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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May 07. 2021

댁의 아이는 완벽합니까?

<완벽한 아이 팔아요>

글 : 미카엘 에스코피에 / 그림 : 마티외 모데 / 옮김 : 박선주 / 길벗 스쿨

아이가 일곱 살이 되니 아이 이름을 부쩍 자주 부르게 된다.


"우성아, 신발 가지런히 벗어나야지."

"우성아, 옷은 벗어서 빨리 통에."

"우성아, 자고 일어난 이불 개어 놓아야 해."


이렇게 부르는 아이 이름이 하루에 수차례. 게다가  번에 나이스 하게 하는 일은 정말 드물어 말은 점점 길어지표정 관리도 힘들어진다.  들리는 건지,  들리는 척하는 건지 아이 귀를 잡고 들여다보며 '귀가   들리나.' 하며 능청을 떨어보지만 아이는 그저 웃을 뿐이다.    봤으면 이제는  알아서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기대를 보란 듯이 비웃 , 오늘도 어김없이 벗어  신발  켤레는 이곳에  , 저곳에  쪽이다. 이렇게 매일을 보낼 수는 없겠다 싶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느낄  함께 그림책 모임을 하고 있는 분께 그림책  권을 추천받았다.


<완벽한 아이 팔아요>


'완벽'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반성 모드가 되었던 그림책.

부부가 아이를 사기 위해 아이마트로 간다. 그리고 '완벽한 아이'를 달라고 한다. 그 마트에서 인기 모델이라는 그 아이는 정말 완벽하다. 단것을 먹지도 않고, 밥을 흘리며 먹지도 않고, 반찬투정 따위는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혼자 놀고, 일찍 자기까지.


이것만으로도 완벽한데 인사를 잘한다는 이유, 학교에서 못하는 게 없다는 이유로 칭찬이 자자하니 아이를 구입한 부모는 정말 완벽하다며 흡족해한다.


그런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데리러 오기로 한 아빠가 늦게 오더라도 덕분에 숫자를 13752까지 셋다고 웃으며 말하는 아이.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는 엄마의 말에 안 먹어도 된다고 웃으며 말하는 아이. 아이들이 갖고 있는 그 흔한 칭얼거림, 보챔, 짜증과 같은 감정 따위는 없는 그 '완. 벽. 한. 아. 이'의 모습에 체기가 있던 날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첫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된다고 고민도 않고 태명을 튼튼이라 지었는데,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에 대한 감사함이 일상에 묻혀 익숙함이 되더니 점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아이에게 욕심을 내는 요즘의 내 모습이 스쳤다.


'나는 완벽한 아이를 원했던 걸까?'


오자마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손을 야무지게 씻고, 옷을 벗어 단정하게 걸어 두고, 빨래는 빨래통에, 자기 전에 유치원 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식사 시간에 쏜살같이 뛰어오고 반찬 투정도 하지 않는 아이.


상상해본다.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여러 번 말할 필요도 없이 한 번에 하는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을 나는 아이에게 원했던 걸까? 버튼 하나에 작동하는 기계가 떠올랐다.


오늘은 축제 날이라며 엄마의 말대로 축제 의상을 입고 교실에 들어선 아이가 그 날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날은 축제 날이 아니라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라는 것.


엄마 말을 듣고 낭패를 본 아이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렇지! 화를 내야지!'

체기가 내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 동네 어른,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던 아이가 친구들에게는 놀림을 받던 모습에 눈길이 머물렀다.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 주신대.’ 등등의 말들이 조금씩 거슬린다.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건, 아이들 입장에서는 완벽한 아이가 엄마 말을 듣고 학교에 간 뒤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모습처럼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림책 속에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생각을 물어주는 어른이 나온다. 마트 직원이다. 아이가 화를 낸 뒤 수리를 맡기로 온 부부의 요구에 그 마트 직원은 아이에게 묻는다.


-네 생각은 어때? 새 가족이 마음에 드니?


아이는 그 날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완벽한 부모를 찾아줄 수 없냐며. 그 말이 제법 날카롭다. 부모조차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 말 같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 어른이, 어느 순간 부모가 된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나는 하지 못했지만 너는 해야 해’, ‘나는 하지 않지만 너는 해야 해’라는 말로 특정 행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아이지.’

아이의 이해 가지 않는 행동들에 들썩여지는 나의 감정들을 다독여 줄 말을 찾았다. 아이는 원래 말을 한 번에 듣지 않고, 원래 정돈을 못하고, 원래 반찬 투정을 하고, 감정에 솔직해 짜증도, 화도, 투정도 잘 부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나도 원래 그런 아이였는데 잊고 있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아이의 부족함을 다그치지 않고 지켜볼 힘이 좀 생긴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요즘 요구하는 일이 너무 많지? 지금 이대로의 네가 좋은데 완벽하기를 바랬나 봐.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데 말이야.”

그 말을 듣던 아이가 한 마디 거든다.

“엄마, 우성이도 완벽한 엄마를 원한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 이대로의 엄마가 좋아요.”

“계란 프라이도 잘 못하는데?”

“괜찮아요. 그래도 엄마는 우성이에게 하나밖에 없는 엄마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역으로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


'이 말이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 말이었구나. 내가 아이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이의 말이 지금까지 육아를 하면서 바둥거렸던 무거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정말 아이는 이렇다. 사랑에 후하고, 용서도 빠르니 참으로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아이들에게 태어난 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에게 태어나 준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처음 잡은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리고 아이로부터 들었던 말을 그대로 다시 해주었다.


"엄마도 그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엄마에게는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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