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ight already!>
"엄마 이용 시간이 끝나갑니다!"
"엄마 문 닫을 시간입니다."
매일 밤, 잠자리로 아이들을 부르는 말들이다. 엄마 이용 시간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들은 이 말에 마음이 바쁘다. 엄마 이용 시간이 끝나기 전에 엄마와 책도 함께 읽어야 하고, 그날 어땠는지 조잘조잘 이야기도 나눠야 하고, 엄마와 뒹굴뒹굴 찐한 스킵십도 나누어야 하니 말이다.
엄마 이용 시간
엄마의 새벽 글쓰기가 끝난 뒤부터 엄마가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아이들이 알고 있는 엄마 이용 시간이다. 엄마 이용 시간은 아이들에게 엄마인 내 시간도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아이들로부터 나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엄마 사용법이다.
엄마 이용 시간 외에 몇 가지 엄마 물건에 대한 사용 룰도 있다. 특히, 엄마의 아이패드.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싶은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의 아이패드는 엄마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니, 쓰기 전에 써도 되는지 꼭 물어보고, 쓰고 나서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특히, 음식을 먹으면서는 사용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까?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들 중심의 일상 속에서 나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자칫, 사랑이라는 허용 속에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 엄마의 시간, 물건, 마음 등 모두 마음대로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의 영역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영역도 있다는 걸 배우길 바랬다.
그 마음을 쫓아 내가 나의 영역을 먼저 잘 지켜내기로 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영역도 존중하기를 바랬다. 나와 다른 사람의 영역 사이에서 그 경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길 바랬다. 그러니 더욱 잘 지켜내고 싶은 내 영역이다.
<goodnight, already!>는 우리말로 <곰아, 자니?>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잠이 필요한 곰과 전혀 졸리지 않은 이웃사촌 오리 사이에서 일어난 하룻밤의 이야기다.
자고 싶은 곰. 단잠에 빠지기 직전인데, 매번 그 순간을 방해받는다. 이웃에 사는 오리 때문이다.
이 오리 보통이 아니다.
심심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며 한밤 중에 곰의 집 문을 아무렇지 않게 두드리거나,
쿠키 만들 재료들 좀 빌려달라며 굳이 자는 곰을 깨우고,
급기야는 비상용 키로 곰의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자는 곰을 깨우더니 자신의 부리가 다쳤다며 밴드가 붙여진 부리를 내 보인다. 게다가 잠을 방해받아 화를 내는 곰을 보면서 되려 곰의 태도가 자기를 피곤하게 한다며 투덜대니 '오리야, 진짜 왜 그러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리의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저 익숙한 모습 뭐지, 어디서 봤더라를 고민하다 무릎을 쳤다.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면 한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다.
설거지에 재주가 없어 음악의 도움을 받는데 음악과 손의 리듬이 딱 맞으면 어느새 무념무상이 되어 설거지에 조금씩 재미가 붙으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 셈이다.
“엄마!”
무념무상이 깨졌다. 첫째 아이였다. 음악을 끄고 아이를 보니 자기 만든 것 좀 보라고 하거나, 하필 이때 뭘 고쳐달라며 요구사항들을 늘어놓는다. 설거지가 끝난 뒤에 봐준다고 하고 기다려달라고 해 보지만 그새를 못 참고 또 엄마를 찾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둘째 아이다. 안아달라는 둘째 아이. 30분이면 끝날 설거지가 점점 길어졌다.
하루는 문을 잠근 채 샤워를 하고 있는데 '달그락달그락!’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이 손에는 젓가락 한 짝이 들려있었다. 놀라서 쳐다보니 잠긴 문을 자기가 열었다는 것에 기분 좋은 아이 얼굴이 보였다. 얼굴에 힘을 준 채, ‘이건, 아니지!’ 하고 짧은 주의를 주고 급하게 문을 닫으려는데 닫히는 문 사이로 아이 얼굴이 보였다. 급하게 닫히는 문, 엄마의 짜증에 당황한 아이 얼굴이었다.
샤워를 마무리하면서 당황한 아이 얼굴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다음부터는 엄마 화장실에 있는 시간은 좀 지켜줘 등등.
'아, 너무 긴데. 잔소리가 될게 뻔한데.'
아이에게 할 적절한 말을 고민하다 <goodnight already> 그림책을 떠올렸다. 지금, 아이와 딱 읽기 좋은, 엄마의 짜증 섞인 잔소리 대신 아이에게 직관적으로 상황의 문제를 알려줄 수 있는 시기적절한 그림책이었다. 당황했던 마음이 괜찮아졌다. 문을 열고 아이를 한번 홀겨본 뒤, 콧잔등을 툭 건드린 채 말했다.
‘으이구!'
그날 밤, 아이와 이 그림책을 함께 보았다. 오리의 말과 행동에 특별히 힘을 실어 읽었다. 아이에게 이 오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냐고 물으니 아이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대답 없는 아이에게 조금 전의 상황 이야기를 꺼냈다. 설거지 이야기도 함께. 아이가 그제야 엄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머쓱한 듯 배시시 웃었다.
"엄마 시간 좀 지켜주세요. 아셨죠?"
이후 종종 아이로 인해 나의 영역이 무너질 기미가 보일 때 아이에게 굵고 짧게 한마디 한다.
"안녕! 오리."
일곱 살 아이. 엄마의 영역을 존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온라인으로 그림책 모임 하기 전 아이들에게 1시간 정도 걸릴 거고 기다려주면 좋겠다 했는데 둘째 아이가 그 사이를 못 참고 엄마를 찾을 때가 있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는데 첫째 아이의 말이 들렸다.
"지금은 엄마 시간이야. 형아랑 놀자."
저녁 시간 자기 전. 첫째 아이가 말했다.
"우성이도 우성이 클로징 시간을 만들까 봐요."
엄마 모습을 따라 하려는 아이였다.
엄마의 영역을 존중하며 자기 영역도 지켜보려는 아이의 모습에 입꼬리가 저절로 길어졌다.
유치원에서 점심이 아쉬웠던 아이와 집 근처 국숫집을 찾았다. 덩달아 배부르게 먹고 나오는데 가게 입구에 선명하게 만들어진 안내문이 보였다.
국숫집 이용 안내시간 안내문. 괜히 탐이 났다.
"엄마 이용 시간도 안내문으로 만들어볼까나." 하며 아이들에게 말하니 첫째 아이가 자기도 그러겠다며 그 말을 거든다. 아이의 이용 시간 안내문은 어떤 느낌일까? 서로의 이용 시간 안내문이 있는 집. 괜히 웃음이 났다.
그날 밤. 자기 전에 할 일이 많은, 잠 자기 싫은 아이들을 향해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 이용시간 끝나갑니다. 이제 곧 문 닫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