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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Apr 24. 2023

비가 와도 이불을 너는 사람

조현병 1m 거리에서⑤ 복도에 널린 이불들

이 분은 복도에 이불을 널었다

그러니까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 있는 복도에 이불을 널어 두었다.


자기 집 앞에 이불을 넣는 것이야 흔하게 보는 풍경이다.

복도식 아파트라면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본인 집앞에 무언가 두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비록 내 상식과 다를 지언정 복도를 막아 놓지 않은 다음에야 거기에 특별한 이견이 있을 이유가 없다. 미관상 조금 흉할지라도.


문제는 비올 때도 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기이했다.


이불을 널어 놓는다는 것은 일광건조의 의미다. 햇빛에 바삭하게 건조하며 살균도 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 분의 이불은 글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려있었다.

미색 바탕이 초록색에 섞여 있거나 핑크색 바탕에 레이스가 달린 이불 무늬까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이불을 고정하기 위해 생수통에 물을 담은 이후 바닥에 이불과 끈으로 치렁치렁 연결해 둔 그 풍경도 생생하다. 

알고보니 이건 그 분의 상상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내뿜는 가스를, 우리 집에서 보내는 가스를 이불로 막기 위함이었다.


그저 기이하고 불쾌하게 신경쓰이던 사람이 사건을 만들게 된 계기, 저 이불이 날씨와 상관없이 걸려 있는 이유가 시간이 지나 알고보니 우리 집 보일러였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적절하게도 원래 있던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인테리어 할 때 바꾸지 않았는데 묘하게 한 달도 안되어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고쳐쓰고자 했지만 수리 비용이 새 보일러 구매 비용과 비슷했고 당연하게도 새 보일러를 주문했다. 보일러 기사님들이 오셔서 보일러 연통을 복도에서 자르는 등 약간의 작업이 있었고 옆집 그 분은 그걸 봤다. 


이 보일러가 시발점이 될지는 몰랐지만 그 분은 우리 집이 보일러를 설치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뒤로 이불을 널어두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분은 우리 집에서 자신을 죽이는 가스를 보일러를 통해 내보낸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이걸 알았을 때 이 분이 조현병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 이불을 마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이 오는 일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이불의 의미도, 저 분의 조현병도, 그리고 상황이 되게 심각하다는 것도.


복도 쪽으로 빠지게 빼어둔 우리집 보일러 연통은 방향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있다.

그 분이 연통을 우산으로 몇 번 내려치셨다. 그 분한테는 우리 집 보일러 연통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자신을 죽이는 가스였으니까. 이것도 경찰이 오는 사건이 나고 나서야 짐작하게 되었다.


아, 경찰이 오신 건 그 분이 보일러 연통을 치셔서 그런 건 아니다.

이 때만 해도 그냥 미칠 것 같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경찰이 오는 일은 그 며칠 뒤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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