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비아 선생 Dec 13. 2023

오늘의 나

문학동인 <가향> 2023년 3월 회지 글

오늘의 나


                                                      이석례


 오늘, 멀리서 날아온 짧은 동영상 때문에 심란하다. 방글라데시 라즈샤히 직업훈련원에 한국어 강사가 부임하는 모습을 나하르가 보내줬다. 사실은 작년 일 년 동안 매주 네 번씩 줌으로, 그 직업훈련원 학생들에게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런데 나는 예순 다섯 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파견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속상하고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제 취미는 옷 만들기입니다. 선생님에게 선물해 주고 싶어요. 방글라데시 옷 입어보세요. 택배를 위해 주소가 필요해요.’ 이런 메신저 때문에 난감하기도 했었다. 나를 일 년 동안 도와준 라즈샤히 현지 한국어강사 나하르 씨가 방글라데시 드레스와 히잡을 만들어 보내겠다는 것이다. ‘아닙니다. 나하르 씨 감사합니다.’ 긴 글로 사양하면 헷갈릴 것 같아 짧게 거절했다. 

 그녀가 보조교사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면 수업을 원만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삼십여 명 가까운 학생들이 교실에 모이면 인터넷을 접속하고 줌을 켠다. 그리고 앞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화면에 내가 보이면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남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여학생은 세 명이지만 결석이 잦다. 히잡과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학생들을 알아보고 이름 부르기가 헷갈렸다. 나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보름 정도 벵골어 기초를 배웠다. 그러나 라면을 부숴 늘어놓은 것 같은 글자 익히기가 쉽지 않고 발음 또한 어려웠다. 

 인터넷을 통해, 화상으로 또는 문자로 주고받는 수업이고 소통이지만 우리는 재미있게 서로의 문화까지 알아갔다. 그들이 쓰는 히잡은 아니지만 나는 스카프를 가끔 쓰고 수업하고 손으로 밥을 먹는 그들의 문화를 실제 보여주기도 했다. 현지 기관 체제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한국어수업을 하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나는 많이 친해졌다. 나하르와는 번역기를 사용하고, 의아한 소통도 있었지만 마흔 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친구, 동료가 됐다. 각각의 현지사정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속내까지 우리 둘만의 메신저, 영상통화로 주고받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남자가 부인을 두 명 둘 수 있어요. 저는 요즘 그 문제 때문에 슬퍼요. 우리 집에 가구가 없어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요. 제 딸 사진을 보세요.”

 “가난해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잖아요. 딸이 무척 예뻐요. 그곳에 내가 못 갈 수도 있어요.”

 “아, 여기 안 오세요?”

 나하르 목소리에 진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종종, 내가 언제 라즈샤히에 올 것인지를 물었고 나도 꼭 가겠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내가 그곳에 가면 묵을 수 있게 학교 기숙사에 방을 마련해 놓았다고까지 했다. 타인에게, 더군다나 외국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 마음을 안다. 나는 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한국도 전에는 가난한 나라였지.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나와 도회지에서 살았지만 부모와 세 동생이 살았던 산골 우리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어. 매일 밤 호롱불을 켰고 아궁이에 불을 땠지. 지금 나하르 씨네가 예전 우리 집보다는 나을 것 같아. 궁핍한 삶이 불편하고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지. 나는 초등(국민)학생일 때 윗방에 짚자리를 깔고 잤지. 어느 날 누워서 공부하다 잠이 들었어. 그 때 호롱불이 넘어져 불이난 적도 있었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뒤편 운동장 한쪽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고학년 당번들이 죽을 끓이거나 빵을 찌기도 했어. 외국 원조물자로 받은 옥수수가루는 죽보다 빵이 더 맛있었지. 점심으로 한 국자씩 퍼 주던 그 죽이, 스펀지 같던 그 노란 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는 동생들을 위해 친구들 몰래, 빵을 책 보따리에 찔러 넣었어. 그런 날은 먼지 휘날리는 신작로를 뛰었지. 지금 한국은 내 어린 시절과는 다른 나라가 됐어. 어떤 때는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걸까? 시간여행을 하는 걸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해.

 얼마 전 모하마드 사고르가 수업시간에 한국어로 불렀던 노래가 웃음 짓게 하네.

 ‘사장님, 사장님, 마음씨 좋은 우리 사장님, 월급 좀 올려주세요. 월급이 적다고 마누라한테 혼난 적도 있어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10년이 돼도 월급을 안 올려주네요.’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됐듯이 방글라데시도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나하르 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눈을 감고 읊조렸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아름답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