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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Nov 17. 2021

“엄마를 화산에 넣고 싶을 만큼 화가 나요.”

<괴물이 사는 나라>

“엄마를 화산에 넣고 싶을 만큼 화가 나요.”


첫째 아이 다섯 살 때의 말이다.

기억으로는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고 아이가 보고 싶은 유튜브를 아직 때가 아니라며 못 보게 했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요즘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엄마에게 화가 났냐며 아이의 화난 마음을 봐주려고 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공감보다는 어떻게 엄마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화산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느냐는 논리를 내밀며 말이다. 물론 당황해서 그렇게 묻지 못했지만.


그동안 아이들의 화난 마음을 마주하는 요령이 조금 생겼다. 화가 난 상황에서는 화산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느냐는 사실적 논리를 따지는 말이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화가 많이 난 것 같으니, 화가 좀 가라앉고 난 뒤에 이야기하자.”


화가 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보통 울음과 짜증이 길어질 때 하는 말.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화로 인해 바빠진 호흡을 정리하려고 애쓰고 더 큰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조절한다. 그리고는 다가와 말을 한다. 이제 진정이 되었다고. 진정이 된 아이와는 이야기를 나누기 수월하니 아이에게 물어본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뭐 때문에 그렇게 속상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핑퐁핑퐁.

무리하지 않는 대화가 아이와 나 사이에 오고 간다.


내가 화가 날 때도 다르지 않다.

엄마가 지금 화가 많이 나서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이야기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하는데 그럼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고맙게도 나를 찾지 않고 기다린다.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는 사이 나도 나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화가 난 상황을 되짚어본다.


 그렇게 화가 났는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이와 내가 화를 내는 상황들을 살피다 보니 ‘괴물이 사는 나라’의 의미가 보인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괴물 놀이를 엄마가 못하게 하니 잔뜩 화가 난 맥스. 방에 혼자 있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괴물 놀이에 대한 상상을 이어간다. 엄마가 못하게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괴물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단번에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엄마에게 화가 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멀리 가고, 괴물 놀이를 하지 못하게 된 불만으로 괴물을 단숨에 제압하고, 그 괴물들과 지칠 때까지 노는 맥스. 하지만 놀이의 끝에 엄마를 떠올리는 맥스는 이제 괴물 나라에서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한다. 괴물이 사는 나라에 오기까지,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떠나기까지 맥스의 마음이 되어 본다.


‘왜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야. 그냥 놀고 싶었던 것뿐인데. 엄마 미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이렇게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엄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엄마에게 한 번 가 볼까?’


아이가 화를 내고 난 뒤부터 화를 가라앉히고 돌아오기까지의 시간,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는 시간, 스스로 상황을 납득하고 타협을 한 뒤 엄마에게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그 시간들이  '괴물이 사는 나라'라는 말로 함축되어 보인다.


두 아이들 모두 대게 화를 내고 난 뒤, 스스로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심을 찾는다. 내가 화를 내고 난 뒤, 아이들에게 돌아온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다. 그 패턴을 알고 나니 화를 내는 아이들이 다르게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얼큰하게 해결해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이제는 서두르지 않을 준비를 한다. 맥스의 엄마도 이 비밀을 알고 있나 보다.

돌아 올 맥스를 위해 음식을 다정하게 준비 해 놓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식지 않은 음식인 거 보면 맥스의 엄마는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 뒤에 아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맥스를 기다리는 엄마의 느긋한 마음이 전해 진다. 활짝 열린 창문을 보면 알 수 있고, 창문 밖 하늘 위 보드랍게 떠 있는 둥근달을 보면 알 수 있다.


일곱 살 첫째 아이가 최근에도 '괴물이 사는 나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책을 하나 달랑달랑 만들어 왔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어른들 말은 나빠’


도전장을 내미는 패기로 보여주는데 출판사 이름이 '소르베'이고 뒷면에 바코드도 있으니 나름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준비해 놓은 느긋한 품과 웃음을 내 보였다. 그리고 아이의 불만이 가득 담긴 '어른들 말은 나빠' 라는 책을 편한 얼굴로 함께 보았다.


아이는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만들어 온 자신의 책을 나보다 더 즐겨본다. 큭큭 웃으며 보는 그 모습이 재미있으니 그럴 때는 나도 슬쩍 껴서 함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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