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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Oct 04. 2023

서울에서 번개가 쳤다.

① 하이텔이 나를 서울로 불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번개를 쳤다.


번개를 치다니. 너무나 묵고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번개만큼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 번개는.

여기서 '번개'는 컴퓨터 통신을 통한 만남을 의미한다.


컴퓨터 통신. 그러니까 PC통신.

와 PC 통신이라니. 이 단어를 키보드로 옮기고 있는 내 손가락이 뚝딱거릴 만큼 오래된 단어다.


세기말이었던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그 인터넷 대신에 PC통신이라는게 있었다. 틱톡, 숏츠, 챌린지라는 단어들이 각자의 휴대폰 마다 동동 떠다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대에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나 싶은데. 


힘을 내어 설명해보자면 컴퓨터에 전화선을 연결하고 그 연결을 통해 같은 서비스(*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통신사라고 봐도 되겠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가 있었다. 전화가 연결된 컴퓨터로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인 셈이다. 그 안에는 채팅도 있고, 게시판도 있고, 다운로드도 있었다. 그랬다. 모든 것이 있었고 특히나 사람이 있었다. 그 안에는.


그 안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번개친다'라고 표현했다. 잠시 기사를 빌려오면


"컴퓨터통신을 통한 만남인 ‘번개’는 일종의 언어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세상과 호흡하는 의사소통수단. 얼굴을 모르는 상대와 컴퓨터 활자로 대화하다가 실제로 만나 뜻하지 않은 로맨스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통신업체인 하이텔의 김완준(30)씨는 “지난 91년부터 지금까지 ‘번개’를 통해 결혼에 이른 커플이 적어도 1천쌍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힌다." - 문화일보(2000.01.12)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이 PC통신이 나와 다른 세계, 더 큰 도시, 대한민국 수도의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기어코 '번개'까지 쳤다. 서울에서.


심야우등 나들이의 시작은 이 '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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