾸역꾸역 밀어 삼키고 있었나 보다.(역시 위염은 괜히 생긴 게 아니고..)
어찌 됐건 날선 한파를 뚫고 전해진 이 뜨끈뭉클한 메시지가 올해를, 그러니까 2022년을 무려 14일이나 지나고 있는 내게 작은 힌트를 주었다. 지금 좋아하는 걸 잔뜩 즐기고 있으니, 올해는 언젠가로 마냥 미뤄뒀던 하기 싫은 것도 시도해봐야겠다는 다짐. 바쁘다는 핑계대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뜨끈함을 전하며 살아가기를, 다짐 또 다짐하며 어흥어흥~!
/ from 효은글감 '헤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