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어요>
글, 그림 : 요시타케 신스케 / 주니어김영사
아이는 주말마다 아이스하키를 배운다. 몸집을 크게 보이게 하는 유니폼이 멋있다며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이스하키 자체를 즐길 만큼 아이는 주말을 기다린다. 작은 링크장에서 레벨에 따라 나누어 수업을 하게 되는데 종종 레벨별로 미니 시합을 할 때가 있다. 진지한 룰보다는 그저 공을 던져놓으면 아이들이 우르르 공을 쫒고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그 사이에서 공을 들어가게 애써주기도, 공을 못 넣게 방해하기도 하며 아이들과 즐기는 그런 가벼운 시합이다. 어쩌다 공이 네트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3-4명의 코치님들이 링크장이 울릴 정도로 요란한 환호성에, 박수에, 하이파이브까지 하니 아이들 경기에 환호성만큼은 국제경기 수준이다. 이렇듯, 미니 시합이지만 보는 재미가 있어 미니 시합을 하는 모양새면 대기실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은 핸드폰으로 카메라를 미리 켜 놓고 구경할 준비를 한다.
그날도 미니 시합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빙판 위에서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라 시합보다는 참여하는데 의의가 컸는데 이제는 스틱을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니 시합이라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 싶어 기대를 하며 보고 있었다.
감독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고 시합은 시작되었다. 무리 속에서 아이의 등번호를 찾았다. 그런데 아이가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우르르 공을 쫒는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어? 하며 보는데 때마침 감독님이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성아! 이쪽!”
아이가 그제야 공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가 떨어졌나, 물을 마시러 가나, 왜 저쪽으로 가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이가 속한 팀이 다시 공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이가 또 무리 속에서 떨어져 반대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또 아이를 불렀다. 그 소리에 아이가 다시 방향을 돌렸다. 아이들과 부딪히는 게 싫은가, 이기고 지는 상황이 불편한가, 지금 시합이 하고 싶지 않은가 등등 아이 표정이 보이지 않아 혼자 답을 알 수 없는 추측들을 하면서 지켜보던 시합이 끝났다. 나의 이런 자잘한 염려를 아이에게 전하고 싶지 않아 오는 길에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첫 시합이니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기로 했다.
몇 주 뒤, 미니 시합이 또 있었다. 그 날의 일이 떠올라 아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역시나. 이번에도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이번에는 감독님이 큰 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대신 아이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어떻게 물어볼까 고민하다 아이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물어보세요.”
“미니 시합할 때, 왜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야?”
아이의 대답에 나는 놀란 마음, 부끄러운 마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대를 지키려고요.”
아이의 대답이었다.
생각해 보니 미니 시합에서 골대 앞은 항상 비어 있었다. 골대를 그대로 비워두고 공을 쫒는 게 시합을 하는 아이들에게도, 구경을 하는 어른들에게도, 감독님과 코치님에게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지! 누군가는 골대를 지켜야지!’ 아이 대답을 듣고 나니 그제야 아이 행동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유가 있어요>에는 아이의 여러 행동들을 지적하는 엄마에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갖가지 엉뚱한 대답을 당당하게 늘어놓는 아이가 나온다. 코를 파는 이유, 손톱을 물어뜯는 이유, 다리를 떠는 이유, 밥을 흘리면서 먹는 이유, 침대에서 뛰는 이유 등 어른들이 보기에 하지 말았으면 하는 아이의 모습들이 그 당당한 대답 속에 웃음으로 무마가 된다.
'이유가 있어요.'
그 말이 육아를 하다 보니 참 많이 와 닿는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화가 날 것 같은 아이의 일상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네가 아니 듯, 너도 내가 아니니 이유나 좀 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니 화를 내야 하는 일보다 이해가 되는 일들이 더 많다.
혼자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아이의 이유 있음을 내 기준에 맞추어 조급해하며 고민했던 나의 마음을 돌아봤다. 앞으로 난 아이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순간을 내 기준, 혹은 주변의 기준에서 벗어나 과연 얼마나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경험해 봤으니, 아이의 ‘이유 있음’을 먼저 살필 느긋한 마음을 잊지 말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