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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Mar 10. 2024

우붓에서 자신의 신을 사는 방법

How to get your own god in Ubud


작은 가네샤 동상을 사면

자신의 신을 가질 수 있다고?


발리에 가면 코끼리 얼굴에 사람 몸을 하고 있는 석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힌두교의 신인 가네샤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가네샤는 어느 날 저녁 파티에 갔다.  파티에서 잔뜩 도넛을 먹은 가네샤는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배부르게 먹어 뒤뚱거리며 걷던 가네샤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배 안에 있던 도넛들이 튀어나와 뎅구르르 길 위에 굴러 나뒹구었다. 이 모습을 본 하늘에 떠있는 달이 그를 비웃자 가네샤는 수치심을 못 이겨 씩씩 거리며 도넛을 달 위에 던진다.  도넛을 정통으로 맞은 달은 반으로 또는 초승달 모양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식탐도 있고 수치심도 느끼는 신이라니!  경이롭고 무서운 신이 아니라서 가네샤한테 마음이 갔다.  발리 사람들도 귀여운 가네샤한테 마음이 가는지 거리 여기저기에서 꽃으로 치장한 가네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발리 사람 데딕(Dedik)은 우붓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  데딕은 영어를 잘하고 활발하게 영업을 할 줄 아는 아저씨였다.  2년 동안의 팬데믹동안 관광객이 아예 끊겨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one single damn chicken도 먹지 못하며 계란만 먹었다는 가족들, 데딕은 발리가 아직 팬데믹 전보다 70% 정도만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민박집이 골목 깊숙이 있어 그랩 택시가 들어가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전화를 하니 짐을 가지고 길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만 달랑 타고 나타났다.  아저씨는 능숙하게 왼손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오른손으로는 내 무거운 커리어를 뒤로 잡은 채 민박집까지 가져다 두었다.  


도착한 민박은 코지했다. 집 안에 역시 가네샤 그림을 걸어져 있었고, 마당에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인 반뜬이 놓여 있었다.  같은 힌두교인 인도에서 가네샤만큼 시바신도 자주 봤는데, 발리에서는 시바신이 잘 보이지 않아 발리 사람들이 가네샤를 더 사랑하냐고 데딕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아저씨 말로는 가네샤는 나쁜 기운을 걸려주는 고마운 신이라 길 위와 문 앞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시바신은 보통 집 안에 깨끗하게 모시는 편이다.  무슬림교가 대부분인 다른 지역과 달리 힌두교를 믿는 발리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지,  아저씨는 나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사람들은 가네샤 석상을 예쁘게 꽃을 꾸미고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이해 못 한다고 한다.  모로코에 방문했을 때 느껴졌었던 현지 사람들의 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배가 생각났다.  기독교 지역이었다가 무슬림으로 지배세력이 바뀐 터키 예배당에 가면 원래 있던 성경 인물화들은 지워지고 그 위에는 신을 의미하는 아랍어가 크고 절대적인 위양을 뿜어댔다.  무슬림 신자들에게 신은 형상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두 진영은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양상으로도 존재한다고 한다.


데딕 아저씨는 좀 더 설명을 추가했다.  얼음을 먹으면 몸이 추워진다, 그렇지만 너는 ‘추움’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신을 직접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기에 석상을 두고 자신의 신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집 안에 작은 가네샤 동상이 있다고 하자  데딕 아저씨는 그렇다면 그곳에 너의 신이 있다는 거라며, 석상에게 매일 인사하며 너와 항상 함께 있음을 느껴보라고 했다.  뭔가 안도감이 들었다.  작은 석상만 있다면 나의 신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든든한가.


또 데딕 아저씨가 얘기해 준 건데, 발리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몸에 신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일이 적다고 한다. 자신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는 일도 있고 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나쁜 마음을 누른다고 한다.  윤회 사상을 믿는 발리 사람들은 살면서 착한 일을 많이 누적하려고 한다. 맑은 물에 나쁜 일이라는 잉크가 떨어지면 그 위에 계속 맑은 물을 붓듯이 착한 일을 더하는 거다. 그래서인지 발리에서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계속 웃음을 지었다.



해변가에서 휴식과 서핑을 즐기다가 우붓에 간 이유는 요가원에 가고 싶어서였다.  우붓 산속에 있는 알케미 요가원은 아주 근사한 곳이다.  알케미는 연금술이란 뜻이다.  건너편 알케미 레스토랑에서는 비건 음식들을 팔고 있었고 거기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알케미 요가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었다.  엄격한 비건 음식을 표방하는 이곳은 계란과 우유도 사용하지 않았다.  잭프루트로 만든 참치 포케를 먹고, 코코넛 밀크를 넣은 말차 라테를 마셨다.  디저트로 코코넛과 망고, 딸기를 넣은 치아시드 푸딩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는 여성들만 가득했다.  이곳이 솔로 여성 여행자들을 위한 이상적인 보금자리로 느껴졌다.


요가원에서 Earth, Water, Yin 요가를 들었다.  Earth 수업에서 만난 요가 인스트럭터 Anna는 아주 먼 스웨덴에서 왔다. 당신이 여기에 와서 기쁘다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셀 수 없는 워리어와 도그 자세를 반복한 후 땀을 잔뜩 흘리면, 요가 후에 깊고 깨끗한 명상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2시간의 악기 명상도 들었다.  이 세션을 통해 당신의 무수한 과거를 마주하는 유영을 할 것이라는 설명에 혹했다.  세션은 7시 30분 밤 중에 열렸다.  자매인 듯 닮은 두 세션 호스트들은 깡 말랐다. 둘은 어두운 명상장에 온갖 악기들을 바닥에 깔아 두고 있었다.  명상이 시작되었다.  2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바닥에 편하게 누웠다. 연주자들은 신비한 소리가 나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먼 고대의 여신들처럼 노래를 불러주었다.  요가 운동 후에 몸이 달가워진 상태에서 빠져드는 명상만큼 효과는 없었고 몇몇 사람들은 진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귀엽고 인간적인 면이 있는 가네샤가 좋았다.  힌두교를 믿지 않지만 먹보이면서 수치심에 달에 도넛을 던지는 미성숙한 면에 나를 투영했기 때문이다. 그런 미성숙한 신에게 발리 사람들은 다정하게 꽃을 바쳤다. 석상에 대고 인사하는 의식이든, 잔뜩 땀을 흘리고 빠져드는 명상이든, 누운 채 신비로운 악기 소리를 들으며 온갖 잡생각에 빠져드는 일이든,  결국은 나라는 신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불안하고 미성숙한 나는 우붓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설프게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싶어 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더 다정하고 소중하게 다루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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