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graceful Girl
타이베이에 산 지 6개월이 지났다. 다사다난했던 6개월을 머릿속 필름에 돌려보면 어찌나 통통 튀는 일들이 많았던지. 목구멍이 보이도록 크게 웃거나, 당황하여 땀을 삐질 흘리는 일이 많았다. 또는 우울함과 낯섦이 공존했던 때도 생각난다. 다행스럽게도 행복했던 날이 훨씬 많았다. 내가 사는 집은 구팅역(古亭) 허티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건물 3층에 있었다. 이 플랫에는 미국인 한 명, 영국인 두 명, 그리고 한국인 한 명이 함께 살고 있다.
미국인 데이브는 항상 ‘슈퍼 굿(Super Good)’을 외치는 키 190에 달하는 거인이다. 데이브는 항상 한국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한국의 비트코인 시장에 대해 한창 떠들어댔다. 나는 데이브의 통찰력에 놀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창구라고 생각했다. 데이브는 유튜버이면서 대학생을 인턴을 고용해 소셜 미디어로 자신의 채널을 홍보까지 하는 미래인이었다. 데이브가 흥분해서 토해내는 말들을 나는 항상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들었는데 반은 사기꾼 같은 말들이고 반은 그럴듯한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 가뭄이 계속되어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북한의 기근이 계속되어 북한 주민들이 대량 탈출을 했다는 이야기. 북한 주민들이 유입되어 남한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는 엉뚱한 이야기. 반면에 전자 코인의 시대가 곧 도달할 것이고 가격이 하루 다르게 폭등하고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이런 실제로 일어날 법한(Preditable) 이야기를 나는 귀를 솔깃하고 들었다. 북한이 동해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트럼프와 김정일이 으르렁거리는 다사다난한 년도였다.
내 옆 방에는 헬레나가 살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헬레나는 포쉬(Posh) 발음을 구사한다. 건너편 방에 사는 톰의 거친 영국 발음이랑은 하늘과 땅끝 차이다. "헤이~ 엠마~"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나의 마음까지도 차분해진다. 혹시 자신이 무례를 범하지 않을까 항상 조심하는 태도에 나의 입꼬리도 항상 올라간다. 채식을 하고 매일 운동하며 화학 성품이 들지 않은 아로마 바디크림으로 샤워를 하는 그녀. 그녀의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고 동작은 우아했다. 가끔 헬레나가 노래를 부를 때면 마치 뮤지컬 배우와 같은 농후함과 힘이 있어서 그녀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아파트에 종종 출현하는 바퀴벌레와의 싸움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삶은 화창한 날의 부드러운 항해와 같았다. 반면 헬레나와 반대로 나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곤 했다. 아파트에 산 3개월 동안 한 번도 휴지, 세제 등 생활용품을 사지 않았다. 누군가가 사서 메워두는 것을 얌체처럼 쓰기만 했다. 몇 푼 안 되는 이런 생활용품들을 안 사고 버티면서 그렇게 존엄함은 조금씩 갈아 먹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에 100 NT 대만 달러가 넘는 돈을 빵 사는 데 써버 리거나 비싼 술집에 가서 여유 있는 척 300 NT짜리 맥주를 시켜 홀짝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뒤가 맞는 행동만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헬레나였다. 나는 치졸하면서 헛똑똑이었다.
대만 사람들의 성격을 통칭하자면 인간미 있다는 뜻인 런칭웨이(人情味)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대만에 온 후 대만 사람들의 런칭웨이를 항상 이용했는데, 외국인에게 베푸는 대만 사람들의 친절에 점점 익숙하고 당당해지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베푸는 자오다이(招待:대접)에 감사의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늘어났다. 렉스라는 남자아이에게는 클럽에 같이 가고 싶다면 택시비를 내주라는 말도 당당히 한다. 못생긴 남성이 사주는 음식은 사양하지 않고 그냥 받아먹는다. 외국인 여성이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주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타이베이 북쪽에 위치한 핑시에서는 연초에 소원을 천등에 쓰고 하늘에 날린다. 내 부끄러움은 이미 저 멀리 마치 핑시의 티엔등처럼 날아가 버리고 없다. 그래서 나는 두려웠다. 언젠가 외국인이라는 우위와 특성을 잃고 나면 모두 나를 떠나버릴까 봐. 살얼음판 같은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것은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나는 외모의 덕택을 많이 보는 편이었다. 악의 없어 보이는 인상 덕분에 사람들이 주위에 저절로 모였다. 마음 한쪽에는 자신의 외모가 형편없어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까 봐 불안했고 더욱 긴 머리 스타일과 날씬한 몸매에 매달렸다. 간헐적으로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곤 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을 빼는 자신을 자책하기 싫어서 스스로 날씬한 모습을 사랑한다고 거짓으로 되뇌었다. 2주 정도의 혹독한 다이어트를 끝나면 다시 뚝 끊겼던 입맛이 돌아왔다. 우람해진 팔뚝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도 두 눈은 야생답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긴 머리카락을 잃는 것도 지독히 어려운 일이었다. 긴 생머리가 가져오는 아름다움, 아니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움이라고 인지하는 느낌을 놓치기 싫었다. 머리를 짧게 잘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면 살을 아주 깡마르게 빼야 한다고 생각했고 긴 머리라는 억압을 벗는다고 해도 또 다른 미의 기준을 입는 것에 불과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나는 뚱뚱하면서 머리까지 짧아서 볼품없어 보이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머리를 감고 말릴 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심리적으로 큰 허들처럼 느껴졌고 샤워를 피하게 되며, 밖에 나가는 일이 꺼려지고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너무 더워서 머리카락이 땀에 절여 피부에 들러붙어도 머리카락의 무게가 느껴져 버거울 정도여도 긴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대학교 근처에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만은 국립대만대학교와 언어 중심으로 유명한 대만사범대학교 근처 주거 지역에 외국인들이 모여 산다. 페이스북에 Looking for Roommates or Apartment in Taipei and Taiwan 그룹이 있으니 가입해두자. 아파트 설명과 위치, 한 달 월세, 보증금 등의 정보가 영어로 명시된 포스팅이 자주 올라온다. 나도 해당 그룹에서 멋진 아파트를 구했다. 중국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는 현지 사이트인 591(https://www.591.com.tw/)에서 거주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