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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Jan 02. 2022

대기업과 중소기업, 어디로 가야 할까?

“Which would you prefer? A large company, or a small company?”


약 10년 전, 토플 학원에 처음으로 등록했을 때의 일이다. 에세이 주제로 위와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금 쪽 같은 30분을 작문하는 데 쓸 수 없으니, 5분 동안 브레인스토밍만 해 보라고 하셨다. 대기업은 무엇이고 중소기업은 무엇이란 말인가? 공무원이던 아버지, 예술가이자 자영업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끽해야 십 수년 짧은 인생 동안 해온 거라고는 노래와 공부밖에 없었을 때였다. 취업은커녕, 대학이란 곳을 가보겠다고 토플학원에 오지 않았던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서론에 본론에 결론까지 정리하던 5분 동안 나는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혹은 ‘큰 회사’)와 중소기업(혹은 ‘작은 회사’)에 대한 모범 답안은 무엇이었을까? 큰 회사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전공 분야 관련 직무 경험을 심도 있게 쌓을 수 있고, 회사 & 상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작은 회사를 선호하는 사람은 자신의 직무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승진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을 꼽았을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연봉 수준의 차이를 들 수 있겠고, 복지 시스템의 유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련의 ‘모범 답안’의 정해져 있을 시험에서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연봉을 많이 주니까 대기업을 가겠다는 말은 지양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10년이 지나 대학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이제 밥값을 해야 할 나이가 된 나는 과연 어떤 회사를 선호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절대로 작은 회사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1.    내가 작은 회사에 가서 일했던 이유


아들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하면 동네잔치가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하지만 정말로. 지금도 대기업에 들어갔다 하면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어머니 아버지의 어깨가 곧게 펴지고 목에 깁스가 한 30개 정도 채워지지 않을까). 지금이야 5시가 되면 컴퓨터가 꺼져서 일을 못하니 하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2010년대 중반에는 대기업에 다니던 젊은 20대가 고된 업무량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죽었다든가, 엄청난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해 퇴사한 뒤 부모님께 죄인이 되었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곤 했다. 졸업 직후 대기업에 들어간 지인은 딱히 할 일이 남지는 않았지만,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11시까지 회사에 남아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노라 이야기하곤 했다. 그것에 대기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저녁이 없는 삶. 회사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나가야 하는 곳. 나를 잃어버리고 마는 곳.


        1)    워라벨에 대한 기대


나의 첫 직장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학원이었다(현재는 법인). 작은 학원, 작은 회사라서 좋았던 점은 바로 내게 많은 자율성이 부과된다는 점이었다.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일하던 친구가 주어진 커리큘럼과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교재를 사용할 수 있었고, 나만의 커리큘럼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의례적으로 매주 치러지는 스펠링 테스트와 같은 진단평가 주기 또한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고, 학부모님들 과의 소통방식 또한 선생 개개인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고, 또 4년이 되는 동안 4년 동안 내게는 석사 학위가 하나, 학사 학위가 또 하나, 테솔과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생겼는데, 이는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퇴근 이후의 삶을 보장받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20대의 청춘을 갉아먹는 대가로 몸을 혹사시킨 결과물이었다. 연차가 쌓이며 맡을 수 있는 일의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마치 내가 나의 학원을 차릴 때 필요한 일들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달까.) 물건을 구입하고 교재의 재고를 파악하고, 지출 내역을 보고 돈을 아낄 방법을 찾는 것, 학부모 상담, 외국어 교강사 지원, 원생 관리, 환경 미화, 그리고 버스 스케줄을 통지하는 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일이 필요하다.


조직이 작으면 작은 만큼 여분의 인원이 없어서 병가를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원할 때 휴가를 내는 것도 불가하다. 6시 30분에 퇴근은 할 수 있지만, 수업이 끝난 뒤 상담 전화를 받다 보면, 8시가 넘어 일을 마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라치면 9시 너머까지 일하는 것은 흔한 일. 그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지는 못해도 분명 납득이 되었다. 작은 회사라고 해서 일이 적거나 워라벨이 지켜지지 않다는 것, 어차피 똑같은 고생길이라면 네임 벨류와 복지라도 좋은 대기업에서 하는 고생이 낫다는 것을.


        2)    다양한 직무 경험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때쯤, 내게도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원장님과 부장님으로부터 큰 틀만 제공받고 세부 사항들은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첫 직장과 달리 여러 명의 상사가 있고,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달랐지만, 여전히 ‘작은 회사’는 여러 분야의 직무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닌 곳이었다. 새로운 회사에는 팀, 직무에 따른 ‘제한’이나 ‘벽’과 같은 것은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


해외 영업이라고 해서 영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를 위한 소셜 미디어 콘텐츠를 구상하거나, 계약서, 논문, 보도자료, 및 홍보물을 번역하기도 하고, 해외 시장 조사와 고객사 발굴을 하기도 했다. 입사 당시 일을 배울 수 있는 상사가 한 명도 없었다던 나의 상사는 다른 회사라면 구매팀이 할법한 일도, 경영지원팀이 할 일도, 회계팀이 할 일도, 디자인 팀이 할 일도 모두 하고 있었다. 인수인계 없이 입사 첫날부터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일을 해야 했던 그에게 모든 자료는 구글과 네이버가 제공해주고 있었다.


처음엔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직무 경험 가능성은 그렇게 독배가 되었다. 일을 가르쳐주는 상사도, 그때그때 달라지는 사업 분야도, 새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10년, 20년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력자야 능력을 펼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생 초짜에게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교육이 고팠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알려줄 수 있는 상사가 고팠다. 내가 이곳에서 커갈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와중에 출근길은 멀고, 퇴근길은 길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버스에 올라타는 삶. 길에 대여섯 시간을 버리는 매일. 여덟 시에 퇴근해 쫄쫄 굶은 배를 부여잡고 열 한시에 집에 도착하거나, 저녁을 먹고 9시 넘어 출발해 막차를 타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회사를 나왔다.


2.    내가 큰 회사를 선택한 이유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처럼 묘사했지만, 직전 두 번의 경험은 내게 있어 매우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었고,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곳.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뒤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게 해 준 곳.


MBA의 모든 학기를 마치고 또 다른 취업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나는 여러 선택지들 사이 큰 회사를 선택했다. 내가 이제까지 경험해 온 그 어느 곳보다 절차가 많고 복잡한 곳. 입사 후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곳. 여러 부서와 여러 직급이 있고, 신규 입사자가 회사의 대표를 만나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야 할 만큼 있기 힘든 일인 곳.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내가 사 오는 대신 지원팀에 연락을 하고, 기술적인 문제가 있으면 IT 팀에 연락해야 하는 곳. 회계팀의 일을 내가 볼 일이 없고, 주어진 일을 절차에 맞춰, 해내야 하는 곳.


이제 삼 주 간의 교육을 마친 지금, 나는 조금씩 내 몫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회사에서 5년을 보냈으니, 조금 더 커진 이 조직에서도 5년을 보내고 나면, 그때는 과연 작은 회사가 더 나은지, 큰 회사가 더 나은지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될까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어떤 회사를 선호하시나요?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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