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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갸 Oct 19. 2023

이체불만족2

-병가에서 복직한 지 50일 만에 다시 병가에 들어가게 된 건에 대하여



https://brunch.co.kr/@tinystyle/11

▲지난이야기▲








사고 당일에 병원에서 구매한 목발을 짚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깽깽이로 전진이 가능했던 한 시간 전에 비해서는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내 목발 조절 능력은 형편없었다. 이제 막 태어난 새끼 기린 마냥 목발 다리가 가냘프게 흔들렸다. 조금 더 인간 친화적으로 말하자면, 처음 젓가락질을 배우는 사람 같다고 할까? 집긴 집는데 모양이 어설퍼 음식을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이건 짚긴 짚는데 지지대 위치가 들쭉날쭉, 중요한 건 이 다리는 절대 떨어뜨리면 안 된다.



병원에서는 다리가 너무 부어 지금 상태로는 석고를 바른 통깁스를 할 수 없다며 임시 깁스를 채워주었다. 그러면서 이 유리알 같은 다리를 일주일간 잘 지켜오라는 미션을 주었다. 전진할 때 앞으로 딛는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고꾸라질 것 같고, 순간순간 양 옆으로 딛는 목발의 폭이 달라지면 금방이라도 헤딩을 할 기세였다. 만 24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온 몸이 금세 만신창이가 되었다. 목발을 딛는 겨드랑이, 어깨, 승모근이 전부 결리기 시작했고 다치지 않은 반대쪽 발로만 앉았다 일어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멀쩡한 다리에도 무리가 왔다. 무엇보다 나는 손이 아파서 휴직까지 한 사람이었다. 치료 후반에 몇 차례 투여 받았던 스테로이드성 주사의 부작용으로 해당부위 근육이 꺼지고 뼈 밖에 남지 않았다. 단추 및 지퍼 채우기, 봉지 묶기, 젓가락질처럼 간단한 일상 동작도 어렵고, 아픈 손으로는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목발을 짚을 때 마다 체중이 그대로 전해지는 손 통증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관찰력이 좋은 반려인은 다음날로 행정복지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려왔다. 무료로 빌려왔지만 철제로 만들어진, 제법 튼튼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아마도 나의 어설픈 젓가락질이 못미더웠음이 분명했다. 목발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나는 신이 나서 집 이곳저곳을 누볐다. 적어도 사고 부위를 제외한 다른 신체는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얼마 전까지 손을 치료받고 있을 때에는 차라리 다리가 아픈 것이 낫지 않겠나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인 내게는 손의 쓰임이 더 비중이 크지 않나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상 닥쳐보니 사람에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상대의 입장을 공감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내일만 갈게. 회사에 휴직계도 내고, 인수인계서도 작성하고, 짐도 챙기고, 인사도 해야지. 응?”

“그래서, 회사에 어떻게 갈 건데?”



말하고 보니 회사에 가는 길이 막막했다. 네다섯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버스에 꼴랑 2~3개 있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었다. 멀쩡한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도 40분은 걸리는 거리라, 휠체어를 밀고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택시를 부른다고 해도, 출근 시간 막히는 길을 뚫고 온 기사님이 친절하게 내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빼주고, 타고 내릴 때 부축까지 해 줄지 미지수였다. 어쩔 수 없이 반려인찬스를 한 번 더 요청해야 했다. 


