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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Apr 16. 2023

내가 쓰는 호텔 리뷰

인터넷을 믿지 말 것

마치 분신처럼 내 다리의 일부처럼 노상 붙어있는 자동차가 없는 외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동성, 도심지와의 위치, 주변 교통환경, 치안, 그리고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5성급 호텔을 갈 것이 아니고서야 호텔 서비스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 있고, 어차피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거, 과감하게 서비스 부분을 제하고 호텔 예약 시 고려할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나름 시티뷰일까?


1. 역에서 가까울 것.

2. 환승하기 편한 곳에 위치할 것.

3. 비교적 안전한 구역에 위치할 것.

4. 조식이 포함되어 있고, 그 맛이 평타 이상일 것.

5. late checkin / checkout 후 짐을 맡기는 것이 가능할 것 (거의 가능하지만)

6. (가족 구성원의 흡연 여부에 따라) 흡연룸이 있거나, 흡연 구역이 마련되어 있을 것.

7. 수영하고 싶을 수 있으니 수영장이 있을 것.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는 방콕이기에 정말 많은 호텔들이 있었고, 가격대도 정말 다양했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하는 호텔만 추려도, 결정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결정장애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선택지들이 있었다. 장점과 단점을 계속해서 비교하다 보니 결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리스트도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늘어만 갔다.

호텔 가는 길, 마치 중국 거주 시절 광장을 수놓던 노점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호텔에 머무르는 일정이 적은 첫 4일 동안은 적당한 퀄리티의 조식을 즐길 수 있으며 내가 가고자 하는 관광지로 바로 연결되는 지하철과 가까운,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인 이용객이 적은 곳을, 조식이 끝내주고 스파와 수영장을 즐길 수 있는 5성급 호텔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머리 노란 분 많음” “조식 쌀국수 맛있음”



그랩을 타고 도착한 호텔의 첫인상은 바로... 인도였다. 내가 방콕의 호텔에 있는지 아니면 인도의 호텔에 와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인도 사람이 많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 어느 커플이 결혼식을 올린 모양이었다) 파티가 있었는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1층은 월드컵 기간 동안 진행되는 맥주 & 팝콘 행사로 북적거렸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그 경기였다) 호텔 앞에 도착한 그랩 기사가 벨보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트렁크를 열어 직접 짐을 내리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노 벨보이?” 짐을 날라주기는 커녕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호텔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기도 했다. 파티가 있는 것 같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두 사람 분의 커다란 짐을 끌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랩에서 한국이 이겼다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왔는데, 스트리밍은 약간 속도가 느린 모양이었다. 호텔 1층의 화면에서는 아직 경기가 진행중이었다. 


체크인 후 방으로 들어가자 4일 동안 home sweet home이 되어 줄 아늑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다음 날 입을 옷을 꺼내놓은 다음 방안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옷장 안에 있는 작은 금고에 여행 경비를 넣은 뒤 비밀번호를 설정해 두었고, 구겨질 수 있는 옷은 바로바로 걸어주었다. 기본적으로 뚜벅이 여행 중에는 운동화를 선호하지만, 더운 나라로 온 만큼 추가로 챙겨 온 샌들도 문간에 놔두었다. 한밤중에도 30도를 자랑하는 방콕의 무더위를 반영해 한껏 달아올라있는 호텔 방 안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풀로 틀어놓는 것도 필수.


방콕의 호텔들은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에 물을 담아준다는 걸 몰랐던 첫날의 나는 선반 위에 보란 듯이 놓여 있는 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마름을 호소하며 근처 편의점으로 작은 여정을 떠났다 (새벽 두 시였다) 쥐도 잠을 자러 간 것처럼 조용한 새벽의 고요가 나를 감쌌다. 한밤중인데도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던 한국과 달리 무더운 방콕의 공기는 온몸에 땀이 솔솔 나오게 했다. 4일 동안 8번은 더 다닐 길이었다. 아무도 걸어 다니지 않아 조금 을씨년스럽긴 했지만, 우리 말고는 아무도 걸어 다니지 않으니 그건 또 그것대로 안심이 되었다.


