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시 : 장석주 / 그림 : 유리 / 이야기꽃
거실에서 창문 밖을 보던 남편이 날 불렀다. 까지가 집을 짓는다고 했다. 한 번도 새가 집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남편이 뭐가 신기하다고 날 부르는 일도 드문 일이라 날 부를 정도면 정말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싶어 그 마음에 장담 맞춰주고자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한층 아래 정도까지 자란 소나무 가지 사이에 까치 두 마리가 집을 지으려고 분주하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 부부 까치겠지,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 거겠지 하며 한참을 지켜봤다.
길고 가는 가지들을 어디서 용케 찾아와서는 굵은 소나무 가지 사이를 연결하려고 꽤 애를 쓰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떤 가지는 길이가 짧아 허무하게 떨어졌고, 적절한 길이의 가지를 겨우 올려놓으면 다른 가지를 주으러 가는 사이에 그새를 못 버티고 맥없이 떨어지기도 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나뭇가지를 다시 올려놓으면 또 떨어지고.
다시 나뭇가지를 올려놓으면 또 떨어지고......
몇 번의 반복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인데 이 와중에 바람까지 부니 그 모습이 안타까워 날 좋은 다른 날 했으면 싶고, 주변에 적절한 가지를 모아서 놓아주면 좀 수월하려나 싶지만 이내 깨달았다.
'견뎌내야 하는 일.'
<대추 한 알> 은 대추 알이 영글어 가는 과정을 시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글이 짧다. 그런데 길기도 하다. 대추 한 알의 생이 그림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림책을 읽으며 태풍, 천둥, 벼락, 추위, 더위, 외로움 등을 홀로 겪어내고 있는 대추의 마음이 되어본다. 꿋꿋하고 단단한 마음이다.
점점 자연에 눈길을 주는 횟수가 잦아진다. 일상의 고민들이 자연을 보면 해소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 친정엄마가 길 가에 핀 작은 꽃이 예쁘다며, 가지 끝에 걸린 눈송이가 예쁘다며 길을 멈출 때 어린 나는 빨리 가자며 재촉했었다. 요즘 나는 그때의 친정 엄마처럼 시선을 멈추고 주변의 풀, 나무, 꽃들이 애쓰는 모습, 견뎌내는 모습, 일궈내는 모습들을 살핀다.
대추 한 알이 수많은 어려움을 견딘 뒤에야 비로소 붉게 영글어지는 것처럼, 모난 돌이 숱하게 부딪히고 깨져야 동글동글 반짝이는 돌이 되는 것처럼, 수십 번 잔 가지를 떨어뜨리고 수십 번 올려야만 겨우 집을 만들 수 있는 까치처럼 절로 얻을 수도, 거저 얻을 수도 없기에 힘듦을 견뎌야 하는 자연의 모습을 만난다.
레고를 좋아하는 첫째 아이가 요즘 새로운 레고에 몰입하고 있다. 코딩을 접목해 본인이 만든 레고를 직접 움직일 수 있게 하는데 로봇을 좋아하고 기계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아주 제격이다. 그런데 지켜보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피스들도 많고 과정들도 복잡하니 말이다.
‘피스라도 찾아줄까?’
‘잘못 꽂은 거 같은데, 말해줄까?’
'나중에 고치려면 힘들 텐데. 지금 고치도록 할까?'
고민하는 마음 가운데 까치가 집을 짓던 모습, 대추 한 알이 여물어 가던 장면이 스쳤다. 절로 얻을 수도, 거저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 그 경험을 아이에게 주고 싶어 바쁜 마음을 접었다. 육아를 돌아보니 그동안 직접 나서서 해 주는 일들이 참 많았다.
‘넌 아직 어려서 잘 못 할 거야.’
‘그렇게 하면 잘 안되니까 엄마가 해줄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하나씩 해 주었던 일들이었다. 아이가 제법 컸음에도 해 줄 때가 있었으니 그 모습이 아이에게 힘듦을 견뎌 낼 기회를 주지 못한 엄마의 모습이진 않았을까 돌아봤다. 잘 안되면 어떻고, 실패하면 좀 어떻다고 '엄마가, 엄마가' 하며 따라다니며 해주었는지.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까치집이 제법 커졌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이후, 새끼를 낳았는지 매 번 두 마리가 있던 둥지 주변에 한 마리만 들락날락한다. 그 까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언가를 콕 집어 둥지로 나르기를 반복하며 꽤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또다시 애쓰고 있는 까치의 모습이다.
아이가 앞으로 성장하면서 겪게 될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 어떻게 키워 줄 수 있을까?'
엄마인 내가 나서서 직접 해 주는 일들이 당장은 눈에 띄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어려움을 견딜 기회를 방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발 떨어져 본다. 바쁘고 조급한 육아를 한 번 해 봤으니 둘째 아이에게는 조금 느긋한 마음을 내밀어 본다. 신발은 이렇게 벗으면 된다고 보여주고, 손 씻는 모습도 보여주고,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수건걸이를 하나 달아주었다.
서툰 아이 손에, 아이의 실수에 까치와 대추를 떠올리며 레고 조립을 하며 애쓰는 아이, 손을 씻으며 옷이 젖는 아이를 조용히 응원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