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남달라>
글, 그림 : 김준영 / 국민서관
“엄마 starfish가 한국말로 뭐지?"
"뭐지? 고래인가?"
"고래는 whale 이잖아요."
"그럼 해마인가?"
"해마는 sea horse잖아요. 엄마 알면서 왜 안 알려줘요!"
starfish가 뭐냐고 물어보는 아이가 바로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냈다. 엄마한테 다시는 안 물어볼 거라는 둥, 엄마가 나중에 물어보면 나도 가르쳐주지 않을 거라는 둥 으름장을 놓는다. 짜증 내는 아이를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머릿속에 있는 게 우성이 건 아니잖아. 우성이 것도 아니면서 너무 쉽게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난 아이가 칭얼거림 속에 웃음을 섞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안 알려줄 거예요?"
"힌트를 줄게. 네 글자야."
"앞 글자만 알려주세요."
아이가 나의 줄다리기에 걸려들었다.
아이가 어벤저스를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물으면 어벤저스 스토리북을 건네주고 슈퍼윙스를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물으면 슈퍼윙스 DVD 케이스를 가져다주었던 나의 모습에 그때마다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없어 불만을 터뜨렸던 아이가 최근에 달라졌다. 식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ㄹ' 쓰는 방향을 헷갈린 아이가 이제는 엄마에게 물어봐도 바로 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지 벽에 걸린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ㄹ'을 어떻게 썼더라. 아! 저기 있다."
달력에서 'ㄹ'을 찾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얻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아는 척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 돌린 표정에서 그동안의 줄다리기 성과가 있는 것 같아 입꼬리가 저절로 씰룩거려졌다.
아이에게 배움의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밥만 잘 먹어도, 잠만 잘 자도 되는 아이였는데 내년에 학교를 가야 하니 점점 배움의 수도, 양도 많아질 거라는 묘한 분위기가 일곱 살이 되니 느껴진다.
아이의 배움에서 엄마인 나는 어떤 입장이면 좋을까?
<난 남달라>는 수영을 당연하게 배워야 하는 펭귄들 사이에서 '수영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한 '남달라'라는 펭귄이 나온다.
-선생님! 말미잘 수영 같은 걸 왜 해야 해요?
-달라야, 너만 왜 그러니. 모두 열심히 하잖아. 얼른 줄 서."
집에 돌아와 선전포고를 하는 남달라.
-나 수영 그만 배울래요!
정말 박수가 절로 나온다. 남들이 모두 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기에 당당히 하기 싫다 말할 수 있는 모습이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해야 한다 해서 해 왔던 지난 일 몇 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도 그때, ‘나 그만 할 거야!'라고 큰 소리 한 번 칠 걸. 그만 한다는 말이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티 내는 말 같아 하지 못했던 내가 남달라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는 거구나. 너 참 멋있다.’
그만하겠다는 말을 속 시원하게 내뱉는 ‘남달라’의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은지. 잠시 흠뻑 빠졌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 다들 수영하는데 각자의 이유가 있을까? 그림책 속에는 남달라의 친구 위버, 쿠쿠, 폴리가 나온다.
먼저, 위버. 위버는 수영을 잘하기 위한 신체조건을 타고 난 펭귄이다. 해야하는 것에 내 조건이 딱 맞고,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도 충분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쿠쿠는 위버와 달리 수영에는 성과가 그리 크지 않지만 열심히 하려는 근성이 있다. 폴리는 그래도 수영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은 하지만 수영을 하기 싫다고 그만두는 남달라를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본다.
남달라와 이 세 친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이의 머리 뚜껑을 열어 적당히 정답이라고 하는 것을 집어넣어주는 일, 그렇게 배워본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장기적 효과가 크지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로 아이에게는 어떤 일에 대한 답이 필요할 때,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의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통해 찾아진 적당한 이유라면, 남달라처럼 고민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일상에서 엄마의 교묘한 술수를 부리는 일인데, 아이의 질문에 일부러 엉뚱한 대답을 함으로써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종종 아이의 연상 문제집을 내가 풀 때가 있다. '풀어보자.'라고 하면 몸을 베베 꼰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억지로 들이미는 건 결과가 뻔하다. 지루함의 기억만 될 뿐. 그런데 '엄마가 한 거 채점해 줄래?'라고 하면 아이는 좋다며 답을 스스로 찾아 정답을 써 주고 애썼다며 커다란 별도 그려준다. 아직까지는 엄마의 교묘한 술수가 통하는 일곱 살이다.
수영을 그만둔 남달라,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몰라 이것저것 해 보던 남달라가 우연히 한번 미끄러짐을 경험하고 나서는 미끄럼에 빠져 미끄럼 대회까지 나가게 된다.
그 대회에서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쟁쟁한 우승 후보인 바다표범들을 제치고 우승한 남달라. 나에게 맞는 일을 스스로 찾았는데 그에 따른 성과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당연히 해야 하는 수영을 그만두고 미끄럼이라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은 남달라를 보며 세 친구도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위버는 역시 수영선수, 쿠쿠는 역시 먹을 것을 좋아한 탓으로 인한 체형이었는지 요리사가 되었고, 폴리는 남달라의 모습이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고 닮고 싶었는지 경찰이 되었다. 각자의 이유가 있는 적절한 행보였다.
"바닷속 정말 멋지다! 더 보고 싶네. 수영 한번 해 볼까?"
이후, 우연히 물에 빠진 남달라는 그제야 수영을 해야 하는 적당한 이유를 찾았다.
남달라처럼, 세 친구들처럼 자신에게 적당한 이유를 아이가 스스로 찾을 수 있기를 바라기에 오늘도 나는 아이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