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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Nov 05. 2023

인사로부터 혜화까지

 ② 종로의 공기를 맡아 본 열 일곱살

번개를 쳤었다.

익명 채팅방에서 알게 된 누나를 만나기 위해 번개를 쳤었다.


익명에 기대어 채팅방 여기저기서 감성소년 콘셉트를 유지하며 어른인 척 까불거리던 나는 유난히 자주 대화를 했던 한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 서울에서.


누나의 나이는 나보다 10살 많았고 직장인 이었으며 서울을 구경시켜준다고 했다.

나에게는 큰 어른이었으니까 이성적인 설레임보다는 외동인 내게 서울사는 큰 누나가 생긴 기분으로 들떠서 가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의 끝 무렵으로 기억한다. 제일 좋은 옷을 골라입고 아직 휴대폰이 없어서(삐삐는 있었다.) 엄마의 두꺼운 PCS폰을 빌려 청바지 뒷주머니에 꼽은 채, 그러니까 멋부려서 촌스러운 모양새로 우등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서로 주고 받은 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혼자 다니는 촌스러운 고등학생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그 누나는 나를 쉽게 알아봤고 전화로 확인 한 후 같이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내 기억에는, 아마 모든 기억이 뒤섞이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세 군데 정도를 함께 들렀던 것 같다.


하나는 신촌 연세대. 당시에는 갈 수 있는 선택지라는 오만한 생각에 의한 방문이었으며 뚜렷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냥 들뜨기만 했었나보다. 아 연세대구나, 아 나도 남자셋여자셋을 찍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 물론 연세대는 입학하지 못했다. 


그 다음이 바로 인사동과 대학로였는데 열 일곱의 나에겐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문화충격이었다.


지하철 역 밖으로 올라오는 길부터, 사람들 인사동 거리의 모습까지 모든 게 신기했다.

그러니까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판대의 들썩거림(당시에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또 외국 사람들, 골목골목을 꼬불꼬불 찾아다니는 그 발걸음. 심지어 그 골목에 무언가 신기한 가게가 있었다.(인도풍의 묘한 가게들이 당시에는 많았다. 악세서리나, 짜이나 뭐 그런거)


다음으로 넘어간 대학로도 마찬가지였다.

화덕피자라는 것을 처음 목격했고 먹어봤으니까. 굉장히 세련된 외관의 가게에서 나이프와 포크가 나오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구워진 피자가 나왔을 때 나는 얼이 빠져있었다.


읍, 면 단위의 시골에 살던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덕피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태리 스타일'을 처음봐서 놀란 것 아니었을까.(그 가게는 디마떼오 였고 찾아보니 지금도 있더라.)


처음 보는 단어들로 조합된 메뉴판도 보고 매끈한 물병에서 물을 따라 마셔 본 것도 처음이었다. 큰 화덕에서 꺼내오는 시커먼게 묻은 피자도 처음 본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지만 나는 바짝 얼어있었다.


바짝 얼어서 뭘 먹은지도 모른 채, 세련된 척하며 시켜준다는 콜라도 안 먹고 물만 냅다 마시고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 공기가 내 몸을 한 바퀴 돌았다. 서울 공기가 순환한 것이다. 


우와 서울이네, 나 서울 살고싶다.


요즘 표현으로 오샤레한 서울보이가 되고 싶었다. 나는.

촌스럽게도 화덕피자를 얻어먹고 나온 밤의 공기 때문에.


그 공기는 종로의 공기이자 종로의 온도였고 결국, 서울 중심부의 정서였다.

그 정서 속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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