시원한 물을 한 병이나 원샷하고 나서야 침대 위에 몸을 던져 넣었다. 아침부터 그 짐을 들고 여섯 시간의 비행을 견뎌 낸 몸이니 휴식이 절실했다. 오늘이야 말로 꿀잠을 자.... 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뀐 것도 바뀐 것이었지만, 연식이 있는 호텔이라더니 에어컨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2일 차 저녁에 사람을 불러 봐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더구나 에어컨을 한참 켜 놓으니 너무 추웠다. 그렇다고 끄자니 너무 더워서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 보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아직도 한국 시간을 살아가고 있던 몸뚱이는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이런, 아직 비행의 비곤함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로 출근하는 인천사람으로서 연차에도 새벽에 기상했다는 사실이 너무 분했다. 결국 나의 부산스러움에 엄마가 잠에서 깼고, 둘 다 피곤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진짜 1일 차의 일정을 준비하게 시작했다.


“와, 쌀국수 진짜 맛있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더니 무슨 하얏트 호텔처럼 거나한 뷔페는 아니었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메뉴가 나오던 조식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베트남에 갔을 때 호텔에서 먹었던 퐁퐁(고수) 향 가득한 쌀국수에 경악했던 기억에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쌀국수가 맛있다니 먹어보고 싶긴 했기에 쌀국수 코너 앞을 한참 서성이자 맑은 미소를 띤 직원이 손가락으로 쌀국수를 가리켰다. 멀리 있으면 고개를 끄덕였다는 걸 아무도 모를 만큼 작게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자, 이번에는 국수 면을 고르라며 옆을 가리켰다. 1년 동안 배운 태국어는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어떤 면을 원하는 건지 그것 하나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 아니다, 그 직원은 태국어를 1도 모르는 관광객들을 티 없이 맑은 미소로 매일 맞이했을 것이다 - 눈치로 손짓으로 맛있는 쌀국수를 말아 주었다. 쌀국수가 맛있다던 인터넷 리뷰는 허풍이 아니었다. 대충 아무 소스나 넣어서 대충 말아먹었는데도 지금껏 내가 한국에서 먹은 쌀국수는 다 가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으아악!!”


소리도 못 내고 접시 들고 피신해야 했던 바선생의 출현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한 끼였다.


예상하지 못한 바선생의 출현으로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1층으로 내려왔다. 호텔 리뷰에 의하면 1킬로 정도 떨어진 아속역으로의 툭툭 서비스가 있다고 했다. 이런 서비스, 놓칠 수 없지. 호텔 로비에서 다른 손님의 짐가방을 맡아주고 있는 직원의 곁으로 가 섰다.


“What time is the 툭툭 서비스 to 아속 Station?”

“Oh, no tuk tuk service. Tuk tuk is broken”


이럴 수가, 툭툭이 고장 났다니. 코로나 직전의 호텔 리뷰(나름 최신이라고 생각한)였기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동 서비스의 부재는 이 호텔을 ‘1번, 역에서 가까울 것’의 기준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과 지하철이 연결된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을 텐데. 미리 연락이라도 해서 확인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 혼자면 몰라도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고, 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도 2만 보는 걸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퇴근 후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회사에서 정류장까지 같은 거리의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었다.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벨보이가 짐을 들어주지도 않고 - 원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고객들에게는 해주는 걸 목격했다 - 호텔 시설에 대한 안내도 이뤄지지 않아 몇 층에 수영장이 있는 줄도 몰랐으며, 아속역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툭툭은 고장 났고, 고작 쌀국수가 맛있다는 것 하나만이 정보의 홍수에서 건져낸 진짜 리뷰였다. 역시 이래서 인터넷은 믿으면 안 돼.



이 글을 쓰는 지금, 지하철에서 졸던 분이 화들짝 놀라 미끄러져 넘어지며 기어나갔다. 신도림, 꽤나 많은 사람들이 환승하는 환승역이었다. 내가 방콕을 회상하는 이 순간, 무릎을 희생하며 출근 시간을 사수하던 저분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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