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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May 04. 2021

즐거움에 빠진 아이 얼굴을 알고 있나요?

<그런데 임금님이 꿈쩍도 안 해요>

글 : 오드리 우드 / 그림 : 돈 우드 / 옮김 : 조은수 / 보림

종종 아이의 눈빛이 반짝반짝할 때가 있다. 표정 없는 얼굴에 아랫입술만 삐죽해져 있는데 눈빛만은 반짝반짝하다. 레고 하기, 자석 블록으로 놀기, 그림 그리기 등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에 몰입할 때 주로 그런데 그럴 때는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가 된다.


아이에게 느긋한 에너지가 듬뿍 채워졌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아빠랑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 뛰어놀고 온 뒤에 그랬고, 동생 때문에 화가 잔뜩인 시기에 흙을 만지면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신청한 도예 수업에서도 그랬다. 그런 날은 기복이 심한 감정 대신, 수시로 엄마를 찾는 분주함 대신 차분한 기운이 아이 방에 가득 차니 평소와 확연하게 차이나는 그 에너지는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아이의 느긋함이다.


최근에도 있었다. 며칠 째 계속되는 최악의 미세먼지가 끝나고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가 찾아온 날이었다. 아이 등원 길에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가 어찌나 귀하던지, 이런 날 며칠 동안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던 아이를 유치원 보내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번 빠지면 계속 그래도 되는 줄 아려나.'

'뭐가 더 중요한 경험인지 생각해봐. 고작 일곱 살이잖아.'


어쩔까 결정 못하고 고민하다가 유치원이 가까워지자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유치원에 거의 도착했을 때, 마치 집에 가려는 애인의 꽁무니를 잡듯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 유치원 가지 말까?”

아이가 진짜 그래도 되냐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요? 뭐할 건데요?"

“음...... 탐험?”

공기도 좋고 시원하고 아무도 없는 동네의 탐험이라니, 내가 말해놓고도 마음이 들썩였던 기분이 기억난다. 어쩜 아이보다 더 놀고 싶은 엄마였나 보다. 그 날 두 아이는 텅 빈 동네 구석구석을 걷고, 뛰고, 옆 단지 놀이터도 가보고, 앞산도 가볍게 다녀오고, 공원 바닥에 앉아 돌로 그림도 그리고, 엄마 어렸을 때는 이렇게 소꿉놀이도 했다며 나뭇잎 몇 개 주어다가 돌로 빻아 반찬 만드는 시범도 보여주며 그렇게 하루를 야무지게 놀았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 정리를 하는데 집 안이  조용했다. 피곤한 건가 싶어 아이들을 살펴보니 오히려 갈증이 해소된 아이들처럼, 불안과 초조가 해소된 아이들처럼 연한 미소를 띤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알았다. 오늘의 외출이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채워주었다는 것을. 엄마를 찾지 않은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밀린 집안일을 쫓기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이 좋아, 차분하게 채워지는 아이들의 느긋한 에너지가 좋아 그것들을 쫏고 싶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첫째 아이의 여섯 살 끝 무렵, 유치원을 옮길까 싶어 영어유치원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 문의를 하니 테스트를 받아야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어떤 테스트인지 물으니 영어로 어느 정도 읽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림을 보고 영어로 몇 문장을 써야 한다고 했다. 7세 처음 수업 시작하면 아이들이 문장으로 쓰는 수업부터 한다며.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쓰는데요? 되묻고 싶었는데 순간 환경에 아이를 맞춰야 하는 순간이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춤 교육을 지향하며 아이에게 집중해 왔는데 언젠가는 환경에 아이를 맞춰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욕조에 빠진 임금님>은 욕조에서 노는 것이 좋아 밤이 깊어도 나오지 않는 임금님에 대한 이야기다. 임금님을 욕조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싸움터에 나갈 시간이라고도 해 보고, 점심 먹을 시간이라고도 해보고, 낚시 갈 시간이라도 해보면서 설득해보지만 모두 하나같이 물에 흠뻑 젖어 나올 뿐이다.

사실적인 표현과 복잡한 구성에 아이가 좋아할까 궁금했는데 다행히 아이의 취향에 맞았다. 아이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임금님의 즐거움이 기분 좋은 듯했다. 매번 울상을 짓거나 화가 난 표정으로 흠뻑 젖어 나오는 사람들의 망가진 모습도 웃음 포인트였다.


임금님의 표정이 아주 넉살스럽다. 남들이 흠뻑 젖듯 말든 나는 목욕을 즐기겠다 하니 배짱도 두둑하다. 이 그림책을 읽을 때면 아이와 임금님의 표정을 살핀다.

“이 임금님 표정 어때 보여?”

“좋아 보여요. 즐거워 보이고. 개구쟁이 같아요.”

페이지마다 임금님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임금님의 표정을 아이와 따라 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그거 알아? 우성이도 무언가에 빠져서 기분 좋을 때 이런 표정인 거?"

아이에게 너의 눈빛이 언제 반짝반짝한 지, 언제 너에게 느긋한 에너지가 느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찍어 둔 사진들을 함께 봤다. 다시 봐도 보기 좋은 모습, 부러운 모습이었다.


임금님의 시중을 드는 아이가 목욕통의 마개를 빼 버렸다. 그 바람에 물이 빠지니 임금님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나온다. 그렇게 설득해도 끝나지 않았던 임금님의 즐거움이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서둘러 나오는 임금님의 표정을 보니 우습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언젠가 아이의 어떤 즐거움이 주변에 의해 원치 않게 끊기게 되는 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채워지는 느긋한 에너지, 어떻게 꽉 채워줄 수 있을까?


선행학습을 몇 년 앞서서 한다는 이야기가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놀이에 몰입해서 빠져 본 아이, 즐거움으로 에너지를 가득 채워 본 기분을 아는 아이라면, 배움의 속도가 주변 기준보다 조금 늦고 배움의 양이 주변의 기준보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언젠가 스스로 배움을 향한 몰입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어수선했던 그동안의 마음을 다잡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 그림책과 함께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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