연신 못마땅해하는 반려인의 마중을 받으며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난생처음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해보니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었다. 차로 실어다 주고, 실어 가고, 고작 회사 안에서의 동선일 뿐인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한 번도 주의 깊게 본 적 없는 휠체어전용 통로를 찾아야 했다. 입구를 뱅글뱅글 돌다 보니 저 뒷편으로 설치된 경사면을 찾을 수 있었다. 무거운 철제 휠체어를 아픈 손으로 밀어내며 올라가는 그 길이 어찌나 버겁게 느껴지던지 마치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느껴졌지만, 그 장면을 누가 봤다면 달팽이가 나뭇잎을 오르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새벽의 사무실에 입성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문제가 생겼다. 입구에 설치된 자동개폐 철제문이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들어갈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닫힌 문을 열고 나갈 적에는 정말 울고 싶었다. 닫힌 문고리를 잡고 휠체어를 후진해서 문을 고정시킨 후, 그 틈으로 나가야 하는데 사무실에는 각종 비품들이 많지 않은가? 바퀴가 돌 수 있는 각이 안 나와서 연신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바닥에 솟은 전선보호용 커버는 어찌나 많은지, 과속방지턱처럼 급과속에 유의하며 힘을 더 주어 넘어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내 자리가 그렇게 좁은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군데군데 지뢰처럼 깔린 전선커버와 정승처럼 버티고 선 캐비닛이 눈에 띄었다. 업무 특성상 캐비닛 3~4개를 열고 수시로 확인해서 다른 사무실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눈 앞이 캄캄했다. 공간이 협소해서 캐비닛 문을 열어둔 채로 옆 캐비닛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침착하게 휠체어를 뒤로 빼서 열었던 캐비닛을 닫고, 전선커버를 힘으로 넘어 옆 책상을 피해 휠체어를 주차한 후 다른 캐비닛을 열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빵 터졌던 것은 휠체어용 화장실이었다. 몇 년 전 법개정으로 무조건 일정비율 이상 만들어야 한다며 박차를 가했던, 멀쩡한 화장실을 부수며 요란스레 진행한 그 공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막상 휠체어를 타고는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못 견디게 우스웠다. 화장실 칸까지는 무리 없이 진입했지만, 변기 쪽으로 꺾을 공간이 전혀 없었다. 테라스 유리창처럼 화려하게 접힌 화장실 문을 닫을 적에는 림보하듯 허리를 젖혀 간신히 닫을 수 있었다. 황당한 마음에 한참이나 마주 선 벽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다치지 않은 다리를 바깥쪽으로 빼고 곡예하듯 몸을 접고, 손으로는 손잡이를 의지해 겨우 목표물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언제 다쳐도 이상하지 않을 동작이었다. 만약 두 다리가 불편했다면? 혹은 손도 불편했다면? 그렇다면 이 장애인화장실은, 필히 한 쪽 발만 불편한 사람이거나, 보조인이 있는 사람만 이용 가능한 시설이다. 이왕 세금을 들여 만들기로 한 시설이라면, 국제 표준을 지켜 이용에 불편이 없는 곳으로 바꿨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급한 업무만 처리하고 인수인계 작성을 위해 회사에 머문 그 잠깐 사이, 스스로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아 내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수작업을 부탁하는 웃지 못할 일이 많아졌다. 장애물에 걸려 통로를 막고 서 있으면, 누군가 도와주기 전에는 지나갈 수 없었다. 계단이 단 한 개만 있어도, 그 턱이 높으면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기나긴 그 순간, 바보같이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럴거면 목발을 짚고 올 걸.’이었다. 하지만 목발을 사용한다고 해서 턱이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목발을 짚으면 양 손을 쓸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다 마지막 즈음에는 ‘아, 이건 목발인지, 휠체어인지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각종 행정부처가 휠체어를 무료로 빌려주는 기간은 일주일이다. 처음에는 대여가능한 다른 기관을 수배하다가, 수술 후에도 2~3달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반려인은 휠체어를 사버렸다. 새로 산 휠체어는 덜 튼튼한 대신, 폭이 좁아 움직이기 편하고 무엇보다 가벼웠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가 뗀 것처럼, 기분만큼은 휠체어 경주도 나갈 수 있을 만큼 기동성이 좋아졌다. 


짧은 사이에 제법 휠체어 생활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호기롭게 회사에 갔다가 된통 당한 날 이후로는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아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어쩌다 한 번씩 산책겸 집 주변을 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집 현관턱 하나 혼자 넘을 수 없어 이마저도 반려인 없이는 꿈도 꾸지 않는다. 비단 밖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집에서도 평소에 하던 사소한 작은 일도 내가 하면 더 이상 작은 일이 아니게 된다. 때로는 그 일을 내가 하기 위해 파생된 부수 잡무를 부탁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망쳐버리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냥 내가 하는 게 낫다.’라는 말을 몇 번 듣다보면 포기가 익숙해진다.




3주 밖에 안되는 휠체어 생활을 하며 생긴 새로운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곳인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다. 위성지도로 계단이 있는지, 턱은 얼마나 되는지, 경사가 있지는 않은지, 통로가 비좁아 통행을 방해하지는 않을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로드뷰로 보이지 않는 시설 내부는 블로그를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뒤에서 나를 보조하는 반려인을 위해서, 그곳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큰마음을 먹고 나간 외출길에 다시는 짐짝 취급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다시금 깨닫게 된다. 

휠체어를 끌고 갈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고, 부담 없이 방문할 시설도 별로 없다는 것을, 

눈높이가 낮은 이들에겐 이토록 일상이 힘들다는 것을.



유명 장애인 유튜버가 한 말이 생각난다. 

“문전박대를 수도 없이 당해봤다. 아는 식당만 가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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