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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Jul 26. 2021

힘 조절을 배우러 갑니다.

<나쁜 기분이 휘몰아칠 때>

감정의 크기에 따라 반응하는 내 몸의 힘,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을까?


화가 나면 물건을 세게 내려놓고 싶고, 누군가를 세게 밀치고 싶고, 크게 한 번 소리치고 싶은 그 기분을 누가 모를까.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게 당연한데 종종 감정의 힘이 앞서다 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동이 커져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나 혼자 지낸다면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결국 누군가와 부딪히며 살아야 하니 내 감정에 따른 행동의 크기를 조절해야 하는 노력은 나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꽤 필요한 일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힘 조절, 감정이 서툰 아이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알 수 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마음이 풀릴 거라 생각하듯 행동하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감정에 따른 행동의 크기 조절,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나쁜 기분이 휘몰아칠 때>는 감정에 따른 행동의 크기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낙엽을 쓸고 있던 에드에게 작은 바람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바람이 에드가 쓸어놓은 낙엽 더미를 자꾸 흐트려놓는 탓에 에드의 짜증이 시작되었는데, 낙엽 하나가 얼굴에 달라붙고, 빗자루에 걸려 넘어지는 일까지 겹치면서 에드의 짜증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커져버린 감정만큼 에드의 행동도 커졌다. 자동차, 버스, 사람들 등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쓸어버리기 시작한 에드. 쓸다 쓸다  결국 마을의 모든 것을 몽땅 쓸어버린 모습이 나온다.



에드의 기분은 나아졌을까?


감정의 크기만큼 행동으로 쏟아낸다고 그 감정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에드의 모습에서 보인다. 그럼 에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림책 속에는 ‘작은 바람’이 다시 나온다. 이야기 초반에 짜증의 시초가 되었던 그 작은 바람이 이번에는 에드가 쓸어버린 것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시작했다. 똑같은 작은 바람인데 이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에드다. 그 '작은 바람'은 어쩌면 우리의 감정이 상하게 하는 사소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매콤한 떡볶이, 문방구에서 산 알록달록 펜 등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사소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져 버린 화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생각의 단계를 뛰어넘은 채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쏟아내다 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되려 미안해지기도 하니 화난 감정에 따른 힘의 조절을 배운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해보인다.


힘의 조절,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집 가까운 곳에 첫째 아이 4살 때부터 종종 찾아다녔던 도자기 공방이 있다. 정규수업은 아니고 생각날 때마다, 좋은 프로그램이 공지될 때마다 신청해서 다녔던 곳인데, 올 초에 는 조금 다른 목적으로 수업을 신청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첫째 아이가 동생 때문에 스스로의 화를 어쩌지 못했던 때였는데 아이의 딱딱하고 뾰족해진 마음을 달래줄 방법을 찾던 중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흙을 만지면 감정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수업을 신청했었다.


그날 아이는 처음으로 물레를 이용한 수업을 했다. 그동안 나이가 어려 하지 못했던 수업이었다. 공방밖에 주차를 하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아이의 수업 영상을 보내주셨다.

“멈추세요, 옳지. 천천히 돌려보세요."

"조금 더 빠르게. 이제 멈추세요.”

영상 속에서는 선생님의 물레 사용 지시에 따라 물레를 돌리기 위해 발의 힘을 조절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힘이 쏠리지 않게. 바닥을 너무 깊게 뚫지 말고.”

"천천히."

"물 꼭 짜고, 손을 모아주세요."


다음 영상에서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물레 위에 올려진 흙을 양손으로 감싼 채 모양이 삐뚤어지지 않게 애쓰며 형태를 만드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꽤 신중한 모습, 눈이 반짝반짝한 그 모습이 오전에 동생 때문에 화난 아이가 맞나 싶었다. 신기한 마음에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아! 이거, 너무 좋은데?'


힘을 적당히 조절해야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 수 있는 물레 수업이 감정에 따른 힘의 조절을 배울 수 있는 딱 좋은 수업 같아 무릎을 쳤다.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고 싶지만 그 힘을 조절해 말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의 조절, 물건을 던지고 싶지만 던져서는 안 되기에 손에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대신하는 그 힘의 조절 능력을 물레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어땠을까?


수업이 끝난 아이가 보였다. 엄마를 보며 오는 아이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꽉 채워진 채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가 날 보자마자 들뜬 기분을 쏟아냈다. 물레로 그릇을 만들었다며, 흙이 무너지지 않게 잘 잡아야 한다며, 뻑뻑해지지 않게 물도 묻혀야 한다며, 너무 천천히도 안되고, 빨라서도 안 되는 물레의 적당한 속도를 발로 조절해야 한다며 그날 배운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기 바쁜 아이였다.


요즘 아이는 매주 공방에 간다. 아이는 그릇을 만들러 간다고 하지만 나는 힘 조절을 배우고 오라며 아이를 보낸다. 아이는 그곳에서 맨발로 흙을 밟고, 손으로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리며 여러 가지 힘 조절을 배운다. 아이가 만든 그릇이 집 안 곳곳에 놓이고 있다. 그 그릇들을 보며 아이에게  '조절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던진다.


힘을 잘 조절해서 만들었네.

힘 조절이 어렵진 않았어?

이 부분은 힘이 좀 세게 들어갔나 보네.

내가 내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거구나.


에드는 어떻게 힘을 조절했을까?

작은 바람에 또 다시 낙엽 하나가 날려 얼굴에 붙으면서 이 전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 에드가 이번에는 생각한다.


‘다 쓸어 버릴까? 아니면, 그러지 말까?’


흐트러진 낙엽을 즐기는 에드의 모습을 보니 에드도 행동을 조절해야 함을 배우기 시작한 듯하다.


집에서 온종일 함께 있는 두 아이는 여전히 싸우고, 여전히 화를 수시로 내지만 첫째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은 화난 감정을 어쩌지 못해 낑낑대던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엄마, 정우가 정말 미워요. 싫은 마음이 들어요. 같이 놀고 싶지 않아요!"

“엄마가 내 말을 안 듣고 있으니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요!"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할 준비 되면 엄마 부를게요.”


몸의 힘을 주었다 풀었다 하며 제법 노련하게 화난 마음을 다루는 첫째 아이를 보며 나도 많이 느긋해졌다. 덕분에 여전히 소리를 지르는 게 익숙한 30개월 둘째 아이를 당황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힘 조절로 찾은 집안의 평온이 이 더운 계절, 마음에 '작은 바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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