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갑니다
지난주 목요일, 드디어 MBA 과정이 끝났다. 직장인으로 시작해 백수가 되고, 조교가 되고, 또 학생이 되는 일련의 과정 끝에 나는 여러 번의 인터뷰를 거치고 직장인이 되었다. 작년 11월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으니, 꼭 1년 하고도 1달 동안이나 아무 수입 없이 돈만 써대며 산 셈이다.
원래는 선릉이 될 뻔했던 출근길. 11월에 태국으로 파견되는 세종학당 공고가 나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 입사 제안을 고사했는데 -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좋은 기회였는데 -무슨 일인지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라니. 통상적으로 11월에는 다음 해 파견 공고가 났었는데, 괜히 나만 못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소식만 듣지 않았으면, 광화문이 아니라 선릉으로 출근하고 있었겠지.
선생님으로서 보낸 4년, 해외영업팀 사원으로서 보낸 1년, 도합 약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학원가로 돌아가지도, 영업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내가 왜 MBA를 가란다고 그렇게 척! 갔을까, 가끔 고민스러울 때는 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로 인하여 직무전환이 가능해졌고, 비즈니스맨으로써의 역량이 십분 성장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20대 중반. 어제 대학을 졸업한 것 같은데, 대학원을 두 번이나 거쳐 육 년 차에 접어드는 직장인이 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적어도 스무 살 때 생각했던 지금의 나는 박사학위를 따고 학교에 남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회사의 문턱을 넘어 들어서는 것은 내가 꿈꿔왔던 미래는 아니었지만, 결코 슬픈 일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출근에 앞서 이것저것 잡다한 짐을 챙겼다. 재택근무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노트북을 가져가야 했으므로, 15인치 맥북이 들어갈 수 있는 큰 쇼퍼백을 집어 들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볼펜, 포스트잇을 비롯해 클립과 같은 기본적인 사무용품마저도 개인이 준비해야 했으므로 사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저 예전보다 좀 더 낫기를 기도하며 출근 첫날 사용할 용품들을 비롯해 칫솔과 치약, 텀블러, 핸드크림, 머리끈, 커피 대신 마실 티백과 힘이 떨어질 때 먹을 도라지를 챙겨 넣었다. 새것 같은 중고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대충 이런저런 것들이 필요하겠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도 척척 챙겨 넣을 수 있었다.
계약서상 출근 시간은 9시지만, 첫날이기 때문에 - 아무래도 다른 분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겠지 - 10시까지 회사를 가면 됐던 나는 조금은 여유롭게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종점인 인천역에서 환승을 해서 앉아 갈 수 있었지만, 조금 지나자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빽빽하게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오죽하면 앞사람이 내 무릎을 눌러댄 통에 다리가 아파올 정도였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더욱더 도톰하게 옷을 챙겨 입은 사람들은 마치 미쉐린 타이어의 공기인형처럼 서로 꼭 붙어 끼인 채로 서울로 향했다. 이러다 없던 코로나도 걸리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 공기 중에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어쨰서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돌아다니지 않는 걸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시청역에 도착해 있었다.
종로구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틈만 나면 '놀러'왔었던 광화문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으랴. 장난스럽게 4대문 안에 입성해야 하지 않겠느냐 했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이야. 낙엽 따라 간 당신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낙엽 따라가듯 세상을 떠난 것처럼, 역시 세상은 말하는 대로 되는 걸까.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배우며 채워갈 내 남은 20대의 나날들. 얼마나 이 회사에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며 좋은 프로젝트 매니저로 성장해야겠다.
그리고 첫 출근 기념 릴스!
인스타그램: @claraful_space
https://www.instagram.com/reel/CXa143PFiSE/?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